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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서영 Mar 11. 2024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


늙어가는 것은
특히나 외롭다
아무도 늙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단지 불쌍하고 처량하게 바라볼 뿐

그러나 늙어갈수록
인생의 맛이 깊어진다는 걸
젊은 사람들이 도대체 알 수 있을까

젊은 사람들은 남보다 잘나야만
사는 맛이 있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남보다 초라하기 싫고
남보다 못나기 싫고
남보다 모자라기 싫어서
허세와 시기와 질투로 무장을 하고
철저하게 자기방어를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것 없이 늙어가는 사람들은
그냥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줄을 안다

그것은 만족하려고 일부러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체념과 포기 속에서 터득한
단지 죽지않고 살아있음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가를 깨닫기 때문이다

푸성귀를 파는 할머니도 그랬다
가난 속에서도 알뜰살뜰
바쁘게 키운 자식들은
장성하고 나니 제 살 길 바쁘다고 모두 떠나
어쩌다 한 번 소식이 올까말까 하고
평생을 옆에서 닥달하던 남편이었던 할아버지는
결국 술에 쩔어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고
이제는 옆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살고 있으니
아파도 밥 한 끼 차려주는 사람없이
혼자 고스란히 끙끙 앓아야 했고
하루종일 말 한 마디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늙고 남루하여
누가 친구가 되어주지도 않았으며
아무렇게나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아니라고 제대로 말하기도 무서워
그냥 삼켜버리곤 했다

그래도 가장 고마운 것은
큰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늘 몸이 괴롭고 아프긴 하여도
죽을병은 아닌 것이 어딘가 생각하면
행복한 기분이 들곤 했다

할머니가 다른 사람의 논밭에서
남은 푸성귀를 얻어 동네 산책길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몸이 아파도
집에 누워있는것 보다는
장사를 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은 둘째치고
외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루종일 말붙일 사람도 없이
괴로웠던 지난 세월만 생각한다는 건
너무나 외로운 일이었다

이렇게 길에 나와 장사를 하면
사람들과 나름 의미있는 소통을 하니
외롭지도 않고
게다가 돈도 생기니
삶에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나이가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이제 생이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하면
아쉽고 서글프지만
아직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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