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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유니는 우유니다.

백수가 된 여행업 종사자

by 은덩

우유니 사막은 여행에 빠져들기 시작할 무렵부터 막연한 꿈이자 로망이었다. 새벽부터 부산하게 비행기를 타고 라파즈를 벗어나 우유니 공항에 도착했다. 마침내 나의 로망이 실현되려고 하는 순간이라니..... 심장 근처가 간질간질했다. 일단은 근처 소금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시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드디어 해질 무렵 지프차에 몸을 싣고 저 멀리 하얀 대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온통 하얀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새하얗게 뒤덮인 소금 평원이 저 멀리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있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모를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온통 하얀 세계의 모습에 누구랄 것도 없이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행업에 종사하면서 나름 멋진 풍경을 많이 봐왔다고 자부하는데, 우유니의 풍경은 단연 최고였다. 이래서 다들 우유니 우유니 하는구나...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한 기분으로 차에서 내려 비현실적인 그곳을 걸어보았다. 힘들게 와서인가, 감동은 두세 배가 된 듯하다. 잔잔한 바람과 적당한 물의 높이, 모든 것이 완벽한 일몰의 순간이었다. 그 적막감과 고요함, 위대한 자연 앞에서 또 한 번 숙연해지는 시간이었다. 잠시 나도 인솔자의 무거운 짐을 벗고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이튿날 점심까지 하얀 세계를 충분히 즐긴 다음, 극한의 풍경 알티플라노를 향해 비포장 드라이빙을 시작했다. 알티플라노는 말 그대로 높은 평원이라는 뜻이다. 오지 중에 오지, 오로지 지프차로만 갈 수 있는 곳, 태초의 생명력이 꿈틀거리는 고산지대, 보이는 것이라고는 설산과 하늘과 호수와 황량한 대지, 그야말로 외계에 불시착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리고 칠레로 넘어가기 전 해발 4700미터 고지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다. 마치 영화 마션에서 맷 데이먼의 홀로 살아남기를 보는 듯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호텔, 전화기도 터지지 않는 생 오지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우리가 이렇게 평화로운 여행을 계속하는 사이, 남미의 코로나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급박해졌다. 코로나 방역 여건이 열악한 남미 나라들은 국경을 폐쇄하고 하늘길을 막아버리는 것으로 대처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페루를 벗어난 지 사흘 후에 페루가 국경을 폐쇄했고, 이어 볼리비아 등 남미 국가 대부분이 연달아 국경을 폐쇄한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턱밑까지 쫓아온 것이다. 이제 문제는 코로나가 아니라 오도 가도 못하고 남미 대륙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손님들이 4700미터 호텔에서 힘겹게 고산증과 싸우는 사이,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곳에서 와이파이에 의존해 긴급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한시라도 빨리 남미 대륙을 벗어나야 하는데 볼리비아 라파즈로 돌아가던지 칠레로 입국해서 비행 편을 이용해야 한다. 칠레 입국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외국 여행자들은 격리를 시킨다는 등 소문이 흉흉했다. 그렇다고 다시 우유니-라파즈로 귀환하자니 하루 종일 지프차로 달려 돌아가야 하는 데다가 비행 편이 있을지 알 수 없다. 한 치 앞도 안보이던 오지의 깜깜한 밤, 내 속도 까맣게 타들어갔다.

밤샘 회의 끝에 일단 칠레 입국을 시도하기로 했다. 오전에 잡혀있던 일정은 건너뛰고 무조건 칠레 국경을 향해 달려간 후 국제선을 이용할 수 있는 칠레 산티아고로 바로 이동하기로 미션을 잡았다.

날이 밝자마자 손님들께 상황을 설명드리고 이제 남미대륙 탈출이라는 한 가지 미션으로 뜻을 모았다.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 칠레로 진입하니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부터 차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 2박 3일 동안 오지를 떠돌다가 문명세계에 진입한 기분이었다. 기나긴 기다림을 인내하고 모든 짐을 열어 꼼꼼히 확인받고 나서야 까다로운 칠레 입국이 마무리되었다.

1박이 예정되어 있던 아타카마의 화려한 리조트를 스치듯이 지나 우리는 바로 칼라마 공항으로 향했다. 기존 티켓을 버리고 하루 먼저 산티아고로 향하는 항공권을 급하게 구입했다. 이제 산티아고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는 두 번째 미션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일단은 산티아고 공항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여행 중 가장 숨 가빴던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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