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시대의 '유사 전문가'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
최근 방송에서 역사를 왜곡했다는 논란에 이어, 논문 표절 의혹까지 제기된 역사 강사 설민석 씨가, 결국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다'라고 밝혀 이슈가 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의 대중화는 설민석 씨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설민석 씨의 기여가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한국사는 중/고등학교 졸업 후 다시 볼일 없는 먼지 쌓인 창고 한 켠의 옛 추억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혜성처럼 대중 앞에 나타난 설민석 씨는 각종 예능프로그램, 교양 프로그램을 종횡무진하며, 주요 TV 시청시간대에 남녀노소 모두를 한국사 강의 앞으로 불러 모았다. 그는 한국사가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고, 대중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나아가 애국심과 정체성을 심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논란으로 인한, 그의 몰락을 지켜보는 게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이번 <설민석 논란>을 단순히 개인의 자질과 역량 부족으로 치부한다면, 제2의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번 논란을 통해서 돌아볼 점을 살펴보고, 개선할 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학교 역사시간에도 배웠듯이,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았고, 일제의 잔재인 친일파 청산 및 군부독재에 대한 심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우리 과거사 청산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사에 대해, 특히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주요 언론/미디어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수학처럼 답이 정해진 학문이 아니다. 아무리 팩트(Fact)에 근거한다고 해도, 니체의 말처럼 "사실이란 없다, 다만 해석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보니,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이해관계와 잡음을 미리 염려해, 매우 조심스럽거나, 아예 언급을 꺼리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반 대중들이 선뜻 한국사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시험에 나오는 진지한 역사 이야기도 좋지만, 역사에는 수많은 흥미진진한 뒷 이야기들도 존재한다. 다양한 역사 소재들이 친구들과 술자리 안주거리로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우리 삶에 친숙한 소재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면 한다. 역사가 현재 진행형인 만큼, 나중에 충분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도록, 설민석 씨의 시각뿐 아니라, 그 반대 의견, 그 반대의 반대 의견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사회 분위가 형성된다면, 역사 왜곡에 대한 논란도 줄어들 것이다.
<설민석 논란> 중 하나는 그가 역사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연극영화과를 전공했고, 그 후 역사교육학 석사를 받았지만 논문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학술적 신뢰도에 의심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방송에서 반복해서 제기되고 있는 정보의 오류와 왜곡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역사 강사로써의 자질 부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만하다. 사실, 그에 대한 역사학자로서의 자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방송/미디어에서는 설민석 씨를 계속 찾게 됐던 것일까?
바로 대중들의 그를 원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대중들이 그의 화려한 언변에 눈과 귀가 멀었다고 하지만 (심지어 그를 언변 좋은 '사기꾼'이라지만), 이는 대중들을 너무 무시하는 평가다. 기존 TV/신문과 같은 미디어가 아니더라도, 유튜브 등으로 대표되는 뉴 미디어 (New Media) 시대의 대중들은,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는 경향이 있다. 내 눈높이에 맞게, 내가 원하는 정보나 지식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취사선택한다. 뉴미디어에게 계속 고객층을 잃어가는 기존 미디어에서 기존 <설민석 논란>이 있었음에도 그를 계속 선택하는 것도, 그가 이런 고객들의 니즈를 채워줬기 때문이다.
그가 공식(?) 역사 전공자가 아니니, 역사 강사가 되면 안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요리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 백종원 씨는 사회복지학 전공자가 아닌가. 그뿐 아니라, 유튜브의 수많은 인기 유튜버들 중에서, 관련 주제 전공자가 얼마나 될까? 요즘은 전공 여부를 떠나 대중들에게 널리 지지받는 '유사 전문가'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말 그대로 유사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들의 정보가 늘 옳은 것도 아니고, 이로 인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중들이 유사 전문가에 열광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대중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주제로 선정하고, 그들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라이브 방송이나 댓글을 통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제공하고, 스크린 뒤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소통하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언제부터인가 대중 미디어에서도 경계를 넘나들며, 유사 전문가들을 방송으로 적극 끌어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설민석 논란>의 초점은 그가 역사를 전공했느냐 여부보다는, 그가 전달한 내용이 제대로 검증되었느냐는 데 있어야 한다. 특히, 설민석 씨가 다뤘던 주제가 역사 강의인 만큼, 기초적인 사실관계의 정확성에 만전을 기했더라면 하는 점이다. 그의 인기와 공신력만큼, 그에 의해 잘못 생산된 정보가 재생산되고 널리 유통되면서, 오해와 편견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점은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방송에 내보낸 제작진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출처: '지식소매상 vs 유사전문가' 또 논란된 설민석 쇼 / 한국일보). 오히려 가짜 정보, 왜곡된 정보가 넘쳐나는 뉴미디어 시대에, 공신력 있는 신문/방송의 책임이 더 클 것이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외면받지 않는 길일 것이다.
이번 <설민석 논란>에 대해, 그가 잘못 전달한 역사 정보 왜곡이나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으로 그가 그동안 한국사 대중화에 기여한 노력이 무시되는 상황과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자질 부족으로 귀결되는 것이 안타깝다. 한국사를 전공한 일류대 교수님이나 학자라 하더라도, 방대한 역사의 흐름을 모두 사실 기반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사에 대한 언급을 민감해하는 사회 분위기와 뉴미디어 시대의 검증 없는 '유사 전문가'등용에 대한 반성 없이는, 언제든 제2의 <설민석 논란>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충분한 휴식과 성찰 후, 그의 맛깔난 한국사 강의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