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이 없어서 꿈을 이루지 못한 줄 알았다

by 한들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적이 있다. 박사를 받고 지방대라도 가서 자리를 잡고 싶었다. 대학 교수. 이런 타이틀을 명함에 찍고 다닌다면 얼마나 짜릿하고 뿌듯할까. 주변에 자랑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체면이 있으니 대 놓고는 못하겠지만 속으로는 엄청 우쭐 댔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수가 되지 못했다. 앞으로 될 수 있는 가망성 또한 없다. 가장 확실한 이유는 원서를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다. 국내 대학에서 교수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내정자가 있어서 나 같은 연줄 없는, 여자, 국내 박사는 교수로 뽑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희망이 없다.


무엇보다 교수가 되려면 미국 유학을 다녀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유학을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때운다고 해도 생활비는 어쩔 것인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이미 영어 시험 점수를 받는 과정에서 재정난에 시달렸다. 유학 준비한다고 일을 다 그만두었고, 학원비와 시험 응시비, 생활비를 모두 감당해야 했다. 돈이 없어서 영어 공부를 못했고, 그래서 입학 원서도 써 보지 못했다. 결국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라고 쓰고 싶지만, 과연 이 생각이 모두 맞는 것일까?


다시 그때를 떠올리면 ‘그 말이 정말일까?’ 궁금해진다. 반박할 수 있는 여러 대답이 있다. 영어 시험은 문제집과 인터넷 정보로도 충분히 점수를 낼 수 있다. 유학 준비한다고 모든 일을 다 그만둘 필요도 없었다. 한정된 시간이라도 집중하면 점수를 올려갈 수 있었다. 강의를 하면서도 원서를 준비할 수 있고, 유학 다녀온 선배에게 조언도 얻을 수 있었다. 만약 합격이 돼서 미국에 가야 하는데 돈이 떨어졌다면, 다시 강의해서 목돈을 모아 코스워크를 밟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장학금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그때 내 마음속에 스며 들었던 말은 ‘해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연구하려고 유학을 가는 건데, 여기에서 논문 쓰면 되는 거 아니야?’ ‘미국에 가도 넌 돈이 없을 거야.’, ‘세상엔 너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야’, ‘미국에 가서 빈털터리가 되면 너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몰라’였다.


이런 말에 압도된 나머지, 공부에 집중하기보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바깥으로 돌아다녔다. 따뜻한 코코아를 사 마시고, 사람들을 만나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것 때문에 돈을 더 썼다. 결국 돈이 문제가 아니라, 불안을 다스리지 못했던 것이 실패의 요인이었다. 돈을 쏟아부어야 영어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고정관념과 입학 이후에 아무도 나를 돕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한 데 엮여하고 싶었던 일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에 남편을 만났다. 결혼했고, 지금 여기에서 지난날 돈 때문에 유학을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에피소드로 써먹고 있다. 유학을 다녀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후회하는 것은 깔끔한 실패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돈이 들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직도 뒤돌아 보면서 이렇게 서성대진 않을 것이다.


그 레퍼토리는 지금도 반복이다. 사업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야. 연구를 할 수 없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야. 애만 보고 있는 것은 돈이 없어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돈이 없어서야.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크게 부인하지 않으며, 돈이 없다는 그럴듯한 이유로 지금 이 상태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특권을 챙기고 있다. 정말 돈이 없어서 문제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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