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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fu Oct 01. 2020

감정 장애

우울증


  충치 치료를 위해 치과에 갔다. 치료를 위해 의자에 앉으니 의료진은 나의 얼굴에

초록색의 천을 덮었다. 입만 보일 수 있게 구멍이 나 있었다.


 시야는 차단된 채, 치료 도구들은 입속으로 마구 들어왔다. 무엇인지 모른 채 들리는 것은

윙윙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치과 냄새뿐이었다. 치료 내내 불안함과 예민함에 두 손이 꽉 쥐어졌다. 치료가 끝나고, 치료 도구들을 보았다. 내가 느낀 불암함의 크키와는 다르게 너무 작고 불 품 없었다.


 치과에서 나와 신호등을 기다리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정 회로에는 초록색 천이 덮여있다. 초록색 천에 감정의 시야를 가린 듯,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 때문인지, 외부 자극에는 예민하고 사람들을 이미지화시켜

기억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 버릇 때문에, 공개수배범도 잡았다!

 감정은 초록색 천에 덮여,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상황에는 나오지 못하고 혼자 있을 때, 감정이 뒤늦게 터져 나와, 눈물이 나고 자기 자신을 자책한다.

 감정 장애인으로 사는 건 이런 것 같다.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무표정함은 감정 통제를 못 하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했기에, 웃는 가면을 항상 쓰고 있었다. 심리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그 가면은 벗겨지지 않았고

화장실에서도 혼자 웃고 있는 나 사긴을 발견한다. 이 버릇이 ‘잘못되었구나’라고 생각하게 한

상황이 2가지 있다.

 내가 호텔에서 알바를 할 때, 직원이 어머니는 뭐 하시냐는 질문에 가정주부라고 하자,

아버지 피 빨아먹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엄마는

뇌출혈로 인한 왼쪽 마비로 장애인 판정을 받아 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며

살아가는 데 나는 그 말에 미소를 지어 보인 것이다. 또 하나는 내가 직장에 다닐 때 나에게 직장 상사가 ‘두부 너는 피마 입고 다니지 마라, 다리가 그게 뭐야? 어휴...’ 이 말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화를 내야 하는데 그런 마음보다는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는 살이 흐른다고 표현할 정도로 배가 나온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우울할 때에는 대체로 무기력함이 같이 따라온다. 손가락을 들기도 힘들고 어느 때에는 며칠 내내 샤워도 못 한다. 무기력함은 나의 일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오면 나는 습관적 자아 외면을 위해 방에 있는 모든 불빛을 차단하고 침대에 눕는다

약을 먹고 잠들려고도 노력하거나 나의 감정을 끊어줄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린다.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감정들은 나를 힘들게 하고 어느 순간에는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더 깎아내릴까 궁리하는 내가 되어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눈으로 보이는 시작 작인 정보로 시각적인 말로, 나에게 안부를 물으며 힘내라는 위로가 나는 힘을 내 수 없는데 ‘현실을 인지해’라는 시각적 상황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힘내야 할 일은 무거운 거 들 때나 쓰자.


오늘도 ‘나 왜 이래?’ ‘나 이상한 게 확실해’ ‘나만 왜 불행하고 우울해?’라고 생각하는 내가, 나와 같은 여러 감정 장애를 가진 감정 장애인들에게 위로보단 그럴 수  있고 나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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