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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맛캔디 Mar 30. 2021

아시안 혐오범죄 처벌이 드문 이유 5가지

작년 한 해, 미국 전역에서 BLM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Black Lives Matter)이 큰 사회 이슈가 되었다면, 이제는 ALM (아시아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Asian Lives Matter) 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Hate Crime)가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연일 안타까운 사건/사고들이 보도되고 있다. Covid-19 팬데믹 초기, 이를 ‘우한 바이러스’ ‘중국 바이러스’라고 지칭하면서, 중국인 혐오가 대폭 증가했었는데, 이제 반 아시아계 인종주의로 혐오의 대상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미국에서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는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민자들이 겪은 아픔과 설움, 차별과 증오가 이제 익숙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지난 지금 2021년, 아직도 그 상황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아니, 더욱 노골적이고 극단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Covid 19 이후, 혐오와 증오의 감정이 더욱 공공연하게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I am not a virus)'라는 푯말을 들고 있는 시위자 (출처: Yahoo Finance)


최근 애틀랜타에서 아시아 마사지 업소 세 곳을 대상으로 한 연쇄 총격 사건이 발생하였고, 사망자 8명 중 4명이 한국인 여성이었다. 아시아계 여성에 대한 여성 혐오와 인종차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뿐만 아니다. 미 전역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범죄 위협이 훨씬 커지고 있다. 뉴욕에서 83세 한인 할머니가 주먹에 맞아 기절하기도 하고, 산책하던 사람을 집단 구타하고 도망치거나, 집으로 돌아가던 임산부의 배를 걷어찰 뿐 아니라, 대낮에 지하철에 앉아 있던 아시아계 여성에게 오줌을 갈기고 도망치는 등,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에 소름이 끼친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지켜보는 이들 중 제지하거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기존에 알던 사이도 아니고, 뭔가 다툼이나 분쟁이 있던 것도 아니다. 아시아인이어서, 그들이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아니 존재 자체가 그냥 싫은 것이다. 그래서 혐오 범죄가 무서운 것이다. 내 존재가 그냥 싫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대응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을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는 것일까? 특히,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 범죄 적용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타임스 기사를 중심으로 원인과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뚜렷한 상징이 없음


먼저, 사회에서 아시아계 반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널리 인식되는 상징 같은 것이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을 학살하던 ‘나치 문양’이라던가, 백인 우월주의자(KKK)들이 흑인을 처단할 때 사용하던 ‘올가미’처럼 말이다. 참고로, 독일 및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나치 문양’을 사용하거나, 히틀러식 경례를 하는 척만 해도 법으로 처벌받는다. 그만큼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흑인 반대, 유대인 반대, 동성애 반대처럼, 아시아계 혐오하면 떠오르는 상징이나 이미지가 없고 이를 정형화하기 어렵다 보니, 널리 인식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지금 떠올려보면, 아시아인들을 비하하는 행동은 눈을 가로로 길게 찢는 동작 (일명, 칭키 아이, chinky eye) 정도인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행동을 보이면,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지만, 이를 혐오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애매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시아인에 대한 무시와 조롱을 묵인해서는 안된다. 분명히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하나씩 고쳐나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면에서, 최근 일부 출판/영상에서 기존 인종의 다양성을 무시한 표현에 대해 사과하고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환영할만하다 (관련 글: ‘당시에도 잘못됐고, 지금도 잘못된 것들’에 대해 )





범행 동기가 복잡하다는 점


강도 피해자였던 아시아계 중 대다수가 소규모 자영업자였다는 점에서 범행 동기가 복합하다는 것도 처벌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다. 이민 온 아시아인들이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시장에서 점점 자리를 잡으면서, 주변 상인들과의 경쟁이 생기고, 이에 따른 분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사업에 대한 이익 갈등이 인종에 대한 혐오로 번지다 보니, 뚜렷이 이를 혐오범죄만으로 구분 짓기 애매한 것 같다. 처음엔 그들이 강자의 위치에서 약자를 돕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약자이던 사람이 점점 성장해, 나와 같이 동등해지거나 오히려 더 큰 강자가 되었을 때 드는 질투와 부당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증오가 아닐까 싶다.


