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시간을 내지 못하는 진짜 이유

다른 사람에겐 시간을 잘도 내면서 정작 나에게는?

by 한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 때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나를 뽐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글로 대박 쳐서 돈 벌고 유명해지고 싶어서인 줄 알았다.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오랫동안 생각했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오기는 했다.


그런데 아무도 대우해 주지 않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없는 자리에서도, 돈을 벌지 못하고 무명인 상태에서도 나는 쭉 글을 썼다. 나는 일상에서 겪은 일을 재미있게 전달해 주는 걸 재미있어한다. 복잡하고 희미한 생각의 뭉치를 틀에 맞춰 ‘쫙’ 짜서 ‘착착’ 정리해 두는 것에는 희열을 느낀다. 마음이 착잡하고 생각이 복잡하면 여지없이 글을 쓴다.


그런데 지금 마흔이 넘는 지금까지 내 책을 하나도 내지 못했다.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책을 하나 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아직까지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동안 글 작업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많은 작업을 하면서도 정작 내 책을 쓰는 데는 시간을 쏟지 않았다.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은 졸업을 위해서, 프로젝트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엮여 있기 때문에 마쳤던 것이다. 다들 데드라인이라는 것이 걸려 있고, 대가가 존재했다. 항상 내 책은 뒷전이 되었고, 다른 글 작업이 우선시되었다. 그밖에도 시간 약속이 정해진 강의, 다른 사람이 시킨 일, 눈앞에 닥친 일 등을 먼저 처리했다. 하고 싶은 일은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려 해야 하는 일 뒤로 숨어 버렸다.


심지어는 그런 일이 딱히 주어지지 않은 때에도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책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언제나 바빴던 것은 아니었다. 방학 때라도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끊임없이 투고를 했다면, 책 한 권은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출간은 이뤄지지 못했다. 매일매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입에 대면서 글을 쓸 시간을 전혀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은 시간이 더 없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아이들 좇아 다니고 먹이고 입히고 재우면 하루가 금세 지나 버린다. 집안일은 꼭 빨래나 청소, 설거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잘한 행정일(?)이 은근히 많다. 이런 것이 다 정신을 분산시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겠다고 덤비고, 틈이 날 때마다 체력이 닿는 날마다 글을 써 댄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젊은 날에 시간은 매일 흘러 다녔고, 심심한 날도 많았다. 많은 시간을 그저 눈 뜨고 보내버린 적이 많다. 절대적인 시간이 모자라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을 감내하는 것이 두려워서 엉뚱한 곳에 시간을 쏟아부은 것이다. 일종의 회피인 셈이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책을 내는 데 시간을 쓰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그러면서 많은 시간 글을 읽고 필사를 하고 틈틈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부지런히 했던 것을 보면,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은 맞다. 그런데 유독 책을 내는 것에는 그렇게도 시간을 내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마음속 깊숙이 숨겨둔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때문인지 모른다.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깊은 믿음이 내 안에 없었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지 않은 것이다. 지금의 상태로 책을 내놓는 것은 불완전하며 쓸모없는 것이라고 내면 깊이 속삭였던 것이다.


‘지금으로는 부족해, 지금의 상태로는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책이라는 것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깊은 철학이나 고급 기술을 담은 책도 있다. 기초적이고 편한 내용을 담은 입문서도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쓴 책도 있고, 논리가 선명한 책도 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이나 에세이도 있고, 로맨스나 추리 소설과 같은 장르 소설도, 순수 문학도 있다. 엄청난 스펙트럼 사이에서 다양한 책이 나온다.


그 스펙트럼 어디에도 내가 발붙일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말로는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을 쓰면 된다고 내뱉었지만, 실제 마음속에는 꽤 괜찮은 책을 쓸 수 없으면 그만두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책은 수준이 높은데, 쓸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서 망설여졌던 것이다.


그러니 막상 생각을 그대로 적어 내려가는 작업을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 같은 것도 책을 낼 수 있나?’라는 의구심 만을 잔뜩 간직한 채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우니까 시간이 없다는 구실을, 다른 일이 더 중요하다는 핑계를 그럴싸하게 갖다 붙인 것이다.


그때 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 무얼 하며 시간을 쓸지 결정하고 그대로 준행해야 했다.


그것을 밀고 나갈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 늘 바빴고,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다른 것은 다 하면서 꼭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만 빠져나갔다. 그러니 삶에서 앙꼬가 빠진 느낌이 들어 마음이 헛돌 수밖에.


이제는 이러한 불안감이 책을 처음 내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받아들이고자 한다. 낯선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이기에 두렵기도 하고 숨고 싶기도 한 것이다. 나의 경우 정도가 조금 더 심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그 불안감은 두렵게 느껴지는 바로 그 상황 속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가 맞닥뜨려야 사라진다.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어려움을 하나하나 처리하고 일에 몰입해 나가다 보면 그 모든 것이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의 오랜 방황도 이걸 알아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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