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했다가

거절하지 못하는 나의 속마음

by 한들

나는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거절을 하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고 떠날 것만 같아서, 그래서 나 홀로 남겨질 것이 두려워서 거절하지 못한다. 솔직한 마음은 ‘부탁을 들어주기 싫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전달하면 당신이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지금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지만, 그래도 함께 하고 싶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말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없었다. 아예 이러한 문장이 가능한지도 몰랐다. 상대가 원하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일까?


왜 이런 의문을 간직하게 되었을까? 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으면, 나를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두 가지의 가정을 해 볼 수 있겠다. 첫째, 내가 만났던 사람이 정말 나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나를 하나의 기능으로, 도구로 사용할 목적을 가지고 만났고 내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할 때 피해를 입거나 떨궈진 경험이 있는 것이다. 인생의 쓴 맛을 제대로 본 것이다.


또 하나는 나 스스로 나의 존재 자체를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내 모습 이대로의 나 자신을 내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 나 자신이 나의 존재를 긍정하고, 무언가를 잘하지 않고 그냥 있어도 괜찮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무언가를 잘하려고 노력했고, 관심을 받기 위해서 목소리를 ‘업’해서 떠들었다. 모든 일이 다 헛되고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를 따르고 좋아해 주고 함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괜찮은 척하면서 억지로 관계를 부여잡는다고 해서 그 사람과 온전히 같이 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괜찮지 않은데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속이고 속인 결과는 당연했다. 나 자신이 그러한 관계를 못 견디고 뛰쳐나오기 일쑤였다. 나 자신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안에서는 열이 올랐고, 그 분노가 결국에는 관계를 싹둑 자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면 아주 아팠고, 후폭풍이 오래갔다.


이때 가장 괴로운 것은 나도 나지만 상대를 아프게 했다는 자괴감이었다. 바로 이 자괴감이 싫어서 거절을 못했던 것이고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의 인생길에 피해를 준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거절을 하거나 관계를 단절한다고 해서, 상대의 상태가 그렇게 나빠진 건 아니었다. 그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가던 길을 찾아 떠났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의 영향에 절대적으로 휘둘리지도 않았다. 자신의 삶이 중요했고, 잠깐의 흔들림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았고, 회복력을 갖췄다. 내가 그렇게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씁쓸하지만(?), 내가 너무 상황을 과장해서 생각한 것은 문제였다.


존재 자체로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언제라도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나를 떠날 것이다. 내 존재 자체가 좋아서, 그냥 같이 있는 것이 좋아서, 내가 하는 일이 상대의 마음에도 들어서 같이 있게 되면, 떠나려고 해도 그럴 수 없게 된다. 사람은 마음이 가는 곳에 머물게 마련이다. 억지로 꾸미고 강요하고 붙들고 애쓴다고 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관계가 단절될 것이 무서워서, 나 홀로 남겨지는 것이 무서워서 그냥 괜찮다고 말했던 것은 정말 잘못된 방향이었다. 오히려 내 상황과 마음을 모두 고려하여 ‘괜찮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래야 정말 괜찮을 때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고 말이다. 그래야 언제고 편하게 함께 웃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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