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by 서론

나는 매일 금요일이면 산책을 나가길 좋아한다. 부드러운 햇살과 머리칼을 휘날리는 매서운 바람만큼이나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산책을 가는 길은 언제나 같다. 집 근처의 시장을 거쳐서 전남대학교를 한 바퀴 돌고 호숫가에 앉아서 햇빛을 부스러뜨리는 물결을 보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먼저 시장으로 가보자. 장날 전 시장의 정경은 썩 정겹진 않다. 겨울바람에 눈만 빼꼼하니 내놓은 상인들의 표정과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장날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발 딛을 곳 없이 꽉꽉 들어찬 사람들은 용광로 마냥 열기를 내뿜는다. 여기에 상인들은 신명나서 목소리를 높여 호객행위를 하거나 물건 값을 깎으려 드는 손님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시장을 살아나게 하는 것은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냄새 또한 시장을 새롭게 만든다. 비릿한 생선 냄새, 채소에서 나는 흙내, 강정을 만드느라 솥에서 볶아지는 깨의 고소한 향기, 한약재에서 솔솔 풍겨오는 달콤하고 씁쓸한 냄새, 과일의 상큼한 내음까지. 시장은 냄새들의 만물상으로 변한다.

이제 전남대학교를 살펴볼 차례다. 봄날이라면 세상 천지에 피어나는 꽃들이 산책을 즐겁게 해준다. 전남 대학교의 교정에는 수많은 꽃들이 있다. 동백꽃, 벚꽃, 목련, 수선화 등등, 그러나 이런 기라성 같은 꽃들 중에서도 유달리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매화다. 나는 겨우내 산책을 나가면 매화나무 앞에서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다 보면 나무가 말을 걸어오지 않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때엔 매화만의 독특한 매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겨울의 매화는 앙상한 가지와 거칠고 시꺼먼 나무껍질뿐이다. 그러나 봄기운이 느껴지면 매화는 붉은 꽃망울을 맺기 시작한다. 거칠고 앙상한 가지는 마치 전혀 꾸밈없는 여인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꽃망울은 입술이 되어 화려한 빛깔을 뽐낸다. 수수함과 화려함이라니, 어찌나 모순적인지! 마음이 옴찔옴찔 한 것이 조용히 말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비할데 없는 매력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봄이 찾아오기 시작하면 매화는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때는 매화라는 한 여인이 겨우내 다물었던 붉은 입술 속에서 새하얗고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내고 활짝 웃는 것 같다. 그렇다면 더욱 말은 필요가 없다. 단지 마주 보고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화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형언할 수 없는 모순을 드러내며 봄을 맞이하는 것이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걸음이 가볍다. 두 시간쯤 걸었음에도 힘이 난다. 이는 산책이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이리라. 바로 새로움이다. 어떤 이들은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똑같은 장소, 똑같은 풍경인데 어떠한 새로움이 있겠냐고.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변화들에게서 느껴지는 새로움, 그리고 면밀한 관찰을 통해서 발견하고 그로써 느끼는 즐거움. 마음에서 옴쭉거리며 싹틔우는 감흥. 이런 것들이 산책의 즐거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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