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면서 주변을, 장비를, 마음의 부담을 가볍게 가볍게 만들다
글을 쓰면 좋은 이유가 많지만, 나는 글쓰기가 일상을 가볍게 만들어 줘서 좋다. 글이 주는 무게감으로 인해 일상은 가벼워진다는 아이러니. 글을 쓰려면 일상을 최대한 가볍게 정리해야 한다. 일상이 뒤죽박죽 엉켜있어서 신경 쓸게 많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다.
글을 쓰려면 주변을 싹 다 정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면, 삶이 가벼워져서 행복한 시간이 늘어난다. 의외로 행복은 단순함과 함께 온다. 여기에서는 글을 삶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 어떻게 삶을 단순화했는지 써보려고 한다. 특히 나는 활동성이 떨어지는 ‘저질체력’이라 더욱 삶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1. 주변 환경을 가볍게 가볍게
글을 쓰기 위해서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였다. 미니멀리즘과 관련된 콘텐츠를 찾아보고 하나하나 따라 해 보았다. 하루에 하나씩 버리고 인증을 하는 온라인 모임에도 참여해 보았다. 조금씩 버렸는데, 한 달의 시간을 지내고 보니 양이 꽤 되었다.
집안에 잡다한 것이 줄어드니 집안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확실히 줄어들었다. 글을 쓰고 싶으면 집안 정리부터 시작하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물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고민과 걱정으로 인해 머릿속이 늘 어수선했었다. 글을 쓰다가도 갑자기 ‘아이 준비물이 뭐였지?’, ‘저녁엔 뭐해 먹지?’하는 생각이 번뜩번뜩 떠오른다. 그렇게 생각이 삼천포로 빠져 버리면, 글 쓰는 건 물건너 간다.
대신 이런 걱정 고민을 다른 곳에 외주(?) 주기로 했다. 바로 기록을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불렛저널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전에도 메모장이나 노트 등에 생각나는 것을 수시로 적어 놓곤 했다. 그렇게 적어 놓으면 계속 머릿속에 그 생각을 붙잡아 두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글을 쓰다가도 수시로 다른 생각이 끼어들곤 하는데(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옆에 다이어리를 가져다 두고 갑자기 든 생각을 지면에 적어 두곤 한다.
이건 퍼실리테이션을 배울 때 알게 된 노하우다. 회의를 진행하는데 어떤 사람이 주제에서 벗어난 얘기를 할 때가 있다. 그 말을 무시하거나 자르지 말고, 그렇다고 그 말에 휘말리지도 말고 칠판 구석에 따로 적어두는 것이다. 말한 이를 존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정보를 하나씩 순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루의 일정도 단순하게 바꿨다. 짧은 시간 단위로 나눠서 분주하게 많은 일을 하기 보다, 통 시간을 만들어 천천히 움직인다. 아이 등원 시키고 글쓰기 2시간, 점심밥 먹고 집안일 2시간. 통으로 잘라서 해야 할 일을 한다. 특히 집안일은 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지라 시간을 정해두고 그만큼만 한다. 휴식 시간도 많이 넣고, 잠도 많이 잔다. 그 대신 드라마를 안 본다. 저녁에 술을 안 마신다. 쇼핑을 잘 하지 않는다.
2. 장비를 가볍게 가볍게
글을 쓰려면 장비가 필요하다. 예전엔 글이 잘 안 써지면, 글쓰기를 더욱 쉽게 도와줄 수 있는 노트북과 패드, 신종 핸드폰을 알아보곤 했다. 그렇게 해서 바꾼 장비만 해도 꽤 된다. 결국 정착한 건, 오래된 버전의 아이폰과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 조합. 엄마에겐 노트북을 켜는 것도 부담스럽다. 핸드폰 하나로 웬만한 건 다 해결한다.
