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돈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쓸까?
만약 세후 2억씩 매달 벌게 된다면 어떻게 쓰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던졌더니 다들 기분이 엄청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어떤 분은 그만큼 벌려면 얼마나 일을 해야 할지 떠올라 힘들어졌다고도 했다. 여러 반응이 있었지만,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명확히 드러낸 사람은 없었다.
남편에게 이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남편은 우선 집을 산다고 대답했다. 집을 샀는데도 2억씩 계속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보았다. 자기는 그냥 회사에 다닐 거라고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딱히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회사에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서도 계속 회사에 다니겠다는 거야?’라고 물으니, ‘그럼 회사를 살까?’라고 말한다.
“회사를 사면?”
“그러면 회사에 다녀야지.”
더 이상 말을 말아야지.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졌다. 나도 2억씩이나 매달 쓸 자신이 없었다. 돈 쓰러 다니는 것도 좀 귀찮을 것 같다. 그러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정말 돈이 없어서 불행한 것일까? 돈이 없어서 뭘 못하고 있는 거 맞나?
지금 상태로라면 아마도 우리는 돈이 많으면 많아서 힘들 것이다. 돈이 많이 생기다고 해서 삶이 180도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이 삶을 이만하면 괜찮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가족 갈등을 주제로 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여기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가족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그랬더니 주저 없이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 쥐고 선, ‘이것이 없어서죠’라고 대답했다. 거기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죠. 돈이 없어서, 돈 문제로 많이 싸우시죠. 그런데 만약 갑자기 10억이 집에 떨어졌어요. 가족끼리 싸우지 않을까요?”
이렇게 물으니 다들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돈이 아무리 있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돈이 없는 지금이라도 갈등관리 능력이 있으면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돈이 조금 더 있으면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서 스트레스가 감소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돈이 100억, 1조 단위의 많은 돈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돈이 아무리 있으면 뭐하나. 그것으로 뭐할지를 모르면 그냥 휴지조각이다. 돈을 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마트나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잔뜩 사는 것이다. 그것을 쟁여 놓으려면 집이 넓어야 하니까 집을 구매해야겠지. 차도 한 대씩 사고. 나머지 돈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불할 것이고. 그것이 나의 삶을 그렇게 많이 바꿔놓을 수 있을까. 나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줄까.
항상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녔기 때문에,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마음에 남아 있었다. 연구비를 충분하게 쓰면서 여유롭게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돈이 많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논문을 쓸 텐데…….
그러다가 진짜 거금이 생긴 일이 있었다. 시간강사 지원 사업에 제안을 했는데 채택이 되어서 사업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열악한 학문 후속세대의 처우를 개선해주자는 복지성 재정지원이라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무려 천이백만 원을 현금으로 넣어주었다. 물론 기간 별로 나눠서 순차적으로 넣어주었고 성과도 내야 했지만, 정부 돈 치고 까다로운 행정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지원금이라 연구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좋았다.
현금 천이백만 원. 이것으로 뭘 할 수 있을까. 일억 이천만 원도 아닌 천이백만 원이 생겼는데, 갑자기 목돈이 생기니까 뭘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연구비가 충분하면 좋겠다’고 바라만 봤지, 실제로 충분한 연구비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우선 그 돈으로 노트북을 샀다. 전자제품 전문매장에 가서 전시상품으로 나온 제품을 샀다. 천이백만 원이 있는데 왜 전시상품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백만 원이 안 되게 노트북을 지르고(?) 나니, 천백만 원이 남았다. 그것으로 또 뭘 할지 몰라서 한참을 통장에 넣어 두었다. 그 뒤로 책도 사고, 교육 들으러 가고, 워크숍 진행비, 논문 게재비 등으로 쏠쏠하게 쓰긴 했다. 이 돈을 지출하는 데 무려 몇 년이 걸렸다.
이것이 나만의 이야기인가? 억도 아니고, 나같이 천이백만 원, 아니 백이십만 원이 있다고 쳐보자. 그것을 모두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과연 무엇을 할까? 머릿속에 탁탁탁 떠오르는가?
몇 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쓸 수 있는 돈을 지급받고 점차 사용을 해 보면서, 돈을 가지고 어떻게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특정 액수의 돈은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한다. 돈은 무엇인가로 교환되었을 때 진짜 가치를 가지는 것이고, 나는 그것으로 어떤 가치를 얻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가성비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무엇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야 백억이든 천억이든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단순히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바라기만 하면 막상 돈이 생겨도 원하는 데에 돈을 쓸 수 없다. 돈이 생기기 전부터 사용처를 마음속에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정해두면 의외의 곳에서 그만큼의 돈이 생기는 ‘기적’도 발생하곤 한다.
큰돈이 모일 때까지 막연히 기다리지 말고, 적은 액수라도 특정 한도를 할당해 두고 꿈을 위해서만 쓰는 연습을 해 봐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생활비와 개인 용돈이 분리된 ‘꿈 통장’을 개설하고, 소확행이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꿈 지출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