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살림하기
산에는 많은 짐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용달을 이용하지 않고, 우리 차 트렁크에 싣을 수 있을 정도로만 짐을 챙기기로 했다. 몇 번은 왔다 갔다 하면서 옮겨야 하지만, 거창하게 살림을 꾸리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전세로 얻은 집에는 오래되었지만 세탁기와 냉장고가 있었다. 작은 장롱과 책꽂이도 빌려 쓸 수 있었다. 산에 와서 산 가구는 식탁과 접이식 의자뿐이다. 옷은 행거에 걸었고, 짐은 책꽂이나 바구니에 넣었다. 구석구석 잡다한 물건을 쌓아놓고 살다가 이렇게 휑하니 짐이 없어지니, 과연 생활이 될까 싶어 불안했다. 그래도 부딪혀보기로 했다.
막상 와서 느낀 것은, 엄마의 하루 일과는 도시나 시골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시 세끼 밥 준비하고, 빨래하고 개고, 학교 보내고 아이가 필요한 것 해 주고, 청소하는 일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 집안일을 하는 구체적인 방식에 있어서는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등교를 7시 20분에 하다니
이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아침 일곱 시 이십 분에 스쿨버스를 타고 등교를 한다. 아침에 스쿨버스가 돌아야 하는 경로가 길기 때문이다. 그 마저도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마을의 가파른 진입로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타고 내려간다는 말이 맞다. 산을 탄다고 하는 것처럼). 아침까지 먹고 나가려면 최소 여섯 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건 엄마인 나에게도 난관이었다. 아침을 준비하려면 최소한 여섯 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아침잠이 많기로 유명한 내가 이런 새벽에 일어날 수 있을까. 과장해서 이러다가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정신이 어질 해졌다.
막상 아침이 되니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낯선 곳에서 긴장을 한 탓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침 해가 창 안으로 환하게 들어오고 새가 짖어대는 통에 계속 잘 수가 없었다. 밤의 적막을 깨고 울려 퍼지는 새 울음소리는 천연 알람이었다. 산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다니. 졸린 눈으로 창밖으로 바라보니 뿌연 물안개가 산등성이를 따라 흩어지고 있었다.
자연을 위해 세재를 바꾸다
빨래나 설거지를 하는 세제를 바꾼 일도 나에겐 특별한 변화였다. 이 마을에는 상하수도가 없다. 물은 지하수를 쓰고, 하수는 파이프를 연결하여 밭쪽으로 그대로 흘려보낸다. 웬만하면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물을 써야 했다. 우선 세탁할 때는 베이킹소다와 과탄산수소를 넣었다. 드럼세탁기에 가루세제 넣는 게 점점 귀찮아져서 후에는 한살림에서 파는 친환경 액체세제를 사다가 썼다.
설거지할 때도 친환경 세제를 썼는데, 나중에는 이 마저도 잘 쓰지 않게 되었다. 마을 이웃이 수세미를 길러서 말려 놓은 것을 주었는데 이것을 이용하면 신기하게도 세제 없이도 그릇이 잘 씻겼다. 어려운 점은 고기 기름기를 닦는 것이었다. 식물성 기름은 잘 씻겨 내려갔는데, 동물성 기름은 세제 없이는 잘 닦이지 않았다. 설거지가 귀찮은 나머지, 생각지도 않게 육식을 줄이게 되었다.
야외에서 빨래 널 때의 해방감
야외에서 빨래를 널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변화였다. 이런저런 물건이 놓인 거실 한편에 건조대 놓고 빨래를 널어놓으며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미관상 좋지도 않고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실내에서 건조한 옷은 어딘가 꿉꿉한 느낌이 남게 마련이었다.
마당에 나와 한껏 큰 동작으로 젖은 옷을 털어서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 보았다. 빨랫줄에도 빨래를 널었다. 이층 테라스 난간에는 이불을 널어서 햇볕을 쪼였다. 산의 청량한 공기와 쨍한 햇살이 빨래를 뽀송뽀송하게 말려 주었다. 내 마음의 습기까지 가져가 버릴 정도로 바삭바삭하게 빨래가 말랐다.
그런데 후에 알게 된 것은, 시골 바깥 날씨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궂은날이 많았다. 해가 나오지 않는 날도 있고, 비가 오는 날도 있고, 장마철에는 땅에서 습기가 잔뜩 뿜어져 나오기도 하고, 미세먼지가 내려앉는 날도 있다. 한 여름에는 진드기 같은 벌레도 조심해야 했다.
내가 정말 자연에 맞춰 사는 사람이었다면 그 모든 날씨에 맞춰서 살았을 텐데, 그 정도까진 이르지 못했다. 장마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건조기를 하나 구매하긴 했다. 그래도 바깥 날씨가 좋은 날에는 빨래를 빨랫줄에 걸어서 일광욕을 시키곤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햇볕 냄새가 코끝에 아른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