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
약에 대한 나의 생각
약을 먹으면, 가끔 했던 일이 현실에서 한 것인지, 꿈에서 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만다.
폐쇄병동에서는 더 심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하다 보니, 어제가 오늘 같고, 그저께도 오늘 같았다.
그래서 아침에 먹었던 반찬을 저녁에 기억하기가 힘들었다.
퇴원을 하고 나선, 레고의 자살 미수 사건에 또 한 번 입원 권유를 받았지만 응하지 못했다.
대신 주치의는 약으로 1주일을 꿈같은 일주일로 만들었다.
기억이 뿌연 하고 뭉뚱그려서 기억되었다. 손으로 휘적휘적 저어도 계속 안갯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한 시간마다 깨거나, 잠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꿈을 너무 많이 꾼다.
나는 주로 수면의 질이 많이 낮아서, 4시간만 자면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면의 질, 수면 시간, 꿈을 안 꿀 수 있도록 약에 도움을 받아
하루 8시간 정도를 자니, 가장 달라진 건 짜증의 감정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때에는 사소한 일에 짜증이 너무 나서, 만약 내가 물건을 떨어뜨리면 소리를 치며 머리를 때렸다.
(글을 쓰면서 그때의 상황을 상상하니 미쳤었다란 생각에 웃음이 난다. 하하)
나는 가끔 약의 개수가 너무 많아서, 이게 살려고 먹는 것인지 죽으려고 먹는 것인지 생각한다.
증상은 호전되지 않는 것 같고, 이렇게 먹어도 이 정도의 감정 장애를 겪는 다면 ‘왜 먹지?’라는
생각에 주치의한테 약을 안 먹고 싶다고 한 적도 많다. 하지만 주치의는 지금도
힘든데 약을 먹지 않는 것은 나에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환자가 감당할 수 있게 약을 주고, 증상이 완화되면 그 약을 끊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의사의 일이니,
약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주치의 말은 불안에서 믿음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많은 이들이 ‘약을 먹지 말까?’, ‘언제쯤 약을 안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약을 잔뜩 먹어 약물 자해를 한다.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감정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혼자서, 혼자의 삶을 지킬 힘 조차 없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것, 인간의 필수 행위를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힘든 것이다.
지금 감정 장애와 약으로 인해 힘든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못하니 몸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힘든 게 맞아요. 본인이 이상한 것이 아니에요.’
‘잠을 못 자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잘 다루는 이 조차 힘들고 지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