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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fu Oct 15. 2020

약속이 취소되면 그렇게 즐겁다

신경증과 대인관계



 나는 신경증 성향이 높은 사람이다.


신경증은 불안, 우울, 분노 등 부정적인 감정을 잘 느끼는 성향을 말한다.


 새로운 환경이나 상황에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쉽게 불안, 걱정, 초초함에 빠진다.

 작은 일에도 예민하고 상처를 잘 받으며 부정적인 생각과 상상을 많이 한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데 어설퍼 쉽게 부정적인 감정에 빠지고

주관적 고통과 불행감을 신경증 성향이 낮은 이보다 더욱 많이 느낀다.

또한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불화, 관계 유지의 어려움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없다.


나는 한 때 나의 세계관을 넓히고 긍정적인 ‘나’를 만들어 보겠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나와 직업, 나이, 성별도 다른 이들을 만나고 다녔다.


‘오토바이 하나로 미국을 횡단한 사람’

‘팔로워 만 명이 넘는 프로 러너’

‘자전거로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일주를 한 사람’

‘나와 동갑이지만 애가 셋인 사람’

‘감정 노동인 이라 소개하던 이비인후과 의사’


그들의 경험과 나와는 다른 일상은  새로운 문화 충격을 주었고

그것이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과 자기 발전을 제시해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누워 울기만 했다.

결국 새로운 대인관계의 연속은 번아웃 증후군 진단을 받게 했다.


(번아웃 증후군: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


각각의 사람이 지닌 에너지 양은 같지만, 사용하는 곳에 따라 각자의 에너지 사용량은 다르다.

나는 운동 2시간보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사람의 눈동자, 입꼬리, 언어, 행동 등을 계속 관찰하며 그 상황에 맞는 긍정적인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 도중 대화가 끊어지기라도 하면 손과 발끝이 간질거리고 움츠러든다.

목소리가 크거나, 높은 텐션의 소유자를 만나는 날에는 그의 텐션을 따라가다 보면

 ‘에너르키파’를 쏜 주인공처럼 너덜거려, 한동안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만나서 대화를 하면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을 잡는다. 그러고 헤어진다.

 만나기 전 상대방이 먼저 약속을  취소하면 ‘야호’를 외치고, 약속 당일,

나는 갑자기 안 아프던 몸이 아프거나 거짓말을 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약속을 미뤄야겠어요 죄송해요.’

‘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서 오늘은 약속을 취소해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해서 어쩌죠?’

 

 분명 약속을 할 당시에는 기다려지던 일이었는데 당일에는 하나의 ‘일’이 되어버린다.

준비하는 것도 일, 나가서 이야기하는 것도 일, 집에 오는 것도 일

에너지 소모를 하는 ‘일’이 되면 본능적으로 살기 원하는 몸은 자기 방어를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울기까지 한다.

 만약 친구와 다투기라도 하면 해결될 때까지 에너지를 다 소모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이런 내가 나도 이해가 안 갔다.


신경증적 성향이 높은 나에게 대입해보면 넓은 대인 관계는 나와는 안 맞았다.

하지만 대중매체에서의 넓은 대인관계의 긍정적 시선이 나를 무리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나의 성향에 맞게 대인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나는 많은 사람, 많은 소음과는 긴 시간을 같이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인관계를 좁고 깊게  만드니, 넓은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던

에너지가 절약되면서  다른 곳에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사회가 넓은 대인관계를 우대한다고 그것에 끼워 맞춰 에너지 방전이 되는 것보다

신경증적 성향에 맞는 나만의 에너지 절약법을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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