상대적으로 아시아계들이 가족 중심적이고, 사회 참여에는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지역사회와 함께 섞이기보다는, 한인타운, 차이나타운처럼, 그들만의 고유문화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로컬에 사는 사람들이, 아시아계들이 그들의 자리를 빼앗는 경쟁상대로 바라보지 않도록, 지역 사회봉사나 기부에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인식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언어 장벽으로 인한 어려움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거나, 나이가 많은 아시아계에게 있어 영어는 큰 언어 장벽이다. 생계를 위한 간단한 회화는 되더라도, 분쟁 시 자기의 억울함과 정당성을 영어로 분명하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영어를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지거나, 분쟁보다는 양보나 타협을 선호하는 문화적 요인도 한 몫하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억울한 일을 당해도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그냥 넘어가기 마련이다. 스스로 ‘영어 못하는 게 죄지’ 하면서, 문제를 자기에게 돌리며 상황을 빨리 무마하려 한다. 부당한 일에는 강력하게 저항해야 하는데 그냥 있으니, 계속 그 허들이 낮아져,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도 되는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의외로 미국의 공공기관들에는 언어 통역 지원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다. 도움을 요청하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영어를 잘 못하면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 불편이 나의 부당함을 정당화되지 않도록 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 기꺼이 도와야 한다. 그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게 언젠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체류 자격에 대한 염려


미국에 체류하는 이민자들에게 합법적으로 비자를 획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여러 여건으로 인해, 체류 자격이 안정적이지 않은 경우는, 혐오범죄에 노출돼도 신고가 꺼려지게 된다. 그들의 체류자격에 대한 ‘약점’을 알기에 조용한 이민자들이 타깃이 되기 쉽다. 혐오범죄에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여기는 우리 땅이고, 너희들은 ‘무임 승차자’나 ‘약탈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민자들에게 체류자격은 민감한 주제다. 근본적으로 불법 이민은 지양되고 개선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정당한 법과 질서의 시스템 하에서 사회가 움직여야지, 개인의 혐오나 증오에 대한 감정으로 심판해서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없고, 운영되서도 안된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


아시아계 사람들이 범죄 신고를 꺼리는 이유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알다시피, 미국은 총기 소유가 합법인 나라다. 이웃과의 다툼이나 분쟁이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상대적으로 아시아계들의 몸집이 서양인에 비해 왜소한 것도 한 몫한다. 혐오 범죄의 대부분이 힘없는 노인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게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기보다 약자로 보이는 사람을, 그냥 싫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것은 엄연한 범죄다. 증오범죄 혐의 적용 기준을 낮추고, 처벌을 강화하며, 경찰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혐오범죄가 가져다주는 가장 큰 부작용 중 하나는 스스로의 생각과 활동을 위축시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면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 그들이 날 싫어하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아 검열과 고정관념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관련해서, 한국계 할리우드 여배우인 ‘산드라 오’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작년 영화 <기생충> 이 오스카상을 수상했을 때, 봉준호 감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I saw the freedom of Koreans who grew up in Korea, and who never grew up in a racist society as a minority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 즉 한 번도 소수인종으로서 인종차별적인 사회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의 자유로움 그 자체를 보았다"

- ‘산드라 오’ 인터뷰 중 ‘봉준호’ 감독에 대해 


이제 한국에도 외국인들 많이 거주하고 있지만, 대부분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국에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느끼는 인종 차별은 없다. 거기서 나오는 당당함과 자유로움은, 이민자들에게는 부러움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반대로 소수민족이 겪어야 하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덜 민감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한국계인 우리 아이들이 자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에도 이런 차별과 혐오가 드러나지 않도록,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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