그의 눈은 매우 깊고 신중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에 나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 시선이 가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 해가 저물고 집에 돌아갈 무렵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귓가에 울리던 내 심장 소리는 잊히지 않는다. 며칠 뒤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서로를 더욱 소중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함께할 가정을 상상했다.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 원망은 아버지보다 어린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 나를 소중히 대하는 사람을 기다려왔는지도 몰랐다. 살아갈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결혼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실망도 빠르게 찾아왔다. 들뜬 듯했던 그는 원래의 무덤덤한 태도를 빠르게 되찾았다.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다루는 그 무심함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함께한 어떤 순간을 사랑했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말해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금세 포기했다. 그가 그것을 원망과 비난이라 여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갈 것이 뻔했다. 변화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익숙해진 서로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아이가 찾아왔다. 아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마치 서로를 다시 바라보듯 아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이는 서너 시간마다 깨어 보채기를 반복했으므로 오로지 혼자의 몫인 돌봄은 몸도 정신도 지치게 했다. 저녁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아이만 바라보았다. 그것은 나를 더욱 외롭게 했다.
머지않아 나 역시 아이만을 통해 하루의 행복을 기대하게 되었다. 적어도 아이는 엄마를 필요로 했고 아무 대가 없이 소중히 바라봐 주었다. 우리 각자의 사랑을 먹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학교에 들어갔고 곧 중학년이 되었다. 그 무렵부터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기에 나는 다시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두가 나간 시간의 집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나조차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런 시간에는 종종 아이의 독립을 그려보기도 했다. 상상만으로도 가슴 아팠지만 아이가 부모와는 다르게 자기 삶을 살기 바랐다.
나 또한 나만의 일정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원봉사이기도 했고 종교활동이기도 했다. 가끔 자잘한 일을 받아오기도 했다. 소소한 것들이었기에 주로 식구들이 없는 시간에 이루어졌으며 그렇기에 아무도 일상의 변화를 크게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이름이 온전히 불리는 그 생활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어느 날 그가 떠났다. 그 일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조금 더 먼 훗날이라 생각했다. 죽음보다는 헤어짐일 수도 있었다. 전화가 왔고 누군가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나는 딸에게 다시 전했다. 우리 둘은 며칠간 장례식장을 지켰다. 남편의 일과 관련된 사람들이 대부분 자리를 메웠다. 그제야 그가 이룬 일들에 대해 깊은 존경심이 일었다. 사랑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또한 자신의 시간을 묵묵히 감당했을 터였다.
장례를 마친 뒤에는 보험을 정리했다. 남편의 존재가 한낱 숫자로 찍혀있다는 사실이 슬펐다. 일 년 동안 들여다보지 않던 숫자는 이후 매달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살아 있을 때보다, 그는 이제야 내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숫자를 계산하며, 처음으로 나 자신의 내일을 생각했다. 그즈음 아이도 집을 떠났다. 놀랍게도 상실감은 없었다.
창문을 열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