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 정 Dec 21. 2021

그냥 그런 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눈물을 지겨워하는 게 제일 괴롭다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내 눈에 눈물을 제일 안타까워하던 사람이 내 눈에서 나오는 눈물을 지겨워하게 될 때..


조건 없는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걸치고 나왔다.

찬바람이 피부결을 스치며 내 속의 공허한 곳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외롭고 추운 그 공간을 뜨거운 눈물로 채웠다.


눈이 가득 쌓인 곳에 오줌을 누면 눈이 스르륵 잘도 녹던데 눈물은 그 찬기를 녹이질 못한다.


나는 눈물이 참 많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잘 울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모댁에 맡겨졌다. 

고모댁에 딸이 한 명 있어서 남자아이보다는 딸이 더 좋을 것 같았던 부모님은 아빠 형제 중 제일 잘 살던 고모의 부잣집 둘째 딸처럼 키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보내셨다.

서울은 학생이 많아서 아침반 오후반 수업이 나눠져 있었다. 

바쁜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한창 학령기인 언니 덕에 유독 혼자인 시간이 많았던 나는 혼자 있는 게 무서워 침대 밑에 들어가 울면서 엄마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고모집 가세가 기울어 나는 4학년 1학기에 다시 부모님 곁으로 오게 되었다.


6학년 즈음 빨래 정리를 하다가 엄마 옷장인 첫 번째 서랍을 열었는데 그 밑바닥에 눈물자국이 뚝뚝 떨어져 사랑도 그리움도 번져있는 내 편지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때는 광주가 전라남도 광주시였는데 내가 전라북도 광주라고 적어서 반송이 됐다가 다시 보낸 편지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죄다 모아져 있었다. 구구절절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가득 묻어있어서였을까 엄마는 한 장도 버리지 못한 채 눈물 자국이 가득한 편지를 여전히 간직하고 계셨다.


막상 나왔는데 갈 곳이 없었다.

잠옷에 대충 걸친 겉옷도 문제지만 울 곳이 필요했던 거라 갈 곳이 마땅찮다. 

하필이면 조명 빛 바로 아래 세워져 차속이 훤히 보였지만 그 안에서 울음을 토해냈다.


내 눈물 위에 엄마의 눈물까지 더 해졌을 글씨가 다 번진 눈물 가득한 편지가 생각이 났다.


얼마 전 본 영화에서 죽은 동생에게 계속 메시지를 보내던 주인공이 있었다.

살아 내 곁에 계신다면 아직도 내 이 끊이지 않은 눈물을 가장 소중히 생각해줬을 엄마에게 문자라도 보내고 싶었는데 세월이 야속하게 엄마 번호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왜 우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는 것 자체를 속상해할 아빠와 동생에겐 전화할 수 없었다.


외롭다는 생각이 스치기 무섭게 12통의 부재중을 남긴 아이..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나선 지 3시간이 되가는데 아직도 나를 기다리며 잠을 못 자고 있는 아이가 보낸 문자에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보이진 않아도 보이는 아이가 보낸 문자에 번진 눈물자국에..

그냥 그런 날,

오늘은 엄마만큼 내 사랑 많은 이 아이가 위로가 된다.


작가의 이전글 2개 국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