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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 Eunjeong Feb 10. 2021

내가 처음 만난 번역, 영화 ‘러브레터’

내가 처음 만나 번역, 영화 ‘러브레터’

내가 처음 본 일본 영화는 ‘러브레터’였다.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 이후 꽤 초반에 극장에서 상영한 일본 영화였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덕분에 영화 후반에 나오는 대사 ‘お元気ですか(오겡키데스까)’는 한국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일본어가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일본에서는 크게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내가 만난 일본인 중에 ‘러브레터’라는 영화를 아는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유일한 그 일본인도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들어봤다면서 반대로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왜 한국사람들은 모두 영화 ‘러브레터’을 아는지 물어보죠?’

1999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러브레터’는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가장 흥행한 일본 영화가 아닐까 싶다. 그마저도 요즘 10, 20대들은 모르는 듯하니 일본인이 ‘영화 [러브레터] 알아요?’라는 질문을 받을 일은 앞으로는 없어 보인다.

한국인에게 많이 사랑받은 영화 ‘러브레터’을 나 역시 참 많이 사랑했다. 이유 없이 그 영화가 좋아서 100번도 넘게 보았고 지금도 가끔 볼 정도이다.  
그 영화가 일본어를 시작하고 통역사가 된 계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번역”이라는 일이 참 멋있는 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이 편지는 가슴이 아파서 보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일본어를 모르던 그 시절 내가 본 자막이다. 이 영화에 감동한 나는 많은 자료를 닥치는 대로 찾아봤고 그 자막이 일본어와 다르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제 일본어를 할 줄 알게 된 나는 그 대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照れくさくてこの手紙は送れません‘  

‘照れくさい(테레쿠사이)’라는 말은 한국어로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주로 쑥스럽거나 멋쩍거나 낯간지러운 상황들을 말한다. 하지만 일본어에 담긴 그 의미는 조금 더 복잡하지 않을까. 그 상황이 결코 싫지 않다. 오히려 기분이 좋지만 그것을 들어내어 좋아하기 부끄러운 것이다.

나를 괴롭히기만 했던 중학교 동창,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우연히 받은 그 아이의 연인의 편지. 어른이 되어 알게 된 나를 좋아했던 그 아이의 마음. 그러나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그 아이. 그리고 그 아이를 잊지 못하고 있는 그의 연인에 대한 미안한 마음.

그 장면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그저 ‘쑥스러워서 이 편지는 보낼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자막이 나왔다면 나는 ‘러브레터’을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통번역 일을 꽤 오래 해 온 지금의 나는 그 자막에 대해 ‘번역가의 과도한 개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분명한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몇 년은 더 ‘러브레터’의 자막을 이렇게 기억할 것 같다.

‘ 번역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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