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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fu Dec 04. 2020

인간 스캐너

‘12시 방향의 여자 두 명은 서로의 남자 친구에 대해 자랑하는군 있음’


나는 낯선 환경에 대해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주변에 사람이 많고 시끄러우면 불안하고 예민해진다.


상황을 가정해보자.


카페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는다.


그럼 난, 나의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살펴본다. 스캔한다.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상태인지

스캔하며 행동의 이유를 상상하거나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


‘10시 방향의 커플이 커플티를 입고 인스타용 사진을 찍는다.’

‘12시 방향의 여자 두 명은 서로의 남자 친구에 대해 자랑하는군’

‘4시 방향의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남성 4명은 과제를 다하면

저녁에 술 한잔하자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

‘나의 뒤에 앉은 여자는 카페 근처의 지작에 다니는 사람.

유니폼을 입고 있고, 마트 계산대에서 종종 얼굴을 본 적 있다.’


카페라는 공간에서 커피만 마시면 되지만,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스캔한다.

나의 습관인 ‘스캔 기능’은 이미지를 잘 기억하는 특징이 있다.

이 성능은 현상 수배범도 잡았을 만큼,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안 하고 싶어도 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이 스캔 기능은 나와 친분이 있는 이에게도 적용된다.

요즘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레고’와 ‘주치의’다.


‘이 사람은 이럴 거야.’

‘이 단어를 사용했어, 신경 쓰이는 걸?’

‘나의 이야기에 기분이 나쁜가?’

‘나한테 지금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상대방의 아무런 의미 없이 취한 표정, 말투, 눈빛, 눈동자를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해석한 내용은 나의 태도에 쉽게 나타난다.

상상을 바탕으로 한 추측은 어느새 사실로 믿게 된다.


‘이 사람, 지금 기분 안 좋은 가봐!’


넋 놓고 있던 레고는 영문도 모른 채 나의 태도에 당황한다.

마음은 말하지 않은 채, 갑자기 스무고개를 시작한다.


레고: 왜 그래?

두부: 아니야

레고: 기분 안 좋아?

두부: 네가 안 좋은 거겠지.

레고:???


이렇게 글로 쓰니 나 진상이잖아?


‘기분이 안 좋다’ 가정하고 그의 눈치를 본다.

눈치를 준 것도 아닌데 혼자 눈치 보기 바쁘다.


내가 만든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레고: 나 아무렇지도 않아.

두부: 피곤해 보이던데? 그냥 집에 갈까?

레고: 아니라고...

두부: 알겠어...


그를 배려하기 위해 본 눈치에, 그가 불편함을 느낀다.

힘들지도 않고 기분 나쁘지도 않은 데 내가 그를 불편하게 만든다.


항상 긴장한 눈은 쉽게 커지고, 어깨는 24시간 수직 긴장 상태.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왜 이런지 모르겠다.


‘나도 주변 스캔하기 싫은데 스캔 기능이 발달한 걸 어쩌라고’

나도 눈치 보기 싫은데 그냥 눈치를 보게 되는 걸 어쩌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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