그래도 컴퓨터 없이는 작업이 힘들다. 노트북은 맥북프로로 정착했는데, 산 지 7년은 더 넘은 듯하다. 수많은 노트북을 바꾼 결과, 장비가 좋다고 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최대한 도구를 단순화해야 관리에 드는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글쓰기를 도와준다는 소프트웨어도 꽤나 알아보았다. 자료와 아이디어를 정리할 수 있는 각종 메모 프로그램, 집필을 도와준다고 하는 글쓰기 프로그램 등등. 지금도 사실 새로운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둥둥 표류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아이폰에 기본으로 내장된 메모장을 주로 쓴다. 필요한 서류나 메모 등은 사진으로 찍어서 앨범에 따로 모아 놓는다. 우선 휴대폰을 최대한 사용한다. 그러다가 최근에 노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노션은 엄청난 기능을 자랑하는 기록앱이다. 그래서 복잡해 보이긴 하지만, 이 모든 기능을 다 쓸 필요는 없기에 기본 기능만 쓰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자료정리에 도움이 되어서 고맙게 쓰고 있다.
글쓰기 관련해서는 '스크리브너'라는 글쓰기 프로그램을 쓰고 있는데, 이건 그리 가볍지 않아 패스. 이 프로그램은 내가 가벼워질 필요가 없을 때 사둔 것이라 지금도 쓰고 있을 뿐, 필수는 아니다. 얼마 전 스크리브너 기능을 설명해 주는 책자 하나를 읽었는데, 수많은 기능 앞에서 길을 잃고 아주 기본적인 것만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작업 같은 긴 글을 쓸 때 꽤 많은 도움이 되긴 한다.
중요한 건, 수많은 기능 앞에서 너무 주눅들지 않는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사용하는 것이지, '왜, 있는 기능을 다 사용하지 못할까?'하는 고민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3. 부담을 가볍게 가볍게
글을 쓸 때 가지게 되는 마음의 부담도 덜어내기로 했다. 사실 글을 쓰기 위해서 카페에 자주 다닌다. 커피 마시는 데 지출을 많이 하게 된다. 집에서 쓰면 되지 않냐고? 집안에 있으면 청소할 거리가 눈에 아른거려서 글이 잘 안 써진다.
이건 개인 성향일 수 있겠다. 어떤 엄마는 베란다나 거실의 한편을 집필 공간으로 꾸며 글을 쓴다. 나는 집안에만 있으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밖으로 나가줘야 한다. 예전엔 이런 나의 습성(?)을 바꿔서 한 푼이라도 절약해 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게 안 된다는 걸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커피값을 식비가 아니라 개인 용돈 혹은 꿈 지출란에 항목화해서 넣어 두었다.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가는 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투자 비용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정에 대해서도 그렇다. 지속성을 위해서 나름대로 글쓰기 일정을 정해두고 있는데, 너무 빡빡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 약간의 구속력을 갖되 나를 몰아치지 않을 정도로 정한다. 일을 하다 보면 몰아서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러면 체력이 방전돼서 꾸준히 하기 힘들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하는 일만으로도 체력이 방전되기 쉽다. ‘왜 나는 글을 못 쓸까?’, ‘왜 계속하지 못할까?’고민하며 자책을 하게 되곤 하는데, 재능이 부족한 게 아니고 그냥 체력이 부족한 거다. 집안일이 당연해져서 특별히 뭔가를 한다는 느낌이 없어서 그렇지, 원래 디폴트 값이 높은 거다. 그걸 인정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면 안 된다.
이렇게 글을 쓰려고 생활을, 장비를, 마음을 가볍게 하면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하루가 단순하게 흘러가니까 고민과 걱정이 많이 줄어든다. 여전히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지치기는 하지만, 괴롭지는 않은 정도이다. 하루가 말끔하게 지나가는 것이 기분 좋다. 앞으로도 글을 쓰면서 번잡한 생활과 생각을 조금씩 더 줄여나가 보려고 한다.
가볍게 가볍게 글 쓰며 살아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