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좀 풀고 갑시다

산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

by 한들

마을에 올라가기 전에 영상을 하나 보았다. EBS에서 마을에 대한 다큐를 만들었다기에 몇 번을 재생해서 보았다. 이사 가기 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가서 살 곳에 대해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이 영상만 틀어주면 되어서 편했다.


https://youtu.be/ov8c9-F1yvg

https://youtu.be/6KWs9yoH-Ow


이 다큐에서 재현된 마을의 모습을 본 후, 직접 마을에 찾아가니 마을 주민들이 다 연예인 같아 보였다.


와~! 티브이에서 봤던 사람이다!


미디어라는 것이 주는 비현실감이 더해져, 산 마을 사람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더 커졌던 것 같다.

‘그래, 여기 사는 사람들은 무언가 다른 사람들일거야..’라고 단정짓고 마을에 들어갔다.


내 마음은 내 마음이니까…

그리고 내 마음은 실제 현존하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걸 깨달을 때마다 마음이 덜컥했지만, 동시에 유리벽을 뚫고 사람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에 나의 오해를 여지없이 깨버렸던 이야기를 풀어본다.



1. 이념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아닐까?


내가 산에 사는 마을 사람에 대해 가졌던 가장 큰 오해는 무언가 이념으로 무장된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적나라하게는 ‘다들 운동권일거야’하는 거였다.


‘운동권’. 참 오랫만에 떠올린 단어다. 지금도 있나? 운동권?


라떼는 말이야…

대학에 들어갔더니 환한 벚꽃나무와 ‘등록금 투쟁’이 우리를 반겼다. 교내 시위가 백일도 넘게 이어졌고, 학생회에서 성공적으로(?) 본관 점거를 한 바람에 한 동안 총무과 사무실을 과실로 썼었다. 그때부터 한총련이니 좌파니 운동이니 하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다.


나는 학생회 편집부에 들었기에 운동권역에 드는 듯 하였으나, 자질 부족(?)으로 저 멀리 떨려났다. 나는 내가 중요한 사람이므로, 사회 의식을 가지고 ‘동지’와 함께 하기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운동 대신 연애를, 공부를 선택했다. 그래도 학생회에 남아서 사회운동을 지속한 친구들을 항상 응원하고 좋아했다.


대학에서 벗어나니 그런 구분도 거의 없어졌다. 대학 동기들도 다 결혼해서 아이 한 둘 씩 있고, 회사에 취직해서 먹고 사는데 바빠졌다.


산에 들어오면서 그 ‘운동권’이라는 추억의 단어가 다시금 떠올랐다. 투철한 사회 정신에 의해 산에 들어와 각자의 정치적 실천을 가열차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마을 학당에 처음 갔던 날, 마르크스 ‘공산당선언’ 특강이 있었다. 산에서 공산당선언을 읽는다? 아, 이거 틀림없네, 틀림없어… 21세기에 마르크스를 읽는 게 금기는 아니지만, 무언가 마음에 경계심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세미나가 끝나고 술자리에서 물어봤다. ‘왜, 공산당선언을 읽나요?’


사연인 즉은, 나의 시나리오와는 전혀 달랐다. 시작은 학당의 한 멤버였던 영어학원 원장님의 제안었다. 이 학원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빡세게 수업하는 컨셉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엘리트(?)들의 자소서에 쓰려는 목적으로 고전을 영어로 읽고 있었더란다.


여러 고전 중에 ‘공산당선언’이라는 텍스트를 보게 되었는데, 문장이 엄청 깔끔해서 아이들 독해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학당에서도 고전읽기를 하니까 같이 읽고 싶었다나…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 전개는 뭐지? 문장이 깔끔해서 읽었다는 것이 전부인가? 전부였다. 세미나가 끝나고 술자리 내용을 보니 알겠다. 다들 공산당선언을 처음 읽어본 분위기였다. 고전이란 게 그렇다… 제목은 익숙한데, 정작 읽어보진 않는 존재.


이 마을에선 사회주의 보다는 철학이나 영성에 더 관심이 많았다. 물론 다들 9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니 사회주의에 대해 아마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뭐랄까… 운동권이라고 하기엔 ‘까리한’ 다른 분위기의 고민들이 느껴진다. 각자의 정신세계가 있는데, 뭔가 ‘주의’로 묶기엔 각기 결이 너무 다르다. 흠… 정확하진 않지만 간단히 표현하면, 마음 공부하고 먹고 사는 일에 더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도인일거야


두 번째 오해는, ‘산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도인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위의 다큐를 보면, 다들 뭔가 인생에 통달한 것 같은 멋진 말을 내뱉지 않나? 산에 살면 자연히 인생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무언가 다른 ‘포스’를 풍기는 건 맞지만, ‘도인’은 아니었다. 도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속세와는 담을 쌓고 무언가 인생의 원리를 깨닫고 인간의 집착을 초월하여 신선처럼 사는 사람이 아닌가.


산에 있으면 세상과는 멀찍이 떨어진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속적인 삶을 버린 것은 아니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몸에 좋은 음식도 찾아먹고, 시내에서 그마나 괜찮은 병원을 골라내서 정보를 공유한다. 철마다 맛난 거 뭐 해먹을까 고민을 하기도 한다.


협동조합이라는 사업체를 열었으니, 어떻게 운영을 잘 할까 열심히 궁리하기도 한다. 조합이 아니더라도 산에서 어떻게 생계를 잘 이어나가고 미래를 준비할까 걱정을 한다.


