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쨈맛캔디 Nov 26. 2020

'솔직하게 말해서'란 말의 4가지 함정

뭐 어쩌라고 나한테 말해. 쪽팔리게.

유명한 자기 계발서 <미라클 모닝>의 저자인 '할 엘로드'는 책에서, 자신에 대한 솔직한 피드백을 듣기 위해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냈던 일화를 소개한다. 저자는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지만, 당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에, 가족, 친구, 동료, 직장 상사, 심지어 옛 연인 등, 자기를 잘 안다고 생각되는 23명에게 (마이크 조던 팬이어서 23명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저자의 강점 3가지와, 반드시 개선되길 바라는 약점(weakness) 3가지를 ‘솔직하게’ 적어서 답변해 달라고 요청한다. 혹, 저자가 마음 상할 것을 염려치 말고, 가능하면 약점에 대해 가차 없이 솔직하게 적어달라는 당부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받은 여러 피드백을 바탕으로, 본인의 삶을 혁신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를 읽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 '정말, 이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이렇게 대범한 요청을 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내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해도, 스스로의 약점을 마주하는 것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그 지적이 나와 가까운 사이거나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나온 것이라면, 더욱 뼈아픈 충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잠깐 입장을 바꿔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저자의 지인이고 본인의 약점에 대해 솔직히 알려달라는 메일을 받았다면, 과연 나는 답장을 했을까? 했다면 무슨 내용을 적었을까? 하고 말이다. 결론은 나는 답변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사람들은 대개 '솔직하게 말해줘'라는 답변에 정말 '솔직한' 답변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다. 연인들 사이에서 헤어질 때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솔직하게 말해봐, 날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좋아한 적 있어?' 과연 이 질문이 정말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어서 묻는 것일까? 또는, 집들이 저녁 초대에서 '음식이 맞지 않으면 솔직하게 말씀 주세요, 배달음식이라도 시켜드릴게요'라고 말하는 집주인이 정말 솔직한 음식 평을 기대하는 것일까? 이밖에도 수많은 예시가 있다. '솔직한 답변'을 해달라고 하지만, 정말 솔직하게 말하길 원치 않는 질문들 말이다.


 번째 이유는, 이미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약점에 대해 누구보다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걸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은, 아직 작게나마 '내가 꼭 그런 사람은 아닐 거야'라는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낱같은 희망을 잡고, 혹 내가 의심하는 것이 맞는지 타인의 시선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즉, 아무리 괜찮다 해도 마음 한편엔 아직 자신의 단점을 적나라하게 직면할 준비가 안됐을 수 있다.



세 번째로,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의 단점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장점이 될 수 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의 경우, 대개 행동도 빠르고 말도 빠르다. 같은 행동을 했을 때, '정말 추진력 좋다'라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며 비판할 수도 있다. 이는 주어진 상황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자신의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내 단점을 묻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이것이 솔직한 의견이라면, 그동안 우리 사이는 솔직하지 않았다는 것일까 하는 배신감이 들 수 있다. 이것이 당신의 솔직한 의견이라면,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가식이란 말인가? 왜 그동안 한 번이라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것인가?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단점에 대해, 상대방은 그동안 거슬렸을 테고, 그걸 나에게 알려주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게 더 불쾌하고 민망해질 수 있다.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단점과 나쁜 점을, 모른 척해주는 것이 서로의 관계 유지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사람이 내 앞에서 자존심과 체면을 세울 공간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뭐 어쩌라고 나한테 일러. 쪽팔리게.
누가 욕하는 거 들으면 그 사람에게 전달하지 마. 그냥 모른 척 해
너희들 사이에서 다 말해주는 게 우정 일지 몰라도, 어른들은 안 그래
모른척하는 게 의리고 예의야.
괜히 말해주고 그러면 그 사람이 널 피해
내가 상처 받은 걸 아는 사람 불편해. 보기 싫어

- 드라마 <나의 아저씨> 대사 중


그렇다. 나의 단점을 속속히 아는 사람, 불편하다.



그렇다고, 가식적으로 항상 좋은 이야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솔직하게 말해서'란 말로 시작해서, 상대방의 단점에 대해 지적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 친구 관계가 틀어졌을 때는, 매일 학교에서 만나니 서로 풀 수 있는 기회도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 내가 싫은 사람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생긴다. 한번 틀어진 관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거나, 심지어 원수지간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솔직히 말해줘'라는 질문에 '솔직히 말해서...'라고 적나라하게 답해주었다면, 상대방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뭐 어쩌라고 나한테 말해. 쪽팔리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