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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맛캔디 Jan 28. 2021

나는 아이돌의 '칼군무'가 불편하다

칼군무의 다른말은 ‘노오력’으로 포장된, 획일화된 시스템이 아닐까

요즘 아이돌 그룹을 보면, 최소 4명부터 많게는 10명 이상일 정도로 멤버 수도 많아지고, 컨셉도 다양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그들 모두 ‘칼군무’를 추고 있다는 것이다. 칼군무는 여러 사람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마치 한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은 동작을 말한다. 빠른 댄스음악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동작을 외우기도 쉽지 않을 텐데, 그 비트 사이사이에 더 정교한 동작을 추가해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심지어 라이브로 노래도 부르면서 말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화려하고 절도 있는 안무인 '칼군무'라는 설문조사 발표되기도 했다 (출처: K팝의 세계적 인기 비결은 ‘칼군무’였다/ 경향일보). 한국 팬들 뿐 아니라, 해외 팬들도 칼군무에 열광하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를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대부분의 아이돌들은 댄스그룹이고, 그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칼군무 연습을 위해 투자한다.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같은 동작을 반복 또 반복한다. 칼군무의 세계에서는 다양성이란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10여 명이 되는 멤버들이 삼각형, 사각형, 다시 일렬종대로 정신없이 줄을 맞춰야 하고, 팔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동작에서도 한치의 오차가 허락되지 않는다. 설령, 누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전체 흐름에 영향을 주게 되고, 연습시간은 더 길어지기 마련이다. 아이돌 그룹 내에서, 폭력이나 따돌림이 은연중에 일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다 같이 같은 동작을 동시에 해야 한다.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는 프레임 안에서, 어떠한 자율성도 들어올 틈은 없다. 마치 군대처럼, 획일적인 시스템을 강요하는 것 같다.

 

한 유투버가 머신러닝을 이용해 K팝 그룹 칼군무 일치도 측정 결과, 1위 그룹은 무려 95%의 일치도가 나왔다 (출처: wikitree.co.kr/articles/547544)


아이돌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보다 시선을 끌기 위해 댄스 난이도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춤이 아니라 묘기에 가까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저러다가 다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찔해 보일 때도 있다. 동작이 과격하다 보니, 노래 한곡에서도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고 땀을 뻘뻘 흘린다. 인기가 높을수록, 하루에 소화해야 할 살인적인 스케줄이 늘어나기 마련이고, 과로로 인해 무대에서 쓰러지거나 응급실로 실려가는 경우도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댄스도 결국 육체노동이다. 그들도 일반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이, 무대를 배경으로 쉴 새 없이 근육과 관절을 움직이는 육체 노동자인 것이다. 심지어 아이돌 그룹의 연령대는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한참 성장할 시기에, 이들의 건강한 발육과 성장에 대해 고민할 틈이 있을까 싶다. 아마 칼군무 문화에서 이러한 질문은 사치일 것이다.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것이 아니야. 그들은 어차피 돈 많이 벌고 잘 살 거야’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들이 전성기 때 온몸을 혹사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금세 사라지는 연예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서는, 본업인 노래가 아니라,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추억팔이나 동안 얼굴을 자랑하는 것으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와 퍼포먼스를 오래도록 보고 싶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람도, 그 사람이 하는 음악도 함께 무르익어가고 성숙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그러려면, 그들에게 여러 창의적이고 다양한 시도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가 강요되는 시장에서, 이러한 것들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아이돌의 칼군무의 영향일까? 심지어 유치원 학예회에서도 아이들의 칼군무가 강요되기도 한다. 노래도 동요가 아닌, 아예 아이돌 음악을 틀고 하는 경우도 있다. 멋진 조명 아래, 10여 명의 조그만 유치원생들이 아이돌 댄스가수 못지않게 칼군무를 선보인다. 이에 관중들의 탄성과 환호가 쏟아진다. 하지만, 정말 유치원 칼군무 무대가 아름다운가? 아이들이 그 무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연습을 하고, 실수가 반복될 때마다 얼마나 큰 꾸중을 들었을지 생각만 하면 아찔하다.


왜 모두 같은 동작이 강요되어야 하는가? 왜 모두 다 춤을 잘 추어야 하는가? 아이돌의 칼군무 문화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노오력’으로 포장된 획일화된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것이라는 취지 하에, 개인의 희생은 당연시되고 묵인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이돌의 칼군무가 너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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