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크리처물의 한 획을 긋다, 넷플릭스 <스위트 홈 > 리뷰
Covid 시대의 방콕 문화와, 연말 연휴가 맞물린 요즘, 관객들의 시선을 잡기 위한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넷플릭스 글로벌 톱 10에 당당히 랭크된 한국 드라마 <스위트 홈> 일 것이다.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전혀 스위트(sweet) 하지 않다. 좀비나 SF 몬스터처럼, 사람을 죽이는 괴물들이 등장하는 크리처물 (Creature + 사물, 物)의 호러와 스릴러가 주 골격을 이룬다. 그리고, 그 안에 따뜻한 인간애와 사랑의 메시지가 마치 혈관처럼 촘촘히 얽히고설켜 있다.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크리처물이라는 낯선 장르인 만큼, <스위트 홈>의 흥행은 새로운 K-크리처물을 탄생시켰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어렸을 때 내가 알고 있던 크리쳐물 캐릭터는 <고스트 버스터즈>의 슬라임 액체 괴물 정도였다. 당시, 유령을 잡는다는 컨셉과 끈적한 녹색 액체의 먹깨비 모양의 고스트가 참 신선했다. 그 후, 한국에서도 <진격의 거인> 류의, 기괴스러운 크리처물을 소재로한 만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괴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애니메이션으로는 크게 성공했을지라도, 영화로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아마도 괴물을 현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CG 기술력과 대규모 자본의 투입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기존 크리쳐물 영화들은 최종 보스 괴물 1-2개가 영화 말미에 살짝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이지, <스위트 홈>처럼 드라마 전반에 걸쳐 쏟아져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스위트 홈>은 매회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끔찍하거나,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기괴한 모습의 괴물들이 다양한 사연과 함께 등장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처음엔 징그러웠지만, 자꾸 볼수록 정이(?) 가는 '연근이 (머리가 잘린 부분이 연근처럼 생겼음)'나 '프로틴 (엄청난 덩치에 근육을 가진 거대 괴물)' 또는 '액체 괴물 (녹색 먹깨비를 떠오르게 한다)'과 같은 창의적 괴물들의 등장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다음은 어떤 기상천외한 괴물이 등장할지, 심장 쫄깃하게 가슴을 졸이며 빠져들게 만든다. 덕분에 나도 새벽잠을 설치며, 이틀 만에 정주행 완료하였다.
무엇보다 <스위트 홈>이 몰입도를 높여주는 이유는 괴물들의 CG (컴퓨터 그래픽스)가 리얼하다는 것이다. 기존 크리처물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허접한 CG가 진지해야 할 장면에서 실소를 자아내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에 인기를 끈 책이 원작인 경우, 독자의 텍스트 상상력을 뛰어넘은 리얼한 이미지를 구현해 내기란 쉽지 않다. 대게 책을 먼저 읽고, 영화화된 작품을 보면 실망할 때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다행히도(?) 나는 원작인 웹툰을 보지 못했고, 이 작품을 넷플릭스를 통해서 처음 접했다. 그래서 였을까? 작품 곳곳에 녹아든 CG 기술들은 연출의 극대화를 통해 극적으로 구현되었고, 치열한 사투의 현장 속으로 끌어들이기 충분했다. 연신 '히야! 한국의 CG 기술이 여기까지 발달했구나!'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예전,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소복 입은 귀신 등장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규모의 세트장과 최고급 기술력이 총동원돼서 만들어낸 괴물들은 압도적였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주인공 차현수 역의 '송강' 배우는 젊은 '송중기' 씨를 연상케 하며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인간일 때 보이는 순수한 눈빛과 괴물이 되었을 때 보이는 퇴폐적인 눈빛이 정말 매력적이다. 일명 '동묘 패션' 옷을 입고 사채업자로 등장한 '이진욱' 씨는, 특유의 아우라로 다 쓰러져가는 '그린홈' 대피소를 런웨이로 만들어버렸다. 진정한 걸 크러쉬를 보여준 '이시영' 씨도 정말 멋졌다. 흔히 재난물에서 그려지는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여주인공이 아니라, 일명 '크리스마스트리 등근육'과 탄탄한 복근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원작이 인기 웹툰인 만큼, 스토리 또한 참신하고 독특했다. 기존 좀비 영화처럼,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확산된다거나, 랜덤하게 서로 물고 물리는 막무가내 방식이 아니다. <스위트 홈>에서 나타난 괴물들은 원래는 사람이었고, 내면의 욕망이 터져 나오면서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설정이다. 예를 들어, 주민들의 갑질에 시달리는 경비원이 괴물이 돼 돌아오고, 본인의 실수로 아이를 잃었다고 자책하는 엄마는 스스로가 아이가 돼어 '태아 괴물'이 돼버리는 식이다. 주인공 '차현수'는 은둔형 외톨이로, 반은 괴물 반은 사람인 '특수 감염자'로 이야기의 극적 요소를 더 한다.
학교폭력의 괴로움으로 인해 주인공 현수는 괴물이 되어가지만, 정말 괴물은 그를 괴롭힌 가해자일 것이다. 그저 그날 햇살이 좋다는 이유로, 친구를 괴롭히고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서슴지 않는 부잣집 망나니 아들과 그를 보호하려는 부끄러운 어른들, 그리고 잘못된 사회 시스템. 그것이 진정 사라져야 할 흉측한 괴물이다. 또한, 극 후반부, 대피소 '그린홈'에 침입해 재미로 사람들을 죽이고, 성폭행하려는 범죄자 패거리들, 그들이 정말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에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인간인 척 살아가고, 피해자들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괴물이 되어가는 게 안타까웠다.
<스위트 홈> 드라마의 부제는 '죽어버리거나, 괴물로 살아남거나 (Die as a Human or Live as a Monster)'이다. 이 메시지는 단지 '그린홈' 주민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울림이 있는 질문이다. '무엇이 괴물인가? 과연 누가 진짜 괴물인가?'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괴물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지만, 실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가장 짙은 어둠도, 가장 흐린 빛에 사라진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과 괴물을 구분 짓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인정과 사랑인 것 같다. 주변의 외면을 받기만 하던 현수에게 주민들이 보여주는 감사와 관심은, 꼭꼭 닫혔던 그의 마음을 조금씩 흔든다. 서로 살아남기 위해 먹고 먹히는 괴물 같은 사회에서 상대방을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 이것이 인간이 괴물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막아주는 실낱 같은 희망이 아닐까?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내면의 욕망인 괴물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괴물이 점점 커져 내가 흉측한 괴물이 돼버리지 않도록, 우리 마음 구석구석 '흐린 빛'이라도 살며시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둬야 할 것이다.
2020년 한 해가 가기 전,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드라마 <스위트 홈>. 정주행 완료 후 소감은 징그럽기보다는 '참 잘 만들었다'였다. 당신이 조금 잔인한 부분은 살짝 눈감을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꼭 한번 시청해 보길 권한다. 내년에 시즌2 후기를 쓸 수 있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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