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주변에 있는 4명의 사람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사람인가?

by 한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왔다. 태어나면서 원래부터 만나게 된 사람도 있고, 그냥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있고, 친하게 지낸 사람도 있고, 아주 깊은 관계를 맺은 경우도 있다. 관계는 다가왔다가 스르르 멀어지는 그런 속성이 있다. 평생 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결국은 가고 만다.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모였다가 흩어져 버리고 또 모이고 흩어지면서 모양을 바꾸어 간다. 나는 그러한 관계망 어디쯤에 속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가까이 있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 딱히 소식을 전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느낌이 오는 때가 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지도 교수님은 암투병을 하고 계셨다. 최초 발병 후 5년 동안 생존하셨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강의를 마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밥을 먹는데 선생님 생각이 번뜩 났다. 선생님께 직접 전화를 드리진 못하고, 학교에 남아있던 대학원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별일 없으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별일 없으시다’고 했다. 그래서 몇 가지 근황에 대해 떠들고는 전화를 끊었다.


바로 그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께서 위독하시니 마지막으로 제자를 불러 달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선생님을 뵈었던 그날 돌아가셨다. 지금도 왜 갑자기 전화를 걸고 싶었는지, 그런 마음이 왜 왔는지 잘 모르고 신기하기만 하다. 다만 몸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은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지만 말이다.


이런 것을 경험하고 나니, 아무나 막 만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날 때 좋은 사람,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교류해야 된다. 재력, 직업, 능력, 인종이나 성, 지역, 나이 등의 조건을 따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구분에 갇히면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받고 싶은 영향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잘 따져봐야 한다. 이것을 모르는 채로 오는 사람 막지 않으면 사람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사람 저 사람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내가 어떤 사람에게 맞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해 볼 기회조차 없게 되니까 말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나를 돌아보는 능력이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을 막지 않고 우선은 만나고, 그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되고 느껴지는 것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흔히 상대의 행동 그 자체에 마음을 빼앗겨서, 상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만다. 마음에 안 드는 상대를 향해서 화를 내고,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또 나에게 맞지 않는 그 사람에게 돌아가고야 만다. 싫다고 느끼면서도 오랜 시간 그 사람에 대해 떠올렸기 때문에, 누군가 만나야 할 때 그 사람이 생각나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미운 정도 정이라고 하는가 보다. 그렇다고 계속 미운 사람과 살아갈 수는 없다. 미운 사람과 계속 함께 하면 나 자신도 미워진다.


대신 초점을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맞춰야 한다. 상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나의 마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떠올리고 말해야 한다. 상대로부터 무엇을 바라고, 어떤 점이 충족되길 바라기 때문에 그렇게 실망을 했던 것인지 물어야 한다. 누군가의 무뚝뚝한 말투 때문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면, 그 사람의 말투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따뜻한 말투를 가진 사람을 원하는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직접 요청을 할 수 있다면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상대의 행동 그 자체를 이해해 보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고 행동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면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따뜻한 말투를 가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서 교류하면 된다. 그러면 결국 자신도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있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어렸을 때는 만나는 사람을 선택할 권한이 별로 없었다. 거의가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만나게 된 사람과 다 친하게 지내고 적응을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난 이후에는 어떤 기준이 없이 최대한 아무나 다 만나보았다. 최대한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세상을 보는 눈 자체를 넓혀보고 싶었다.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사람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사람에 대해서 더 모르게 되었다. 사람은 좋다가도 나빴으며, 맞다가도 틀어졌고, 이타적이면서도 이기적이었다. 이렇게 입체적이고, 양면적이고, 일관성이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이고, 나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일까?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를 결정해야 한다. 대상을 가려서 만나라는 건 아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고 한다. 여러 측면을 가진 복합적인 상대의 여러 면 중에서 보고 싶은 좋은 점에 초점을 맞추면, 그 지점을 자꾸 발견하게 될 것이고, 거기에 맞춰서 나도 반응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좋은 점이 없는 사람도 없다. 그 좋은 점을 바라보고 그것을 부각하고 그것이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나는 좋은 사람만 만나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사람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싶었다. 그래서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이 삶을 살아내고 싶었다. 산속 초가집에 숨어 사는 고수의 이미지. 몸은 자유로우면서도 세상을 꿰뚫고 있어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는 사람 말이다. 그런 숨은 고수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숨어 살 텐데 어디에서 만나야 하는 것일까? 내가 점점 그러한 사람이 된다면 서로 통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내 곁에 있는데 알아보지 못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을 잘 둘러보자. 둘러보면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가. 그 사람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 계속되는 만남과 대화와 생각의 연결 흐름이 나를 만들어 낸다. 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나. 그들은 좋은 사람들인가. 나는 그런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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