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5일, 첫 한국의 우주 SF(공상과학) 영화인 <승리호>가 넷플릭스를 통해서 개봉됐다. 첫출발이 아주 좋다.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전 세계 인기 영화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개인적으로 송중기 씨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오래전부터 손꼽아 기다려온 기대작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감상을 마친 소감은, 기대 이상의 수작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승리호>가 쏘아 올린 작은 공 4가지를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승리호> 제작비에 240억 원 들었다고 한다. 미국의 <어벤저스>가 2,600억 원, <스타워즈>가 2,700억 원 제작비에 비하면, 1/10 수준이다. 우주와 우주선, 미래사회를 표현하기 위한 세트 장비와 SF 효과를 생각한다면 SF 장르에서는 나름 저예산 영화라 할 수 있다. 대부분 CG 효과와 후반 프로덕션에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VFX 전문가 1,000여 명의 참여했다고 한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의 전유물이었던 SF 장르를 한국의 기술진으로 완성했다고 하니 더욱 놀라울 뿐이다.
우주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우주선 추격 장면도 어색하지 않고 정말 리얼하게 그려졌다. 웬만한 할리우드 SF 영화들보다 훨씬 수준 높게 연출되었다. 만약, 큰 영화관 화면으로 봤다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아찔하고 스펙터클 했을 것 같다. <킹덤> <스위트홈>에 이어 <승리호>까지, 이제 한국의 CG 기술과 연출력은 단연 세계 최고라 하겠다. 만약, 향후 <어벤저스>급의 투자를 받는다면, 어떤 어마 무시한 작품이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미국 친구들을 만나면 <스타워즈> 시리즈와 함께 성장했다고 자부하며 말한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누비며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이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어린 시절과 함께 성장한 캐릭터들은 그들의 친구가 되었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어렸을 때의 <스타워즈>에 대한 추억이, 어른이 돼서도 그들을 설레게 하고 다시 드넓은 우주를 꿈꾸게 해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스타워즈>를 별 감흥 없이 봤지만, 그들에게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시리즈로 계속 나오며, 꾸준히 사랑받는다는 것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나에겐 <승리호>가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우리 영화 <승리호>가 앞으로도 2탄, 3탄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SF 영화를, 여러 국가의, 다양한 세대가 함께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미국 방송가와 영화가에서 인종차별은 그 역사가 오래됐다. 주요 역할은 모두 백인들이 하고, 흑인이나 아시안들은 엑스트라나 단역을 맡는 식이다. 심지어, 원래 백인이 아닌 캐릭터임에도 굳이 백인이 배역을 맡아서 하는 '화이트 워싱(Whitewashing)'이 크게 이슈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승리호>에는 한국 주연배우 외에도, 중국, 러시아, 아프리카,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이 등장한다. 백인뿐 아니라 흑인, 아시안들이 골고루 등장한다. 오히려 <승리호>가 미국에서 만든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을 등장시키는데 더욱 유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90년. 지구가 병들고 우주 위성궤도에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기는 상황에서, 인종과 국가의 구분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결국, 같은 '인간'인 것을. 인이어 형태의 통역기를 통해 문제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점도 더 이상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별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안에서 티격태격 살아가며 국가와 인종을 가르고 차별을 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기에, 우주 청소부들끼리 각자의 이권을 위해 다투다가도, 위기에 처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다 같이 힘을 합치는 장면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국가와 인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업동이' 로봇 캐릭터를 통해 성별 경계도 허무려는 것 같았다. '업동이'는 여자 로봇인데, 남성 외형을 갖고 있어서, 피부이식을 받아 인간형 여자 로봇이 되는 게 꿈이다. 하지만 아직 목소리는 남자다. '업동이' 캐릭터를 통해 성 정체성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소재를 부담스럽지 않고, 재치 있게 다룰 수 있는 것도, 이 부분에 대해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한국 영화의 힘이 아닐까 한다.
보통 우주선의 캡틴은 남자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승리호의 선장인 ‘장 선장’은 여자다 (김태리 씨). 여자 선장이라고 해서,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나 가슴과 허리선을 강조한 쫄쫄이 스판을 입고 등장하지도 않는다. 헐렁한 재킷에 검은 선글라스를 걸쳐 쓰고는, 일명 ‘개판’인 승리호 선원들을 굵직한 저음으로 호령한다. 기존 영화에서 보여주던 여성 캐릭터처럼, 남자 주인공이 챙겨줘야 하거나 중요한 순간 문제를 일으키는 ‘민폐’ 캐릭터도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구성원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솔선수범을 보인다.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의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이 한국영화에서도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부한 신파형 스토리에 외국 배우의 연기가 어설프다는 비판의 시각도 있다.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에 아쉬운 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Covid 19으로 극장에서 개봉할 수 없는 상황에서 런칭한 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라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좀 더 애정 있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승리호>를 시작으로,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배경으로한, 더욱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한국형 SF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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