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은둔지', '치유의 장소'를 찾아서
강원도 홍천 내면. 래프팅으로 유명한 내린천의 발원지. 이곳이 우리가 갈 곳이었다. 이곳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학생수가 모자라 폐교가 될지 모른다고 했다. 시골에 내려가기 전에 딸아이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수는 천 명이 넘었다. 시골의 학교에는 전교생이 통틀어 열 명이 안 된다. 학년 구분도 의미가 없을 정도이다. 이런 학교가 있는 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 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타고 내린천 휴게소에서 국도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내려가야 할 나들목에서 제대로 빠지지 못했다. 다음 나들목은 서양양이었다. 낯선 곳으로 가는데 길을 놓쳐서 초조했다. 안달한들 무엇하리. 마음을 내려놓고 서양양에서 내려 목적지로 향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서양양에서 내면으로 건너가려니 구룡령로를 넘어가라고 했다. 직접 올라보니, 왜 아홉 마리의 용이 있는 길인지 알 수 있었다. 구불구불하고 높다란 산길을 오르고 올랐다. 정상에 올랐을 때 산 아래를 내려보니 아찔했다. 그렇게 해서 내려가다 보니 슬슬 집이 나타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동네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은둔 장소라고 한다. 전쟁이 나도 알지 못했을 정도로 산으로 겹겹이 쌓여 있는 지역이었다. 지역적으로 같은 홍천면이건만, ‘홍천’에 사는 사람들도 특별한 날 한 시간 정도 차 타고 들어가 나들이하는 곳이다. 환자가 자연치유를 위해 요양을 오는 장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주변에 유해시설이 하나도 없을뿐더러 산속 깊은 곳이다 보니 물과 공기가 아주 맑았다.
그 말이 나에겐 많이 끌렸다. ‘최고의 은둔지’, ‘치유의 장소’.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는가. 조금은 정신을 가만히 내려놓고 쉬고 싶었다. 이곳에 있으면 지쳤던 나의 마음도 치유가 되지 않을까. 아이의 교육문제는 핑계였고, 나의 이 바람이 시골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 것이다.
시골 학교는 아담하고 조용했다. 작은 본 건물에 체육관과 급식실 시설이 딸려 있었다. 시골학교지만 바닥도 단정하게 마루로 마감되어 있고 교정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교장 선생님과 학년 담당 선생님과도 인사를 나눴고 학교 소개도 받았다.
아이는 시골학교를 보고 호기심이 가득했다. 아이가 작은 학교 가기 싫다고 할까 봐 내심 걱정을 했었는데 꽤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었다. 남편도 직접 와서 보고는 마음에 들어 했다. 우선 매일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좋았다. 학생이 많이 없으니 일일이 지도받을 수 있는 것도 좋은 것 같았고, 다른 학년이 한데 어울려 있는 것도 좋았다. 방과 후 프로그램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아이가 아직 저학년이라 그런 것인지, 우리가 욕심이 없는 편이라 그런지 시골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초등학교는 이런 작은 학교에서 배우면 더 좋지 않나 싶었다.
학교에 대한 것은 일단 오케이. 마음에 흡족했다. 그다음부터는 살 곳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게 순조롭지 않았다. 산골에서 살 집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선 시골집이 남아돈다고 하던데, 막상 구하려니 매물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곳은 물이 맑고 근처 휴양림과 국립공원이 있다 보니 민박을 하는 집이 많았다. 방을 얻으려니 민박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한두 달 잠깐 있을 것이 아닌데 다달이 지불해야 할 돈이 많으면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집의 형태도 일반 살림집이 아니다 보니 생활하는데도 불편할 것 같았다. 전셋집은 아예 구하기 힘들었고 말이다. 아예 집을 사버릴까 생각하다가 잠깐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아차, 일이 너무 커져버리는 것 같았다.
학교만 마음에 들면 머물 곳은 금세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 문제가 의외로 쉽지 않았다. 집을 사야 할까? 땅을 사서 아예 집을 지어 버려야 하나? 그렇다면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나? 아니, 이렇게 결정해도 되는 것일까? 순간 혼란 속으로 빠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