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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들 Jun 27. 2024

평범한 사람이라 글을 써요

평범한 사람이어서 책쓰기를 합니다

나에겐 박사학위라는 자격증이 하나 있다. 운이 좋았다. 학부를 마치고 취업을 해야 하는 순간에, 돌연 방향을 틀어서 대학원에 들어갔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 했고, 늘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직장에 다니다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계속 공부를 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별안간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미친 척하고 간 건데, 겁먹었던 것과는 달리 일단 들어가니 먹고살 수 있는 방도가 생겼다.


내 경우 학부보다 대학원이 체질에 잘 맞았다.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 책을 읽어오고 발제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참여하는 공부 방식이 나에게 잘 맞았다. 전공책을 읽어 가는 건 늘 어려웠지만, 그렇게 읽고 나면 정말로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서 생각이 팽창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논문을 쓰기 위해 정해진 답이 없는 탐구의 여정을 떠나는 것도 흥미로웠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 낼 때의 짜릿함도 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대학원 공부가 좋았지만, 결국에는 대학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서 나의 학문 탐구 생활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박사까지 졸업하고 나니 소속도 없어졌다. 그전까지는 '00 대학교 00 과정', '0000 연구소 연구원'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녔었다. 결혼하고 첫째를 낳을 때까지는 시간강사로 강의를 했었지만, 둘째를 낳고 나서는 그 자리마저 잃고 말았다. 별안간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소속되기로 했다. 아래의 글은 내가 첫 책에 쓴 내용이다. 소속이 없어질 때의 두려움과 불안감이 느껴진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소속이 없어졌다. 엄청난 공허감이 몰려왔다. 아마도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던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심정을 느끼지 않을까.

사실 박사논문을 쓰는 데 시간을 끌었던 건 소속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졸업을 했다. 진정한 무소속이 되었다. 그랬더니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돛단배처럼 어디로 갈지, 어디론가 갈 수는 있을지 몰라 서성거렸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 수렁에 빠져 버렸다. 결과도 나오지 않는 일에 시간을 쏟고, 물건을 사들이고, 여기저기 모임에 기웃거리고…

그러다가 나는 아예 나만의 회사를 차려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내가 나를 소속시키리라 결심을 한 것이다.

(엄마의 꿈을 이어주는 다섯 단어​, 133쪽)


나에게 소속되기 위해서 책을 쓰기로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논문을 쓰는 것과 내 책을 쓰는 것은 정말 다른 일이었다. 다시 바닥에서 시작해야 했다. 박사까지 받았는데 '이까짓 것 못할까' 싶었는데, 못했다.


‘박사'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더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과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격차는 너~~~ 무 컸다. 이 모습 이대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박사학위를 반납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첫 책은 그런 부끄러운 마음을 넘고 넘어서면서 겨우겨우 완성을 했다. 그냥 책 한 권 분량을 쓰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았다.


원고를 다 쓰고도, 책으로 제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눈높이에 비해 나의 글은 너무 보잘것이 없어 보였다. 마음의 장벽이 왜 이렇게 높은 것인지. 나에게 대한 기대는 왜 이렇게 높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왜 이렇게 힘들었던 것인지. 고정관념을 깨는 데 한참 걸렸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몇 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제대로 현실 파악을 할 수 있었다. ‘아, 나는 아무도 아니구나.’ 이 생각이 들면서,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그렇다 해도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또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왔다. 내가 한 걸음 움직이면 그곳을 중심으로 어떤 장면과 상황이 펼쳐지고, 연결망이 생겨났다.


또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 또 그 파장에 맞는 상황과 인연이 도래하곤 했다. 일단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 그런대로 글을 쓰고 완성하고 발표하고, 거기에서 또 한걸음 움직여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다가 극약 처방을 하나를 받았는데,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 죽음을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부끄러움 때문에 뒤로 자꾸 밀려나면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게 될 것 같았다. 살면서 어떤 성취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나중으로 미루진 말아야 했다. 죽을 때, ’그래도 책 하나는 썼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하는 일은 절대로 만들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해서 첫 책을 펴냈다. 독립출판이었다. 출판사에서 내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내가 편집하고 디자인해서 출판을 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또 많은 걸 배웠다. ‘엄마의 꿈을 이어주는 다섯 단어’는 나 같은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서 쓴 글이라 퇴고하느라 몇 번을 반복해서 읽는 동안 나 스스로에게 큰 응원을 받았다. 썼던 내용을 다 잊어버리고 일상에 치어서 또 지쳐가고 있던 나를 일으켜 세웠다.



퇴고를 하는 과정에서 글쓰기 훈련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수시로 눈으로 보고, 목소리로 읽고 하면서 문장을 다듬어 갔다. 무엇보다 그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책을 직접 만들어야 해서 내지 편집하고 북 커버 디자인하는 것도 배웠다. 책을 내는데 은근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초고를 쓰는 건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 대신 이 모든 과정을 한 번 거치고 나니까, 그다음 작업이 훨씬 쉬웠다. 덕분에 두 번째 책 <산으로 간 엄마​>는 훨씬 업그레이드되었다.



일단 시작을 하고 나니까, 그다음 길이 보였던 것이다. 앞의 책이 마무리되지 않았더라면, 마음의 부담 때문에 두 번째 시도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이 마무리되니, 세 번째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솟아올랐다. 아마도 다음번 책 작업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면, 그곳에서 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고 기회가 생기고 인연이 펼쳐질 것이다. 최소한 죽을 때 ‘책 한 번 내 봤어야 했는데…….’하는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글을 쓰고 편집하고 디자인하는 그 시간도 꽤나 재미있었다. 작업을 하고 있으면, 내가 우주 먼지이든, 듣보잡이든 상관이 없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거란 보장이 없고,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더라도…….


나는 여전히 지극히 평범하고 평범하지만, 그래서 나의 글을 쓰고 쓰는 것이다. 그걸 엮어서 책을 만들고 만든다. 내가 이렇게 평범한데, ‘누가 내 목소리를 내줄 것이며, 나에 대해 써줄 것인가?’ 바로 나밖에 없다. 나에게만큼은 내가 연예인이고, 셀럽이다.


(브런치북 연재 10화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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