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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랜드 Oct 18. 2020

내 인생 첫 쿠킹 클래스 - 식탁 위에 마법이 펼쳐지다

낯선 영역에 과감히 한발 들여놓기

결혼 한 친구들과 만나면, 하나같이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때가 제일 좋았다”라고 말한다. 엄마의 따뜻한 밥상에 익숙해있다가, 낯선 미국에서 혼자 세끼를 해결하려니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제때 밥 챙겨 먹는 게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다. 햇반을 박스로 사놓고, 반찬은 한인마트에서, 설거지를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1회용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 게 요리의 전부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요리는 언제나 큰 숙제다. 기본적인 요리는 그럭저럭 하지만, 손님이 방문할 경우 상차릴만 한 음식이 마땅치 않았다. 그럴 때면,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포장해와서, 이쁜 접시로 옮겨 담아 내고는 했다. 문제는 지인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식사를 초대받고, 초대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아이가 있는 집들은, 대개 가족 단위로 식사 초대를 한다. 저녁시간에 아이들만 혼자 남겨두고 올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캐주얼한 저녁식사 초대라 해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 외부 배달음식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족 식사 초대 자리는, 친한 친구와 TV 보면서 간단히 피자 시켜먹는 것과는 다르다. 조금 더 형식을 갖춰서 준비한다. 정성스레 만든 홈쿠킹 요리를 테이블에 보기 좋고, 먹음직스럽게 차려놓는다. 초대받은 손님도 감사 표시로, 샐러드 같은 간단한 애피타이저, 또는 집에서 직접 구운 쿠키나 빵을 선물로 가져온다.


어느새, 요리는 나의 약점이 돼있었다. 그러던 중 작년 말쯤, 우연히 쿠킹 클래스 공지를 보고, 용기 내서 신청했다. 드라마의 영향일까? 쿠킹 클래스는 뭔가 우아하고 교양이 있는 엄마들이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감히 신청해도 되나 싶었다. 무언가 낯선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맛있는 요리를 식구들에게 멋지게 선보이겠노라’는 초보 엄마의 굳은 의지는 강했다. 취미 삼아서, 또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10여 명의 엄마들이 한 그룹이 되어, 한 달에 2회 수업이 진행됐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내 인생 첫 쿠킹 클래스, 첫날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멋지게 잘 차려진 요리는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줄 뿐 아니라, 식탁을 더 오래 머물고 싶은 풍성한 자리로 만들어준다




수업 첫날, 바짝 긴장한 인턴사원처럼, 목을 길게 쭉 빼고 선생님의 설명과 움직임을 따라 눈과 귀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사진도 찍어가며, 나눠준 레시피 종이 가득 꼼꼼히 메모해나갔다. 중간에 궁금하게 있으면, 아무리 바보 같은 질문이더라도 주저 없이 물어봤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이렇게 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2시간이 10분처럼 휘릭 지나갔고, 발음도 낯선 ‘볼로네제 파스타’ ‘루꼴라 샐러드’ ‘토마토 브루스게터’ 같은 이태리 요리가 마법처럼 완성됐다. 와우! 비주얼도 예술이지만, 맛이 오성급 호텔 레스토랑 저리 가라 였다. 입안 가득 향긋하게 퍼져나가는 마늘향을 음미하며,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바게트를 한입 베어 물면, 이때다 싶게 위에 살포시 얹은 쫀득한 치즈와 올리브 소스가 사르륵 내려오며 풍미를 더한다. 약 0.5초의 시차를 두고, 부드러운 토마토소스에 감칠맛 나게 버무려진 탱탱한 파스타 면발을 후루룩 넣으면, 이건 ‘오 마이 갓’ 아니, 이태리어로 해야지, ‘브라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레시피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흥겹다. 마치 세계를 구할 주문서를 손에 넣은 마법사처럼 말이다. 돌아오는 주말에, 무작정 옆집을 초대했다. 마트에 들려 재료를 싹쓸이한 후, 앞치마도 이쁜 것으로 한 개 장만했다. 세계를 구할 물약을 만들 마법사에게, 멋진 마법모자 하나쯤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날 주말, 아침부터 부엌은 난리가 났다. 프라이팬, 냄비, 국자가 여기저기 날아다녔고, 믹서기 가는 소리, 접시 부딪치는 소리로 온통 분주했다. 정말 배운 데로 나올까? 이게 맞겠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과감하게 배운 데로 하나씩 해나갔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알람시계도 맞춰가며, 선생님이 했던 것을 최대한 재현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정말 신기하게 요리가 하나씩 완성돼서 나왔다. 무아지경, 자아도취! 이 기쁨을 뭐라고 표현할 수 없다. 손님상 준비는 뒷전이고, 나 스스로 약점이라 생각했던 영역을 극복했다는 기쁨과 성취감에 도취돼버렸다. ‘초신자의 운 (beginner’s luck)’ 덕분일까, 그날 저녁식사 초대는 정말 성공적이었다!


 

‘볼로네제 파스타’와 ‘토마토 브루스게터’ - 그렇다! 내가 만들었다!


왜 나는 그동안 요리하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생각해보았다. 귀찮음이나 정보 부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리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레시피대로 따라 한다 했지만, 처음 해본 요리는 실패할 때도 있고, 맛이 없어 버려야 할 때도 있다. 하나의 요리가 탄생하기 까지는, 재료 구입을 위해 발품도 들여야 하고, 그에 따른 비용과 시간은 물론, 멋진 요리를 만들기 위한 집중력과 노동력이 요구된다. 나는 그 과정에서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어내고 인내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건 비단, 요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원래 잘 못해’라고 나 스스로 규정한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것을 잘하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고 미리 단정 짓고, 아예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것들 말이다. 막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그 안에서 기존에 알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올 한 해 좀 더 ‘낯선 영역’에 두려움 없이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남의 영역'이라 미뤄놨던 것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한 발씩 들여놓는 것이다.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낯선 것'들에게, 이제 내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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