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한편에서는 민간인을 태운 우주여행선이 쏘아 올려지고 있고, 화성에 새로운 우주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AI, 메타버스, 자율주행 등, 하루가 다르게 인류의 삶을 바꿀 새로운 기술과 혁신들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다. 우주가 됐든, 가상의 세계가 됐든,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열기가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수백, 수천 년 전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춰진 곳도 있다. 아니 그때로 다시 퇴행하는 곳이라 해야겠다.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최대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집에만 갇혀 있는 것도 모자라, 전신을 천으로 꽁꽁 둘러싸고 몸을 숨겨야 한다. 그나마 외부 세계를 볼 수 있었던 눈 부위마저 망사로 덮힌 ‘부르카’를 쓰고, 안으로 깊이깊이 들어가야 한다. 마치 처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망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게 낯설었다.
주변을 볼 수 없게 되니 힘이 빠졌다.
주름진 천이 입을 질식시킬 것처럼 압박하는 게 싫었다.
부르카는 한쪽에서만 볼 수 있게 된 창문 같았다.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본문에서 -
최근 아프가니스탄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군의 전면적인 철수,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대통령, 순식간에 이뤄진 탈레반의 점거,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여성 탄압. 다시 고통과 피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중동의 분쟁이나 혼란은 지겹도록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하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도 낯설 뿐 아니라, 종교, 정치, 이념 등으로 얽히고설킨 주변국들과의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보니, 아프가니스탄은 그저 중동 먼 나라의 ‘답이 없는 싸움’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최근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책을 접한 후,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그곳의 여성들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던 게 너무나 미안했다. 주인공 ‘마리암’과 ‘라일라’를 통해, 여성으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철저히 억압되는지, 끊임없는 폭력과 고통으로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아프간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은 당연시되며 사회적으로도 철저히 고립된다. 모든 사회의 규칙들이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조항들로 가득하다. 외출도 남편이나 남자 친척이 동반하지 않으면 허용되지 않는다. 설령 혼자 나갔다가 걸리면 태형을 맞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학교는 폐쇄되었고, 남자가 먼저 말을 시키기 전에는 말을 하면 안 된다. 화장도 금지되고, 손톱을 치장하면 손가락을 자르고, 명예를 더럽혔다 생각되면 돌로 쳐서 죽인다. 정말 소설에서 지어낸 이야기였음 싶다. 하지만, 언론에서 보도되는 사진이나 이야기는 이보다 더 끔찍하다.
폭군 남편 '라시드'와 강제 결혼한 '마리암.' 그 후 아이를 일곱 번이나 유산하게 되고, 남편의 폭력도 점점 심해진다. 한 번은 식사가 맛이 없다며, 마리암에게 돌을 강제로 씹게 해 이를 부러트린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폭력에서 지켜주지 못한다.
살기 위해서는 때리면 맞고, 조용히 참아낼 수밖에 없다. 그게 그 사회의 종교이자 규율이고 여성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숙명인 것이다.
라시드는 조카뻘이나 될법한 어린 소녀 라일라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나쁜 결혼제도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전처와 후처, 그리고 폭군 남편이 한 집에 같이 살게 된 것이다.
이 책이 단순히 여성들의 고통만 묘사했다면 여운과 감동이 덜했을 것이다. 이 책은 두 여성의 우정과 연대, 희생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부모도 이웃도, 법도 사회도 어느 누구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둘은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 마치 엄마와 딸처럼 기꺼이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으며, 서로의 희망과 구원이 되어준다.
결국 마리암은 라일라를 위해 희생을 택한다. 남편 라시드를 죽여, 라일라를 죽음에서 구해낸다. 하지만, 남편을 죽인 여성을 아프간 사회가 가만둘 리 없다. 마리암은 스스로 모든 것을 떠맡고, 라일라 만이라도 새로운 세상으로 떠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그리고, 담담히 처형을 받는다.
어렸을 때 부잣집의 사생아로 태어나 숨겨진 채 자라난 마리암. 15살에 강제결혼. 그 후 끊임없는 남편의 학대와 핍박을 받았던 마리암의 삶을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잡초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마리암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건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본문에서 -
죽은 마리암을 그리며 그녀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을 방문한 라일라. 불운했던 마리암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녀의 아버지 '잘랄'이 마리암에게 남긴 편지를 읽게 된다. 놀랍게도 그녀를 버린 것에 대한 사과의 편지였다.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토록 기다렸던 말을 그녀가 직접 들을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외롭지 않았을 텐데...
사랑하는 마리암, 너는 착한 딸이었다....
나는 많은 걸 후회한다...
뭣 때문에 그랬을까?
체면을 구길까 봐 두려워서?
나의 평판에 먹칠을 하기 싫어서?
이 저주받은 전쟁에서 내가 보았던 끔찍한 것들과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었는지 모르겠구나...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는 때가 되어서야
뭔가를 깨닫는 사람들을 위한 벌인지 모르겠다.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본문에서 -
세상은 정말 그녀들에게 너무 차갑고 냉혹했다. 법과 종교는 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본인이 사랑하는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온 식구가 함께 살 수 있는 것, 여성도 사회적 일원으로 역할을 하고 교육을 받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 그것이 그녀가 꿈꿔왔던 일생의 소망이었다. 누구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그녀들에게는 꿈에서조차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마리암과 라일라가 겪어야 했던 절망적인 삶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아직도 지구 한 편 어디선가에서 이 일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더욱 마음 아프다.
장미와 튤립으로 가득하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도시,
천사조차 그 푸른 초원을 부러운 눈으로 내려다본 도시,
지붕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달들이 반짝이고,
벽 뒤에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숨어있는 도시…
이곳에도 천 개의, 아니 수만 개의 찬란한 희망의 태양이 다시 비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