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대한 기대를 내가 나에게 하기로 한다
‘시집을 왔더니 내가 누구인지, 어떤 대학을 나왔고,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인지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를 낳았더니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통로, 생물학적 육체의 역할로 좁아진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고 말이다. 수유하기 위해서 가슴을 공중에 훤히 내놓고 누워있으면 ‘내가 누구지’라는 질문조차도 머릿속에서 사라진다고 말이다.
이 말에 나 또한 공감했다. 시댁에 가면 나는 박사도 작가도 선생도 아닌, 밥 차리고 치우는 사람, 애 보는 엄마, 아들을 내조하는 조력자였다. 가족 내 모든 대화의 중심에 며느리의 일이 주제로 떠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댁 어른의 근황, 남편의 직장 이야기, 아이 자라는 모습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사회 문제로 주제가 전환된다.
그래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가? 아니, 시부모님이 나의 일상과 미래 계획과 사회생활에 대해 물어보신다면, 그건 더 곤란하다. 질문을 하신다 해도 자세하고 진지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나의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은 집안일과 육아를 등한시한다는 말로 들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전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 말씀드리기가 힘들다. 돈도 안 벌면서 공부하고, 글 쓰고, 콘텐츠 만들고, 엄마들 만나는 것을 과연 납득하실까? 집안의 재산을 축내가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고 하면 어떻게 여기실까? 실제로는 시댁 어른이 나에게 뭐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나 스스로 검열을 하고 앞으로의 계획과 하고 있는 일을 굳이 내놓지 않는다.
문제는 그렇게 숨기고 드러내지 않자, 나 자신도 뭘 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는 것이다. 이어서 어느새 주변의 기대에 맞춰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심리학 용어 중에 ’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 개념을 정립한 로젠탈 교수는 성적이 비슷한 아이를 A, B 두 반으로 나눴다. A반의 선생님에게는 이 반에 속한 아이가 우수하고 창의적이라고 알려주었다. B반의 아이는 무언가 부족하고 학습에 열의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이런 지식을 알고 각 반에 들어간 선생님은 그 내용에 맞게 아이에 대한 기대를 갖고 반응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A반 아이가 실수를 하면 선생님은 ‘너는 원래 잘하는 아이인데, 이번에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한 것이구나.’라고 반응하였다. 반면 B반의 선생님은 ‘너는 이것을 잘 못하니까 더 노력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러한 기대가 어떤 영향이 있을까 싶었지만, 선생님의 반응은 실제 아이의 성적에 영향을 미쳤다. 늘 긍정적이고 자부심이 있는 아이로 여겨진 아이는 성적이 더 높았다.
가정 내에서 나에게 더 큰 꿈을 꾸길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더 큰 꿈과 도전은 가족에게 불편함과 시련으로 다가온다. 엄마가 밖에서 무언가를 시행하고, 그래서 좌절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침체되고, 또 회복되어 더 성장하는 과정을 다른 가족 구성원은 감당해 주지 않는다. 엄마가, 아내가, 며느리가 자신의 그 과정을 지원해 주길 바라지. 혼자서 정신 승리하겠다고, 그 모든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힘이 든다. 당연한 제안을 어렵게 거절해야 하고, 그로 인한 실망과 분노를 조용히 받아들여야 하고, 자신의 마음을 바꿔 먹어야 한다. 이 모든 흐름을 억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러다 보면 지치거나 그냥 생각하지 않거나 아예 자신을 기존의 관념에 맞춰버리게 된다.
왜 이래야 하는 것일까? 꿈 하나를 갖고, 이것을 이루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데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여러 사회적 환경을 신경 쓰느라 진을 빼고 말아야 하는 것인가. 본 게임을 시작해 보기도 전에. 속상하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선택과 결심이 필요하다. 어쨌든 결혼을 하고 기존의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 적절한 처신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이런 답답함을 야기하는지 모른다. 꿈을 간직하고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기대와 지지가 필요한데, 그걸 꼭 가족만이 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넘어 주위를 둘러보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기 엄마도 있고, 이미 이 길을 걸어간 선배도 있고,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누군가도 있다.
살짝궁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다 보면, 며느리나 엄마라는 역할을 힘겨워하거나 답답해하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런 글을 읽고 있으면, 위안과 지지를 절로 얻게 된다. 이런 상황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나의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또한 이건 내 삶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다른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갖게 된다. 가족만큼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아프거나 사고가 생겼을 때, 나를 거둬 줄 사람은 다른 누가 아니라 가족이다. 힘들더라도 가족을 품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다만 여기에 매몰되지 말고, 나를 세워가겠다는 그런 결심이 필요하다. 다른 누군가에게 받길 원하기보다, 나에 대한 기대를 나에게 내가 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