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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랜드 May 01. 2021

왜 ‘소멸할 것 같은 소두’가 칭찬이 되었을까?

“내  얼굴은 큰 바위 얼굴, 난 항상 외톨이였지”


DJ DOC의 <나의 성공담> 노래 가사다. ‘큰 바위 얼굴’은 미국 국립공원의 암벽에 조각된 토머스 제퍼슨, 링컨, 루스벨트 등 미국 전직 대통령의 얼굴 상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큰 바위 얼굴’이라는 표현은 ‘당신을 보면 얼굴이 너무 커서 얼굴밖에 안 보이네요’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상대방의 얼굴 사이즈가 크다는 것을 강조하고, 조롱하는 의미가 섞여있다. 미국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큰 바위 얼굴 조각상이, 한국에서는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 ‘소멸할 것 같은 소두’라는 말은 큰 칭찬이 되었다. 미디어에서도 ‘CD로 가려지는 얼굴, 소두 종결자’라며 작은 얼굴을 크게 부각시킨다. 실제로 얼굴에 손바닥만한 CD를 들이대며 현장 검증도 서슴지 않는다. 어느새 얼굴이 작은 사람이 동경의 대상이 됐다. 친구나 동료들과 그룹 사진을 찍을 때도, 서로 뒤에 서려고 한다. ‘이번에는 네가 희생해’하며 몇 명만 앞에 남겨두고, 뒤로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이유는 하나, 원근법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얼굴이 작게 찍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앞에 얼굴이 크게 찍힌 사람을 보며 킥킥거리며 웃는다.


신기하게도, 미국이나 다른 해외국가들에서 소두를 칭송하는 경우를 거의 본적이 없다. 해외에 나가서 상대방에게 ‘당신얼굴이 작아서 좋겠어요라고 하면, 의아해할 것이다. 이건 칭찬도 아니고, 몸의  부위가 작다는  오히려 이상하게 들릴 법하다. 내가 공룡도 아니고, 얼굴만 작다는  정상이 아니라는 소리처럼 들릴  있다. 그렇다면,  유독 우리는 소두에 열광하는 것일까?


미국 전직 대통령의 '큰바위얼굴' 조각상. 만약, 이들이 한국에서 일컬어지는 ‘큰 바위 얼굴’ 의미를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전체적인 몸의 비율이 좋아 보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팔등신 몸매는 미의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팔등신 몸매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황금비율을 맞추기 위해, 키나 허리를 억지로 늘릴 수 없으니, 상대적으로 얼굴을 작게 보임으로써 전체적인 비율을 좋게 보이려는 것 같다. 화면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경우, 얼굴이 작으면 화면에 더 잘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도 자연스레 조막만 한 얼굴의 팔등신 몸매를 동경하게 되면서 작은 얼굴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에 대한 동경에서 온 것일 수 있다.


우린 노력으로 얻은 것보다, 원래 타고난 것에 대해 더 높게 칭송하는 경향이 있다. ‘머리 좋은 것은 타고났네’라는 말이 ‘넌 노력해서 머리가 좋구나’라는 말보다 더 기분 좋게 들린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것은 뭔가 선택받은 특별함과 순수성을 부여하는 것 같다. 머리뼈 골격과 크기는 순전히 유전에 의해 결정되므로, 이미 그렇게 타고 난 사람에 대해 높게 평가하는 것 같다.



차별화된 미의 기준을 더 높이려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한다.


우리 사회는 성형에 관대한 편이다. 이제 눈, 코, 입 성형은 놀랍지도 않다. 이렇듯 성형으로 모두가 미인, 미남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진정한 미를 가리기 위해서는 더 높은 기준을 필요로 하게 됐다. 높은 코, 큰 눈에 백옥 같은 피부보다,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어떤 것, 아무나 쉽게 근접할 수 없는 무엇이 필요하다. 그중의 하나가 소두가 된 게 아닌가 싶다. 한동안 키 작은 사람은 루저(looser)라고 비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거기서 더 나아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큰 키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얼굴 사이즈가 크면 그 또한 탈락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모두가 소두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우린 또 다른 달성하기 힘든 새로운 미의 기준을 생각해낼지도 모르겠다.



서구에 대한 도 넘은 추종에서 온 것일 수 있다.


백인의 흰 피부와 큰 눈, 높은 콧대는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 되어왔다. 알게 모르게, 서양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키에 큰 얼굴이 뭔가 미개하고 진화가 덜 된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더 진화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TV나 영화 등, 미디어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아시아인들의 외모를 비하하거나 그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오만한 태도가 사회 곳곳에 만연해 왔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리 스스로가 자연스럽게 서양의 것은 좋은 것이라 받아들이게 됐고, 그들처럼 되고 싶고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외향을 갖게 된다면, 그들처럼 좀 더 우월한 무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외모에 대한 비하와 지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사회적 이슈다. 십 대나 여성뿐 아니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가 정해 놓은 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가. 이렇게 글을 쓰는 나 또한 이런 시선에서 자유롭기는 힘들다. 하지만, 상대방의 얼굴 크기뿐 아니라 특정 신체부위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고, 폭력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소멸 직전의 소두’를 찬양하는 기사 헤드라인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은 얼굴에 대한 무한 동경을 담은 어처구니 없는 헤드라인을 볼때면, 손발이 오글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소두이건 대두이건, 당신의 몸은 소중하고 아름답다. 우리 모두가 지금 그대로의 자신의 몸을 사랑해도 되는, 성숙한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All bodies are good boies - 체형에 좋고 나쁨이란 없다, 모두가 소중하고 좋은 몸이다. (출처: cardinalpointson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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