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생존법은 무엇일까?

효녀심청, 룸펠슈틸츠헨

by 한들

사실 효녀 심청 이야기는 잘 알고 있었지만, 룸펠슈틸츠헨 이야기는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여성의 우울증에 대해 다룬 책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에 실린 것을 보고서야 이런 동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룸펠슈틸츠헨 이야기

룸펠슈틸츠헨은 허풍쟁이 아버지가 왕에게 가서 자신의 딸이 금실을 자을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한다. 왕은 딸을 끌고 와 금실을 잣게 하고, 그러지 못하면 죽여버린다고 한다. 울고 있는 딸에게 난쟁이가 와서 자신에게 무언가를 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겨우 금실을 자았는데, 왕은 더 어려운 과제를 준다. 더 잘하면 왕비로 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난쟁이는 그 과제를 대신해 주는 대신, 첫 아이를 낳으면 달라고 했다. 결국 딸은 왕비가 되었고, 아들을 낳아 빼앗기게 된다. 견딜 수 없는 왕비는 아들을 줄 수 없다고 버티고, 난쟁이는 자신의 이름을 맞추면 아들을 데려가지 않겠다는 타협안을 내놓는다. 왕비는 결국 난쟁이의 이름을 알아내고, 아들을 지킨다.




이 책에서는 룸펠슈틸츠헨이라는 동화가 여성의 우울증을 보여주는 우화라고 해석했다. ‘밀짚으로 금실을 잣는 것’은 여성이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해내도록 부추기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했다.


어찌 보니 수긍이 갔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이러저러한 일들은 내가 원하거나 선택해서 맡게 된 것이 별로 없다. 어쩌다 보니 나에게 쏟아져 버렸다. 태어남과 동시에 내가 합의하지 않은 수많은 세부 조항에 자동적으로 동의하게 되어 버린 상황에 처해 있었다.


왜 약관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았냐고 질책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보험약관보다 흐릿하게, 암묵적으로 허공에 쓰인 약관을 어떻게 다 알겠는가. 겪어보고 나서야 그게 아님을 알게 될 뿐.


만약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이 된다면 추후에라도 거절하면 되는데, 참으로 그것을 못한다. 모든 것이 다 괜찮다는 듯이 응하고야 만다. 내가 얼마큼 원하는지, 또는 싫어하는지, 내가 그걸 다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따져보지 않고서 말이다.


이것저것을 하다 보면 어느새 울고 싶어 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모든 일이 풀어지고야 만다. 지난번 양육 공백이 생길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어 주었던 것처럼.


그럼에도 내가 대가로 치러야 하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자존감도 낮아지고, 건강도 나빠지고, 우울증도 온다. 긍정적인 마음이 사라지니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힘들어서 좋은 기회들을 놓치고 만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동화 속에 나오는 방앗간 집 딸은 아버지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들지만 이에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그가 벌여놓은 일에 가담한다. 아버지가 허풍쟁이라는 사실을 폭로하지 않고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든데도, 처음에는 보석을, 그다음에는 아이까지 희생하면서 그를 감싼다(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중에서).



이 부분을 보고서 허탈해했다.


딸은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아버지 자신이 한 거짓말에 자신이 책임을 지도록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딸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동화의 후반부에 아버지가 따로 벌을 받았다는 내용도 없다.


사고는 아버지가 쳤는데, 난처한 상황은 딸이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군소리 하나 없이, 얻는 것도 하나 없이. 심지어 딸은 자신이 금실을 자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한탄한다.


심청이도 마찬가지다. 심봉사가 실언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미 삼백석을 바치겠다고 한 것을 당연히 심청이가 감당하려고 한다. 심봉사가 말을 거둬들이고 부처님께 천벌을 받던가 말던가 할 일이다. 아니면 동냥을 다시 하든지, 알바라도 해야 한다. 그런데 심봉사는 무기력하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만 하고 있다. 보다 못한 심청이 목숨을 내놓는 결정을 내린다.


