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롭게 이스터섬 일정까지 넣어 야심 차게 기획한 남미 안데스&이스터 15일 여행. 표 구하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이스터섬 항공권을 준비하고 페루가 자랑하는 벨몬드 안데안 익스플로러 기차표를 예매하고,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이어갔다.
안 그래도 나름 여행사 직원이라고 해외 뉴스에 민감한 편이었다. 중국에서 폐렴 환자가 유행이라고??? 흠.. 올해 중국 여행은 글렀구먼 정도였는데.....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2월에 접어들어 2020년 모든 유럽 상품을 취소 & 정리하고 나니... 요거.. 요 남미 여행만 남았다. 다행히 아직까지 남미에는 코로나 환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미국에서 스멀스멀 퍼지고 있던 터라 코로나의 남미 대륙 상륙은 시간문제긴 했다.
자, 이제 문제는 누가 먼저 취소를 할 것인가였다. 여행사가 여행을 먼저 취소하게 되면 모든 위약금은 우리의 부담이 된다. 항공사가 먼저 취소를 하느냐, 호텔이 먼저 취소를 하느냐, 손님이 먼저 취소를 하느냐, 눈물겨운 눈치싸움이 시작되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신경전 끝에 코로나 까짓 거 상관없이 난 여행을 가겠다!!! 너희 여행사를 믿고 가겠다!!! 정예부대만이 남았다. 그리고 나는 그 정예부대를 이끌고 떠나야 하는 인솔자..... 왜 나라고 코로나가 두렵지 않았겠는가, 솔직한 심정으로 손님들이 취소해주시길 바라기도 했었다. 그러나 남미 여행은 나에게도 오랜 로망이기도 했고 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기도 싫었다. 남미 대륙에서 우리를 받아준다면 그래 가보자!! 차근차근 눈앞에 있는 미션들을 컴플릿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3월 7일 출발한 남미 여행의 첫 번째 미션은 미국 입국이었다. 안 그래도 까다로운 미국 입국인데, 코로나 검역까지 더해져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었다. 모두들 이런 재난이 처음이었으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하지만 각오했던 것보다는 의외로 손쉽게 미국을 경유하여 페루 리마에 도착했다.
쿠스코 입성을 앞두고 이제 두 번째 미션, 고산증 극복이다.
지독한 고산증을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혹자는 그것을 엄청난 숙취와 비교를 하기도 한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심리적인 위안이라도 얻고자 고산증 약을 미리 복용하기 시작했다. 정예부대를 책임져야 하는 인솔자라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일까? 고산증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일까? 간혹 입술이 퍼레지기는 했지만 다행히 고산증으로 괴로운 날을 보낸 적은 없었다. 감사한 일이다.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상쾌한 남미의 공기를 만끽하며 (산소는 좀 희박했지만) 페루 여행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쿠스코 시내 관광을 마치고 달리는 땅 위의 크루즈, 벨몬드 안데안 익스플로러 기차에 탑승했다. 쿠스코에서 티티카카 호수까지 달려가는 1박 가격이 100만 원에 육박하는 사악한 기차 여행이다.
손하나 까딱 못하게 하는 극진한 서비스와 매 끼니 호화로운 3코스를 즐기며 지금 이 순간을 즐겼다. 기차가 달리는 내내 안데스 산줄기는 우리를 호위하듯 양 옆으로 웅장한 자태를 뽐냈다.
티티카카 호수와 푸노 시내를 가볍게 돌아본 후 이제 볼리비아 국경을 넘을 차례였다. 이제 남미 대륙도 코로나의 위험을 감지한 듯 입국 검역이 강화된 국경 지대는 제법 긴장되고 삼엄한 분위기였다. 기침이라도 하면 바로 입국 금지가 될 것이라는 현지 가이드의 말에 우리는 큰 숨 한번 쉬지 못하고 국경을 넘었다. 별일 없이 볼리비아에 들어섰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이즈음 현지의 코로나 분위기를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미 코로나 환자가 1~2명 발생되기 시작하면서 보건이 열악한 남미 나라들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 같다.
라파즈로 입성하는 3월 12일, 그 날 바로 사건이 터졌다. 한 손님이 현지 가이드와 고산증을 상담하던 중 무심코 간밤에 기침을 했던 이야기를 꺼냈었나 보다. 라파즈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어딘가와 채팅을 하던 현지 가이드가 돌연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버스는 바로 라파즈 병원으로 갈 거라고, 너희들은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게 될 거라고.....,
뭐라고??? 등줄기로 서늘한 땀 한줄기가 타고 내려가면서 머릿속이 아찔해졌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핸드폰으로 우리 여행사와 현지 여행사에 연락을 취하면서, 동시에 옆에 있는 현지 가이드에게 적극적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기침을 했다던 그녀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분명 너와 함께했던 낮 투어 동안 기침하는 손님을 본 적 있냐? 열이 나는 손님도 아무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미국을 거쳐 남미 대륙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코로나에 걸렸었다면 이미 증상이 시작됐어야 맞다. 가벼운 목감기일 뿐 코로나 일리가 절대 없다!!!!!
우리 여행사와 현지 여행사의 적극적인 항의 때문인지 증상이 있는 한분만 코로나 검사를 받는 걸로 일단락되고 나머지 일행들은 여행을 계속 진행해도 된다는 볼리비아 보건당국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때도 이상했지만 지금도 의아한 것이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코로나 의심 증상을 보인다면 사실 우리 모두가 격리되는 것이 맞다. 볼리비아 보건당국의 대처가 얼마나 미흡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한데, 우리에게는 사실 나쁠 건 없었다.
우리는 내일 비행기로 우유니 사막으로 떠나야 하는데, 코로나 검사를 받은 한분과 가족인 다른 한분까지 무려 두 분이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는 48시간 동안 격리되어야만 한단다. 원래 출장 중에는 더구나 손님들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 편인데, 이상하게 그 날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손님들 앞에서 마구 울어버리는가 하면 밥 먹을 때도, 방에 혼자 있을 때도 눈물이 계속 났다.
이 오지에 손님들만 남겨두고 가야 하는 죄송함과 내 책임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망할 코로나에 대한 원망감과 아무 일 없는 척 나머지 일정을 진행해야 하는 부담감 등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났었던 것 같다.
두 분이 아무 일 없이 재회하기를 소망하며 드디어 우리는 그토록 소망하던 우유니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