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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랜드 Oct 14. 2020

갑작스러운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구조조정 당한 직원에게 배운 아름다운 뒷모습에 대하여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1년에 몇 번은 구조조정(Layoff)을 겪게 된다. 한국에서는 구조조정은 IMF 때나 들어봤을 정도로 흔치 않지만, 미국에서는 그 규모가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지만 빈번하게 사용되는 경영방식인 것 같다. 구조조정을 하게 되면 해고 대상자들은 당일 HR로부터 결과를 통보받는다. 이는 당사자도 당황스럽지만, 같이 일하던 동료들 또한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디 당사자만 하겠느냐만은... 그렇게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고 떠나간 멤버들의 빈자리는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나가는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을 배려하려고 노력한다. 이게 곧 기업 평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구조조정을 직원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즉, '저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을 거야~'  ‘일을 잘 못했나 보다’라는 시선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남이 알면 안 되는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사업 상황에 따라 직원이 '영향'을 받은 것이고,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장 및 경영상황 등 회사의 문제로 바라보는 게 신선했다. 때문에 영향을 받은 사람에 대해 회사에서도 퇴직 수당/보상(severance package), 구직기회 제공(Job Fair) 등을 제공해주며, 적극적으로 재기를 돕는다. 


해당 회사뿐 아니라, 관련 업계에서도 서로 적극적으로 자리를 알아봐 준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facebook)에서 구조조정이 있었다고 하면, 옆 회사인 구글(Google)에서 “페이스북 인원 감축에 대한 슬픈 소식을 들었다. 우리 회사 채용공고를 확인해달라, 당신을 필요로 한다. 주저 말고 지원해달라’라고 공식 트위터에 포스팅한다. 처음에는 이런 게 참 낯설었다. 경쟁회사의 구조조정과 어려운 상황에 대해, 서로 감싸 안으려는 모습이 성숙해 보였다. 곰곰이 생각하면 이게 맞다. 왜냐면, 언젠가 우리 회사도, 나도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상관없이 말이다. 


누구에게나 원하지 않은 이별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벌써 2년 전 이야기다.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몇 개가 접히면서, 일부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다. 오전에 대상을 통보받은 멤버들은 인사팀(HR)과 별도 절차가 진행된다. 보안 이슈로, 통보를 받은 사람은 곧바로 사무실 밖으로 안내된다. 때문에 작별인사를 나눌 겨룰 도 없이,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볼 수 없게 된다. 구조조정 발표 후,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오전 내내 사무실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회사 밖 벤치에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떠나간 멤버 소식에 주저앉아서 우는 사람들. 떠나간 사람들도 남겨진 사람들도 모두가 침울했다. 이 날 정상업무가 힘든 것을 고려해 조기퇴근 공지가 내려왔지만, 누구 하나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사무실 한 공간이 텅 비었다. 떠나간 자리를 보니, 컴퓨터 모니터도 그대로 켜있고, 책상 위에 연필, 메모장도 그대로 놓여있었다. 잠시 점심 먹으러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다만, 이젠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가방을 챙기러 자리로 돌아오니, 메일이 와있었다. 떠나간 동료 한 명이 보낸 메일이었다.


“켈리 야,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하려니 나도 당황스럽다.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나왔지만, 나보다 더 놀랐을 너와 팀 멤버들을 위해, 급하게 메일 쓴다. 회사 메일 계정 접근이 바로 닫혀서, 멤버들의 회사 메일 주소를 모르겠더라. 다행히 너 회사 이메일 주소가 짧아서 기억할 수 있었어.

미안하지만, 내 메시지를 멤버들에게도 전달해주겠니? 최고의 팀에서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다고 말이야. 내가 대상자가 돼서 너무 화가 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팀에서 다른 사람이 떠올라지지 않더라고. 모두 정말 훌륭한 멤버들이야.

나도 알아. 내가 소극적이다 보니 평소에 말이 많이 없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농담도 잘 못했는데, 우리 팀 멤버들은 늘 내 썰렁한 유머에 웃어줬다는 것을. 너무나 고맙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페이스북, 링크드인(LinkedIn) 주소를 남기니, 계속 연락하자고! 잘 지내!”




지금도 이 메일을 읽으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이런 메일을 남길 수 있었을까. 슬픔, 감동, 잔잔한 여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때 나도 결심했다. 절대 기대하고 싶지는 않지만, 언젠가 내가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끝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겠노라고.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학교, 회사, 단체 등,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이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성숙한 마무리가 주는 아름답고 잔잔한 감동을 말이다.






와우! 해당 에세이가 월간 < 좋은 생각>의 "제 16회 생활문예대상"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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