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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 Eunjeong Feb 10. 2021

밥통(식사통역)은 쉽지 않다

밥통(식사통역)은 쉽지 않다

통역사들은 의외로 식사통역을 할 때 긴장한다. 어려운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회의통역을 잘 마치고 식사자리에서 통역을 망치는 경우도 간혹 있다.

통역사들은 식사자리의 통역을 밥을 먹으면서 하는 통역이라 하여 ‘밥통’이라 부른다. 밥통이 어려운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1. 어떤 메뉴가 나올지 모른다.
 밥통이 필요한 경우는 대부분 식사를 대접하고 대접받는 사이가 많다. 누군가는 호스트이고 누군가는 게스트라는 뜻이다. 대접을 받는 사람들은 대접받은 음식에 대해 관심을 표하고 칭찬을 하는 것이 예의이다. 그래서 출장자들은 ‘이건 뭔가요?’, ‘이건 어떻게 만드나요?’ 등의 질문을 하는데 음식재료나 조리법의 설명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통역사들은 사전에 메뉴를 확인하고 공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별로 식재료가 달라 도저히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2. 식사자리에서까지 업무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정치가도 CEO도 식사자리에서까지 업무이야기만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비즈니스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식사자리에서는 업무와 관련이 없는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통역사는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미리 예측할 수 없다.


 한번은 자리에 계신 분들이 낚시가 취미라는 공통점을 발견하시고는 식사 내내 낚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두 시간동안 정말 낚시하기 좋은 장소를 비롯해 낚을 수 있는 모든 생선의 이름이 나와 식은땀이 났었다.


 또 한번은 클라이언트 두 분이 대학시절 럭비를 하셔서 럭비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셨는데 창피하게도 럭비라는 운동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다행히 용어들이 영어이기도 했고 즐거웠던 그 시절이 떠오르셨는지 마치 그 시절 럭비를 하시듯이 몸짓과 함께 이야기를 하셔서 통역을 하기도 전에 다들 알아들으셨다. 나는 그저 숟가락만 얹었다.

 식사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의 주제는 정말 다양하다. 시사, 정치, 역사, 운동 등 클라이언트의 관심사는 다양하고 통역사는 그것까지 미리 파악하기 어렵지만 말해주지 않았으니 통역을 못한다고 할 수는 없다.     

3. 통역사는 먹을 수는 없어도 먹는 척은 해야 한다.
 밥통을 하다 보면 밥을 먹을 수가 없다. 한국어 한 마디, 일본어 한 마디 하지만 통역사는 두 번 통역을 해야 한다. 클라이언트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는 집중하여 노트테이킹(필기)를 하거나 듣는다. 간단한 이야기를 할 때는 먹을 시간이 있긴 하지만 입에 넣었다 미쳐 다 삼키지도 못했는데 통역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 돌아오면 낭패이다. 그래서 통역사는 밥을 안 먹으면 편하지만 클라이언트는 밥도 못 먹는 통역사가 안쓰럽다. 그래서 말을 하시다가도 ‘제가 말을 너무 많이 했죠. 식사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그래서 통역사는 먹을 수는 없지만 먹는 척은 해야 한다.

참고로 식사자리에서는 업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조식모임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친목도모를 위해 아침 6,7시부터 식사를 하려고 만나는 비즈니스 파트너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 보아도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에 아침에 식사를 겸해 만나는 것이다. 조식모임의 통역을 갈 때는 사전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확인을 하고 통역사로서 중무장을 하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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