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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별 Nov 16. 2019

줄을 잘 서는 것부터 좋은 시작이다

프라하 입국 두 시간 만에 깨달은 인생의 줄타기 (feat. 똥 줄타기)

프라하 한 달 살기 1일차, August 1st 2019.

나를 배우는 시간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트램이 보인다. 소음이 있지만 이마저도 매일 생동감을 준다. 위치 덕에 트램 정류장은 뛰어가면 30초 컷. [미놀타 x700 필름 사진]


[줄을 잘 서는 것부터 좋은 시작이다]

프라하는 입국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날, 공항 이민심사대의 광경을 본 사람이라면 또는 그 줄 어딘가 함께였다면 유럽 입성의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12개로 나뉜 줄 앞에는 12명의 이민 심사관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한 심사관 앞에 3줄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연히 나 같은 156.7cm의 꼬꼬마는 평균 키 170cm 이상의 거장들 (아시아, 유럽, 중동 어디 할 것 없이 내 키가 큰 키는 아니다) 사이에서 1시간 반 뒤에나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었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 옆 라인의 심사관이 사라졌다. 각 나라의 다양한 언어로 항의 소리가 들려왔고 공항 타 직원들을 부르며 2시간째 기다리는 본인들의 분노를 표출하였다. 옆 라인의 사람들은 우리 줄로 한 명씩 한 명씩 넘어왔다. 라인, 한마디로 '줄'을 잘 타야 한다는 것을 눈앞에서 경험한 날이었다. 인생의 줄도 이렇게 한순간에 해체될 수도 또는 수직 상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짧지만 강한 교훈을 타지에서 얻는 것도 모자라, 옆줄에서 넘어온 사람들과 아슬아슬한 기싸움을 하며 두 시간 반 정도 남의 나라 입성을 성황리에 통과할 수 있었다. 살짝 짜증이 날 법도 한 이 상황에서 나는 최대한 차분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꽤나 노력했다. 프라하 한 달 살기의 기본자세 ‘여유’와 함께 왔기 때문이다. 단지 걱정이 되었던 것은 방을 서블렛(방 또는 집주인이 본인의 휴가 기간 동안만 임차인에게 세를 놓는 외국에서는 꽤나 흔하게 이루어지는 임대방법) 하는 방 주인도 몇 시간 뒤 한국으로 출국하기 때문에 우린 적어도 1시간 안에 만나야 했다. 그녀는 나를 집에서 기다리다 결국 시간이 다 되어 공항에서 보자고 했고, 나도 그 방법이 좋겠다고 했다.


8월 1일 오후 1시에 랜딩 했지만, 그녀를 만난 건 오후 4시. 생각보다 귀엽고 발랄한 방 주인이 키를 건내며 집 앞에 굴라쉬 맛집이지만 치즈 튀김이 더 맛있다는 본인의 최애 맛집을 열띠게 소개하고, 베트남 쌀국수집, 현지 마트 등 꿀팁 정보를 나에게 전달하고 서야 그녀는 홀가분하게 뒤돌아갔다.


그녀가 혹독한 8월의 한국 날씨를 즐겁게 보내다 오길 바라며 나는 Bolt(볼트)라는 프라하 택시 앱을 켰다.

기사님이 나를 잘 찾을 수 있게 출구 6번에 각 맞춰 서있고 출발지를 현재 위치로 맞추었다. 차가 배정되고 기사님은 2분 정도 지났을 즈음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100프로 알아들을 수 없는 묘하게 처음 느끼는 악센트에 당황한 나는 그 속에서 아는 단어만 찾아 듣기 시작했고, 기사님은 이쪽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말과 육교 밑으로 오거나 주차장을 오라는 단서를 남겼다. 이상하게도 끝없이 나에게 설명하는 척하며 나를 혼돈시켜 납치하는 것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할 만큼 틈을 주지 않았고, 듣다못해 난생처음으로 ‘I really can’t understand what you are saying. I assume I need to cancel this call, sorry’.라고 하는 찰나에 휴대폰에서 확인한 번호를 달고 있는 차가 내 앞에 멈추었고. 아주 미남인 체코 아저씨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척이나 황당하고도 유난스러웠던 첫 만남이었다. 아까 처음에 서있던 출구 6번 그 입구 또는 출국 쪽의 모든 첫 번째 도로는 이런 우버또는 택시들은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라인이라고 한다. 택시와 이런 개인 픽업 차들은 보이지 않는 또는 대놓고 보여주는 분명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


3시간을 이민국에서 보낸 것과는 상반되게 30분 만에 나는 나의 한 달 거주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문은 빠르게 통과했지만, 현관문과 시름하는 나를 인도 룸메이트가 구제해주었고 그렇게 D-day +1이 시작된 것이다.


낯선 환경이지만 가장 ‘나’ 다운 나를 발견하는 한 달이 되길 바라며 프라하 한 달 살기의 막을 올린다.  



드리는 말씀:

어떤 날의 일기는 길고, 어떤 날의 일기는 짧아요.

우리의 매일이 모두 같지 않듯, 그대의 삶도 나와 다를 것이고 생각도 다를 수 있어요.

제가 경험했던 것들이 당신에게는 지루했다고 느낄 수도 있고 또는 저로 인해 체코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요. 무엇이 되었던 ‘경험’ 해보세요. 그리고 기록하세요. 사진으로, 글로, 이야기로 그리고 기억으로. 아직 하지 않은 것이지 못할 것은 없어요.

인생에서의 한 달은 길지도 짧지도 않아요. 저는 그대의 마지막 아침을 모르니까 함부로 정의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당신의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기억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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