자신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을 던져 버린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익의 소용돌이 속으로... 참으로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 말인데, 지금 딸들이 처한 상황은 딱 이 모양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 왔고, 또 지금도 그런 편이다.


그런데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사고 친 아버지의 뒷감당을 딸이 하지 않으면...? 아버지를 고발하고 모든 진실을 밝혀 낸다면, 아버지에게 돈을 벌어 오라고 하거나 부처님에게 천벌을 받든 지 하라고 하면, 딸은 과연 어떻게 될까?


분명히 버림받을 것이다. 심지어는 철저한 응징과 폭력을 견뎌냈어야 했을 것이다. 아버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당당하게 정면으로 저항하고 승부를 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아버지의 요구에 대응해야 할 때 다음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옵션 1. 심청이처럼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여버리고 타인의 이익과 요구 속에 자신을 완전히 흡수시켜 버리기

옵션 2. 방앗간 집 딸처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가치 있는 것을 줘버리기

옵션 3. 매 맞을 것을 각오하고 정면 승부하기


이렇게 적고 보니, 왠지 씁쓸하다.

그러면서 다른 선택지를 찾아보고 싶어 진다.


과연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1. 이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말하고 떠나버린다


그런데 우선 딸이 아버지 없이 살 수 있을까? 많은 이야기 상징 속에서 아버지는 사회체계, 제도, 법, 원칙 등을 의미한다. 아예 이런 것 없이 자연으로 돌아가 아무런 기준에도 얽매지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가장 큰 것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상실감과 슬픔을 이겨낼 자신이 있는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떨려 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정으로 수긍할 수 있을까?

많은 딸들이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지 못해서, 아버지를 떠나지 못하고 그의 뒷감당을 하며 함께 살아간다.

정말 아버지가 구제불능이다 싶을 때는 가차 없이 떠나버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건 떠난다기보다는 피난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왠만해서는 떠나는 결정을 하기 어렵다.


2. 난쟁이를 적극 기용한다


아버지를 건드릴 수 없다면, 난쟁이를 적극적으로 기용해 보는 건 어떨까? 짚으로 금실을 자아낼 수 있는 능력자를 기용하고, 뭐든지 줘버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적절한 선에서 협상을 하면 어떨까?

상대가 준 것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넘겨버리지 말고, 지킬 건 지키고 줄 건 줘버리는 것이다. 난쟁이의 약점도 좀 잡아서 꼼짝 못 하게도 만들고, 잘해주기도 하면서 친분도 쌓고 말이다.

세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속박을 주는 기존 세상에 속해 살아가면서, 갖은 자원을 모두 이용해서 왕비도 되고 자식도 얻는 것이다.



3. 다른 인생 경로를 선택해 본다


난쟁이에게 금실을 자아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왕을 좀 죽여달라고(?) 말을 해 본다. 한데 이 일은 너무 위험천만해서 그냥 다음 날 죽는 것이 낫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럼 이 일을 궁궐의 중요한 사람에게 전달하고 왕의 무리한 요구를 막도록 부탁을 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면 세헤라자데처럼 아주 근사한 이야기를 지어 내서 왕의 환심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질 각오까지 있었다면, 그냥 절에 들어가 버리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속세에서 있었던 모든 약속은 무효가 될 텐데 말이다. 그리고 공양미 삼백석이라는 것이 허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모두 탐탁지 않아 보인다. 새로운 가능성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느 딸의 인생 경로 속 어딘가에 묻혀서 살고 있는가 보다.



잘못되었거나 이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정상적이라서 이상하게 여겨질 따름이다. 하지만 가끔씩 시시각각 느껴지는 어디서 오는지 모를 불명의 고통이 느껴질 때면,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해 보고 싶기도 하다.

아직은 애써 그 답에 다다르지 않으려고 한다. 궁금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해서. 좀 귀찮을 것 같기도 해서. 그 게으름의 대가로, 오늘도 효녀 심청과 방앗간 집 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두 효녀 캐릭터와는 조금 거리가 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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