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으면 운전은 필수다. 한국처럼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도시는 극히 소수다. 마트에 양파나 파 한 단을 사러 가려해도 최소 5-10분 운전해서 가야 한다. 다행히도 이 정도의 동네 단거리 운전은 문제없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30분 이상 운전해서 가야 하는 길은 큰 결심을 필요로 한다.
특히 길치인 내게,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은 큰 도전이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허리를 곧추세우고 바짝 긴장하며 운전대를 잡는다. 고속도로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에 흠짓 놀라고, 대형 트럭이 옆을 지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주눅 든다. 참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이다.
그래도, 나름 나의 생존 노하우가 있다. 가능하면 밀리는 고속도로는 피해 우회해서 간다. 차선을 급하게 변경하지 않기 위해, 출구(EXIT)가 가까워지기도 전에 차선을 미리 변경해놓는다. 어쩔 수 없이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기름 값은 내가 내거나 밥을 사고 카풀할 지인을 구한다. 이도 저도 안되면, 차라리 우버(Uber)를 타고 가는 게 속 편하다. 이래저래, 운전은 나의 약점이자 스트레스다.
그러다 뒤늦게 스키 배우는 재미에 빠지게 됐다. 전에는 스키장에 가면 남들 타는 것만 지켜보곤 했는데, 우연히 초보자 레슨에 등록한 후 그 짜릿함에 매료됐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하얀 눈 위를 내달리는 기분이 최고였다. 첫 레슨의 열기가 식기 전에, 곧 두 번째 레슨을 배워야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았다.
스키장은 2시간 운전해서 가야 했고, 꼬불꼬불 산등성이도 넘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일정이 바빠서 갈 수 없다고 했다. 들고 갈 장비도 있고 우버를 타고 스키장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주변에 같이 갈 지인을 구하려고 수소문해봤지만, 일정이 맞지 않거나 뜬금없다는 반응이다. 갑자기 의기소침해졌다. 그때, 남편이 넌지시 한마디 던진다.
네가 운전해서 가면 되잖아!
어라?!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남에게 의지하려 하지 말고, 내가 운전해서 가면 된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이미 선택 옵션에서 내가 운전해서 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왜 내 주변에는 같이 할 사람이 없는 거야?! 하며 불만했던 것이다. 내가 운전해서 가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내가 용기만 낸다면 말이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 혼자 떠나는 장거리 운전 여행이다. 무엇보다, 최대한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주말은 붐빌 테니, 주중에 휴가를 하루 내고, 출근 교통체증을 피해 새벽 5:30am에 출발키로 했다. 혼자 떠나므로, 누구에게 일정을 물을 필요 없이, 내가 희망하는 시간에 그냥 정하면 됐다. 하루 전날 짐을 미리 챙겨놓고, 구글맵에서 가는 길을 미리 익혔다. 마치 큰 대회 출정을 앞둔 선수처럼, 설레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다음날, 새벽이 밝았다. 도로에는 아무도 없이 매우 한산했다. 갑자기 자신감이 불끈 샘솟는다. 커피 한잔을 에너지 부스터처럼 벌컥벌컥 마시고, 내비게이션을 켜고 힘차게 출발했다. 온전히 나 스스로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용기와 자신감이 불끈 솟았다.
스키장에 가까워질수록, 주변 차들도 점점 없어지고, 눈 앞에는 꼬불꼬불 산등성이가 나타났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저기만 넘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산등성의 급커브 외길을 천천히 운전해나갔다. 신기하게도 옆 좌석에 앉았을 때는 관심도 없었던, 주변에 흐트러지게 핀 들꽃도 눈에 들어오고, 절벽의 암석들도 세심하게 보게 됐다. 한참을 올라가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저 멀리 스키장 간판이 보인다다. 야호! 고지가 앞이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스키장은 텅 비어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기쁨과 안도감, 그리고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가슴이 벅찼다. 신선한 산 바람이 오느라 고생했노라며, 겨드랑이 가득 찬 식은땀을 시원하게 닦아주는 듯했다. 사실, 스키가 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스스로 해내고 싶은 마음도 컸다. 처음이 어렵지 한번 해보면, 두 번째는 더 용기가 날 것 같았다. 무엇이든 마음먹기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흔히 삶을 운전에 묘사하고는 한다. < 부의 추월차선 > 책에서 저자는 내 인생의 운전석을 남에게 내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다른 누군가에 의지하지 말고, 내가 내 삶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내가 완전히 컨트롤하거나, 타인에 의해 컨트롤당하거나. 이 두 가지만 존재하지 그 중간은 없다고 한다. 옆 좌석에 타고 있으면 당장 편할 수 있지만, 위험이 닥쳤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거의 없다. 하지만, 스스로가 운전대를 쥐고 있는 한, 선택도 책임도 나의 것이다. 거기서 얻게 되는 자유로움과 삶의 지혜 또한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이번 경험을 통해, 좋은 삶의 교훈 또한 얻은 셈이다.
"내 인생의 운전석을 남에게 내주지 마라."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므로, 다른 누구도 당신을 길 밖으로 밀어낼 수 없다.
그리고 스스로의 선택을 장악하면 기적적인 일이 벌어진다.
실패의 경험은 더 이상 피해의식의 원인이 아니라 지혜로 자리 잡는다.
책임과 의무를 부정하면 당신은 스스로 인생의 열쇠를 남에게 쥐어 주게 된다.
다시 말해 인생의 운전석을 남에게 내주는 것이다.
"내 인생의 운전석을 남에게 내주지 마라."
-『부의 추월차선』중에서 (The Millionaire Fastlane, by M. J. DeMar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