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쨈맛캔디 Oct 16. 2020

운명은 선택되어지는 것일까, 선택하는 것일까?

운명과 선택, 그 사이에서의 줄다리기

연말연시가 되면, 사주를 보려는 사람으로 점집이 붐빈다. 사주는 사람이 출생한 때를 기준으로, 이미 각자의 운명은 갖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돈을 많이 벌지, 언제 결혼을 할지, 심지어 언제 죽을지까지, 개개인의 인생의 큰 그림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정해진 운명대로 모든 게 수렴되는 게 ‘운명’이라면, 매 순간마다 내가 하는 선택과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만약, 운명이 있다면, 내 운명은 언제,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책 <이기적 유전자 >에서는 DNA 또는 유전자 단계에서부터라고 본다. 부모와 그 전의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자가 나를 선택했고, 인간은 그들의 선택을 수행하는 “유전자의 꼭두각시”라고 말한다. 인간은 “유전자에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먹고살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들 간의 경쟁, 협동 및 이타적인 행동들도 결국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즉, 내 미래 또한 유전자의 명령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론적 생명관’은 장르는 다르지만 ‘사주팔자’ 론과 통하는 것 같다. 인간의 '자유 의지' 따위는, 유전자 프로그램 안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소설 <멋진 신세계>의 사회는 어떨까. 이곳에서는 '완벽한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해, 인류 운영에 최적합한 비율로 태아의 등급 나눠 길러낸다. 엘리트가 될 그룹, 학자가 될 그룹, 하급 노동자가 될 그룹 등, 5계급으로 나뉘어, 필요에 따라 맞춤형으로 대량 생산된다. 마치, 자동차를 생산하듯이, 필요한 수요만큼 계획을 세우고, 시나리오대로 태아를 분류하고 배양한다. 끊임없는 반복과 세뇌로 각자의 신분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예를 들어, 하급 노동자가 될 아이들은 글자와 책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통제되고 훈육된다. 혹시라도, 본인에게 주어진 신분에 대해 의심하고, 심지어 운명을 개척하려고 한다면, 사회 혼란과 붕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운명 지어진 '유토피아'에서, 대량 생산품의 일부가 된 나는 과연 행복할까?


소설 <기억 전달자>의 사회는 상황이 조금(?) 나을지도 모른다. 이곳은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효율적인 삶을 위해 모두가 똑같은 가족 형태,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특이한 점은, 이곳에서는 열두 살이 되면 위원회가 직위, 즉 개인의 미래를 정해 준다. 12년 동안 꾸준한 모니터링과 누적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 아이가 사회에서 어떤 직분을 가지면 좋을지 위원회에서 결정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에 남을 돕는 것을 좋아했다고 '분석된' 아이는 요양원 간호사로, 과학분야에 뛰어나다고 '판정된' 아이는 과학자로 직분이 주어진다. 아무도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지만 모두가 그 결정에 만족스럽게 복종한다. 누군가 정해주는 나의 운명은 어떠할까?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이미 내 운명은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고, 나는 그 운명에 복종만 하면 된다.


만약, 운명이 결정되거나 주어지길 희망한다면, 어느 가설을 더 믿고 싶은가? 과연 어떤 사회에 살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좌측부터,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 <기억 전달자, The Giver>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주팔자든 타로카드를 통해서든, 주어진 운명을 미리 알고 싶어 한다. 미리 알 수 있다면, 시행착오도 줄이고, 선택에 대한 후회나 미련도 없을 테니 말이다. 또, 난관에 봉착하거나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내 노력이 부족하거나 선택이 잘못된 게 아니라, 원래 안될 운명이라 생각하면 덜 괴롭다.


하지만, 위 책에서 살펴봤듯이, 누군가에 의해 내 미래가 계획되고, 프로그램화되고, 필요에 따라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모든 게 결정되어 있는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초라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질 것이다. 유전자가 됐든, 위원회가 됐든, 만약 그 누군가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 운명을 결정해버린다면, 심지어 내가 그 판결에 저항조차 할 수 없다면, 내 남은 생이 얼마나 암울하고 끔찍할지 몸서리 쳐진다.


우리의 운명이 이미 정해진 것인지, 아닌지는 적어도 생을 살아가는 동안은 알 수 없다. 아마 죽어서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도 운명과 줄다리기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때로는 운명이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고귀한 권리인 '선택의 자유'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 것이다. 운명을 거스르는 고난이 있더라도, 절대 남에게 그 권리를 양도하지 않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설령,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 의해 또한 운명 지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자신의 운명과 멋지게 힘겨루기 했던, 스티브 잡스가 남긴 유명한 "Connecting the dots" 명언이 크게 와 닿는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식 축사 (2005년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