자식 문제에도 열정적이다. 아이들의 문제에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 자랑자랑을 하기도 한다. 교육 문제, 진로문제로 고민하기도 하고, 학교 생활이나 친구들 간의 문제로 속을 끓기도 한다.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이 있으면 화도 내고 속상해 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을 살펴보면 무언가 생각을 하며 산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도시에 있을 때는(무식하게 이분법으로 나눈 것이지만) 정신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할 때는 엄청 열심히 잘 하는데, 그런 속도감 끝에는 권태나 허무함 같은 것이 딸려 왔다. 자신이 뭘 향해 이렇게 가는지도 모르면서 간다는 사람도 있었고 말이다.


확실히 시골 생활은 속도면에서 다르다. 산골에서도 이것저것 바쁜 일이 많지만, 도시에서처럼 그렇게 정신이 없진 않다. 자연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을 멈춰야 할 때도 생기고, 누군가 만나지 않고 혼자서 묵묵히 육체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그 시간 동안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된다. 굳이 일을 많이 만들지 않으면, 여유 시간을 갖기도 좋고 말이다.


하늘을 올려다 보고 산을 내려다 보는 것도 생각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일상을 살다 문득문득 시선을 먼 곳으로 향하면 급급했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두고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


산에서 산다고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지극히 땅에 발을 붙이고 개인의 문제로 쩔쩔 매며 사는 똑같은 인생이다. 다만 삶의 빈공간을 누리며 생각을 할 시간을 확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조금은 다른 점이지 않을까.



3. 산에 사는 사람은 자연인일거야...



산에 사는 사람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사람처럼 야생 생활에 능숙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산에서 나는 식물도 척척 알아보고, 야생 동물도 잘 대하고 말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교감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지 않을까.


물론 도시에 살다가 바로 산으로 들어간 나같은 사람보다는 그러한 측면이 많지만, 이것도 완전한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십 년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마을에 살면 벌레나 뱀 같은 것들과 친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벌레만 보면 다 잡아버릴 기세로 전기파리채를 들고 다니시는 분이 계신다. 어떤 분은 벌레가 너무 싫어서 집 주위와 문틈 사이에 꼭꼭 약을 바른다고 했다.


지나가다가 석축에서 뱀 허물만 봐도 기겁해서 소리를 지르는 분이 계시는가 하면, 쥐 소리만 나도 놀라서 뒤로 물러서는 분도 계신다.


덫에 걸린 쥐를 어쩌지 못해서, 얘를 차에 태워 나가 먼 곳 다리 밑에다가 풀어주었다는 미담(?)까지도 들렸다.


마을에서 텃밭 말고 진짜로 밭농사를 지으시는 분이 한두 분 밖에 없는데, 아직도 농사는 어렵다고 하신다.


먹을 것도 주변 산에서 채취해서 먹을 줄 알았건만, 그런 건 그냥 이벤트로 한 두 번씩이고, 다 시내의 한살림 매장이나 인터넷에서 주문해 사 먹었다.


마을 사람들은 귀촌한지 십 년이 지났지만, 도시 네이티브였다.


이 마을은 완전한 시골도, 도시도 아닌 하이브리드형 생활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골의 자연 환경 안에서 도시인의 멘탈리티를 유지하며 사는 곳이다. 자연인으로 살기엔 넘 도시적이다.




결국은 산 마을도 평범한 사람이 모여서 사는 생활 공간이란 단순한 결론이...


산에 산다고 해서 운동가도, 도인도, 자연인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살짝 실망한 기분이... 드는 건 뭘까?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하여 '짜잔~' 하고 발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실망한 것인가. 아니, 내가 가진 환상이 하나 더 걷혀버려서 실망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some where over the rainbow 어딘가 멋진 곳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곳에 다다라서 무한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아직도 기대를 한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그러한 완벽한 장소가 존재할까?


가끔 몇 분께 '마을을 떠나고 싶었던 적이 없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초기에는 워낙 힘들어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지만, 요즘에는 그냥 마을이 좋다고 대답했다. 어느 정도 환경도 정비가 되어서 살기도 편하고, 마을 사람들이 좋다고 했다.


그 질문을 하러 다닐 때, 나는 마음이 들떠서 반반인 상태였다. 결국에는 마을에서 마음을 접고 도시로 돌아왔다. 도시로 돌아온 지금, 이제사 그 대답들이 이해가 된다.


'그들'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이유.


분명히 마을 사람도, 마을도 완벽하지 않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불리한 점이 많기도 한, 시골 마을이다. 그러한 마을을 다름 아닌 자신의 손으로 일궜기 때문에, 그곳은 다른 어떤 곳보다 완벽한 곳이 된다.


첫 삽을 뜨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겨서 대처하는 과정에서, 구비되지 않은 마을의 시설을 갖추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마을에 쓰였다. 그 역사가 마을 안에 담겨 그 안의 사람을 떼어 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반면 '내'가 자꾸 마을에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나는 나그네 였다. 아무리 그곳이 아름답고 좋은 것이 여럿 있다고 한들, 내가 그 속에 뛰어들어 내 삶을 녹여버리지 않는 이상, 그곳은 멋진 곳이 될 수 없다.


어떤 조건이 갖추어진 멋진 곳은 환상이지만, 그 환상의 빈칸을 헌신으로 촘촘히 채워 넣으면 결국 그 멋진 곳이 지금 여기에 펼쳐지게 되는 법이다. 아... 마을 사람들에겐 그게 있고, 나에겐 그게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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