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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서영 Mar 11. 2024

불 꺼진 횡단보도


초읍고개에 있는 시민도서관 앞의 횡단보도는
4차선 도로 위에 놓여있어서
조금 길고 넓은 편이다

넓은 길에 비해
차도 사람도 그닥 많은 편은 아닌데
그래도 출근시간에는 제법 분주하다

대공원으로 아침운동을 갈 때 마다
이 횡단보도를 건너게 되는데
아직 이른 새벽이라 어둑할 때
횡단보도의 불빛은 묘한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가벼운 어둠 속에서
횡단보도에 일단 멈추어서
빨간불빛을 바라보며 그 빨간빛이
초록빛으로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은
그 짧지만 긴 것 같은 기다림이
재미있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빨간빛이 초록불로 바뀌는 순간
기다림은 문득 끝이 나고
새로운 출발처럼 발걸음을 내딛는다

어느 때는 내가 아직 횡단보도에
다다르지 못하고 이만치 멀리 있을 때
초록불로 바뀔 때가 있는데
가능한 거리일 때는 횡단보도 중간지점으로
사선으로 뛰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갈 때 그런 상황일 때는
돌아올 때도 같은 상황이 되어
똑같이 횡단보도 중간지점으로
뛰어야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흥미롭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나에겐 이렇게 재미있던 횡단보도 였는데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횡단보도에 도착했는데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빨간빛도 초록빛도 없이
신호등의 불이 꺼져있는 것이었다
의아해서 살펴보니 차선쪽으로
노란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신호를 없애고
알아서 다니시오란 표시다

아니 왜?
차가 붐비진 않아도
그래도 끊이지 않고 차량이 이어지는데?

혹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적으니
차량의 흐름을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리한 것일까?

나는 재미의 상실과 함께
횡단보도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건널수 있는
권익을 상실한 채
계속 이어지는 차량들의 사이를 뚫고
차들의 눈치를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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