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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랜드 Oct 03. 2020

꿈이 실현된 그날, 모든 것이 바라던 것과 다르더라도

< 죽음의 수용소에서 > 집에 돌아온 사람들을 통해 배운 것

저자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아우슈비츠에서 수감생활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바로, 스스로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 삶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막연히 잘 될 거야 하는 희망과는 다르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희망이 깨지는 순간 죽음을 맞이 했다. 극도의 공포감과 절망이 가득한 고통 속에서, 내일 당장 가스실로 끌려가게 될 운명 속에서 어떠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인간의 마지막 자유만큼은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 수용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분석학 책을 써서, 자신의 삶이 가치를 갖기를, 이러한 고통에도 반드시 의미가 있기를 바랐다. 그러한 삶의 의미에 대한 의지가, 극악한 추위와 빵 한 조각으로 며칠을 버텨야 하는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내면적 풍요로움과 정신적 자유가 있는 삶으로 도망칠 수"있게 해 주었다고 회상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수용소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이 직면한 슬픔과 허무함에 대한 부분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그 순간이 마침내 찾아왔지만, 그들을 기다린 것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갔을 때 맛보게 된 비통함과 환멸이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며 찾아간 고향에는 부모도, 아내도 없었고, 오래돼서 폐허로 덩그러니 남겨진 집과,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는 마을 주민들의 차가운 시선만 있을 뿐이었다.


"그 사람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수용소에서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그 사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슬프도다! 자신의 꿈이 실현된 그날, 모든 것이 자기가 바라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은 슬프도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느꼈을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어두운 수용소에서, 존재하지도 않을 따뜻한 고향의 모습을 꿈꿨던 그때가 더 행복했다고 회상할 것이다. 이런 허무함을 못 견뎌, 더 폭력적이고 무력한 모습을 보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팠다.




우리는 멋진 미래를 꿈꾸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한다. 이 고비만 넘기면, 다른 더 멋진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고3 때는 멋진 대학생활을 꿈꾸면서, 직장에서는 승진했을 모습을 꿈꾸면서, 다이어트할 때는 모델 같은 모습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현실의 괴로움을 잠깐 잊고 다시 용기를 갖게 된다.


하지만,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토록 원했는데, 막상 원하던 것을 이뤘을 때 느껴지는 허무함 같은 것 말이다. 생각보다 주변 반응도 없는 것 같고, 스스로도 굉장히 뿌듯할 줄 알았는데, 약 10분 정도 기분 좋았다가 사그라지는 그런 느낌 말이다. 내가 이것만 성취하면, 길거리에 꽃과 현수막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지 않더라도, 뭔가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 같았는데 말이다.


어차피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면, 그런 허무함과 실망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아예 아무것도 소망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실망할 테고, 도달한다고 한들 기대보다 끝이 허무할 거니까 말이다. 나중에 실망할 내 모습을 위해서, 미리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어떨까.





그러나, 이 책에서는 말한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인간의 삶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라고 말이다. 설령 거의 가망이 없는 상황에서라도, 우리는 각자의 삶에 충만한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써야 한다.  


 "미래의 어떠한 목표도 찾을 수 없다고 하여 자신이 퇴행하는 것을 내버려 두는 사람은 과거를 회고하는 데에만 몰두하며"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실망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더 큰 꿈을 소망하며, 계속 앞으로 나가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비록 이뤄지지 않더라도, 희망하고 꿈꾸는 것 자체가 나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설령, 내가 간절히 원하던 그림이 펼쳐지지 않더라도, 힘든 어두운 터널의 순간을 걸어온 내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돌아보자. 0.1cm라도 성장해있다면, 그것이 1cm가 아니어도 괜찮다. 다시 그 자리에서 두배, 세배의 더 큰 꿈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실망의 순간이 오히려 좋은 자극제가 되도록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수용소에서 "집에 돌아온 사람에게 있어서 모든 경험 중 최고의 경험은 모든 고통을 겪은 후에,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이라고 말이다. 지금 힘들다면 "정상적인 환경에서였다면 절대 성취할 수 없었을 자기실현을 통해 위대함을 이뤄보겠노라"믿어보자. "그러한 체험들을 극복해냄으로써 자신의 삶을 내면의 승리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가져보자.


“당신이 가진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자유는 바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라는 점을 잊지 말자. 오늘 어떤 소망과 희망을 품을지, 과거의 아름다웠던 시절에 머물러 있을지, 그 결정 또한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 따옴표 표시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이다

+ 원서 제목은 < Man's Search for Meaning >이다. 한국어 책 제목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라고 번역되어 있다.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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