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직장인 생존 전략 - 회식의 주인은 팀장이 아니라, 팀원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팀을 맡은 후, 팀원들과 회식을 하기로 했을 때였다. 한국에서 처럼, 퇴근 후, ‘오늘 다같이 맥주 한잔할까?’ 하며, 감히 팀원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침범하는 무리수를 둘 수는 없었다. 회식 자리를 마련할 수는 있지만, 참석 여부는 온전히 그들의 선택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설령, 강요에 의해서 온다고 한들,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언제 어떻게 회식을 제안해야 할지 머뭇거려졌다.
팀 막내에게 ‘네가 알아서 좀 준비해’라고 요청하면 편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회사에는, ‘팀 막내’라는 개념이 없다. 늦게 입사하건, 나이가 적든 많든, 자기의 포지션에 대한 주어진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회식 준비를 잘한다는 것을 이력서에 적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결국 참석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회식 준비’는 오롯이 리더의 몫이다. 이것 또한 리더십의 척도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공적으로 회식 참석률을 높일 수 있을까?
미국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가 많고, 아이들의 학교 등하교를 부모가 번갈아서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미팅 중간이더라도, 아이를 픽업할 시간이 되면, 하나둘씩 사라진다. 물론 미팅 전에 ‘오후 4시까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므로, 내 어젠다를 먼저 논의해 달라’고 회의 요청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할 수 있다. 때문에 회식을 당일날 공지하면, 아이 픽업 시간뿐 아니라 기존의 개인의 저녁 일정에 의해 참석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대게 최소 2주 전, 참석 멤버가 많은 대규모 회식일 경우 최소 한 달 전에 넉넉히 시간을 두고 공지해야 참석률을 높일 수 있다. 팀 화합을 위한 회식 일정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시간 또한 배려되어야 편하게 회식을 즐길 수 있다.
미국에 와서 놀란 것이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면, 뭔가 까탉스럽다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 하지만, 땅콩과 같은 견과류 알레르기의 경우, 호흡곤란 등을 야기시켜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로 매우 치명적이다. 때문에 미국의 대부분의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도시락에 견과류를 싸오는 것을 금지하는 곳이 많다. 본인이 먹지 않더라도, 주변에 견과류를 먹은 사람과 접촉해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산물 (Seafood)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꽤 많다. 해산물이 들어간 또는 접촉된 음식을 먹으면, 피부가 붉게 부어오르거나, 경련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갈 수도 있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번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보니, 식당을 선정하는 데 있어, 팀 멤버들이 평소에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을 미리 파악해 놓는 게 도움이 된다. 음식 알레르기뿐 아니라, 채식주의자들도 많다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안전하게 선택되는 식당으로, 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선호된다. 적당히 분위기도 나고, 다양한 기호에 따라 메뉴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석률을 높이기 위해서, 해당 레스토랑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메뉴판’을 회식 공지 시, 함께 공유하는 것도 팁이다. 미리 어떤 메뉴를 주문할지 정할 수 있고, 사전 안전(?) 점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참석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점심식사가 좋지만, 아무래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맥주나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가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한 대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저녁 회식의 경우, 대개 오후 4-5pm 쯤 시작한다. 때문에 저녁 회식이 있는 날은, 점심을 간단히 먹거나 스킵하기도 한다.
회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 미리 일을 정리하고 식당으로 출발하지만, 회식에 참석하지 않을 사람들은 평소처럼 사무실에 남아 업무 마무리를 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참석이 힘들다는 의사표시를 미리 전달했기 때문에, 옆에서 참석을 부추기는 일은 없다. 혹, 상황이 바뀌어서 참석할 수 있게 되는 경우라면, 반드시 리더에게 미리 이야기해야 한다. 식당에 연락해 예약 좌석이 추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요청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참석 변경도 서로에게 불편할 수 있는 것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모임이 무러 익어 갈 때쯤이면, 한 두 사람씩 자리를 뜨기도 한다. 일정을 조정한다고 했지만, 오래 남아 있기 힘든 개인 일정이 있을 수 있고, 계약직 분들의 경우, 6pm 업무시간이 종료되기 때문에, 그 후 남아 있는 것은 온전히 본인 자유다. 회식도 업무시간의 일환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 근무를 채우기 위해, 회식이 있는 날은 조금 늦게 출근해 회식자리에 오래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본인의 여건에 맞게 팀장과 사전 조율한다. 가능하면 보다 많은 멤버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회식 날짜를 프로젝트 보고/마감일을 피해서 잡는 게 이런 이유기도 하다.
가끔은 다 같이 우르르 중국집으로 몰려가서 “탕수육 2개에 짜장면 6개 통일이요”라고 묻지도 않고 주문하던 동료애(?)가 그립기도 하다. ‘오늘 저녁 다 같이 치맥 하게 모여!’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처음에는 ‘밥 한번 먹는데, 뭐가 이리 복잡하고 까다로워?’했던 것들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팀워크를 높인다는 회식의 목적에도 맞고, 방법도 합리적였던 것이다.
회식의 목적이, 단순히 리더의 저녁식사 해결이나, 그 사람의 기분에 따른 즉흥적인 여가시간을 보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회식의 주인공은 팀원들이 돼야 하고, 그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그깟 회식이 아니라, 회식 하나에도 팀원들의 관심사를 살피고, 참여를 독려해야 하는 게 리더의 책임이라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