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다큐로 보지 말라는 말이 있다. 드라마는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라고 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은 기존 가치관을 확립시키기도 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기도 한다. 과거에 엄청난 히트를 친 <허준>이나 <종합병원> 같은 의학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그 해 의대 지원이 크게 오르기도 하고, <김삼순> 드라마 이후 베이커리 수강생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최근 한국 드라마가 다양한 장르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변치 않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여성 직장인들이 묘사되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로맨틱 드라마에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 캔디‘같은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는 사람은 100% 여성이다. 특히 서비스 직군을 묘사할 때 더더욱 그렇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포지션이 법칙처럼 적용된다. 그 여성 상사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고, 본인의 사적인 일부터 인격모독까지 서슴지 않는다. 위기에 닥치면 본인은 뒤로 숨고, 후배의 성공을 질투하고, 팀에서 좋은 업적은 가로채고, 본인의 상위 직책자에게는 한없이 온화한 모습의 양면성을 보인다. 악랄한 여성 상사의 중심으로 일명 ‘무수리’ 같은 다른 여성들이 합세하며 마치 고등학교 불량서클처럼 우르르 뭉쳐 다니는 민폐 집단으로 묘사된다.
특히 여성 경영자나 임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못해 악녀로 그려진다. 여성 임원들은 낙하산으로 떨어진 철없는 재벌집 딸로 나오거나, 집안 장남을 몰아내고 대표직을 맡기 위해 혈안 되어 있다. 대표직을 맡은 여성은 차갑고 독한 여성으로 묘사되며, 부를 유지하기 위해 형제도 가족을 서슴지 않고 져버린다. 아이들은 그런 엄마를 무서워하거나 증오하고, 전업 주부로 살아가는 가정적인 다른 집의 삶을 부러워한다. 드라마 장르가 로맨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악역 세팅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K-드라마에서 비치는 여성의 모습이 이렇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력직 여성이 회사와 일에 대한 철학 없이 오직 돈과 욕망을 추구한다는 인상은 자칫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킹 더 랜드>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호텔리어, 승무원, 면세점 여직원들과 지배인, 슈퍼바이저, 매니저들의 묘사가 2023년도 드라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아직도 이러한 시선으로 경력직 여성을 바라본다는 게 놀라웠다. 물론 일부 직장에서 실제로 ‘텃세’나 ‘악행’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과 주인공 친구들을 제외한 모든 여성 매니저들과 여성 경영자가 질투와 승진, 부에 대한 욕망만 가득할 뿐, 직업에 대한 윤리나 철학은 찾아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예의도 매너도 없었다. 오로지 여성이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갖는 것에 대해, 탐욕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가득했다.
한국이 26년째 OECD 성별 간 임금 격차 1위라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남성보다 저렴해서 할 수 없이 여성 직원을 채용한다고도 한다. 승진 대상자로 여성과 남성이 올랐을 때, 경력직 여성이 제외되는 것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경력 단절 여성이 구직을 위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드라마에서 경력직 여성을 다룰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경력직 여성이 조직의 민폐가 아니라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미디어에서도 이제 고리타분한 인식에서 벗어나, 건강한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