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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서영 Mar 18. 2024

시민 도서관의 첫 수업

< 우주와 인간의 빅 히스토리>

     

 우주와 인간의 빅 히스토리에 대한 흥미와 기대를 가지고 시민도서관의 첫 수업에 참여했다. 강사는 물리학박사였는데 철학에도 조예가 있는 듯하였다. 원래 모든 학문은 철학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오리엔테이션을 풀어나갔다. 

  본 강의에서는 먼저 통섭[統攝, consilience]이라는 단어를 배웠는데, 통섭이란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라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 단어라고 한다. 즉 분리되었던 성숙한 두 학문분야가 20세기에 다시 만난 것을 ‘통섭’이라고 한다.두 번째로 ‘빅 히스토리’에 관한 언어 해석이었는데, 크로노미터의 혁명으로 인해 천문학, 생물학, 지질학이 역사의 범주 안에 들어와 새로운 학문을 이룬 것을 ‘빅 히스토리’라고 한다. ‘빅 히스토리’에는 8대 문턱이 있는데 첫 번째 문턱에서는 우주의 기원인 빅뱅이 있었고 두 번째 문턱에서는 수소 및 헬륨원자와 핵의 형태로 존재하는 원자물질인 별이 탄생했다. 세 번째 문턱에서는 강한 핵력으로 결합된 양성자의 수가 증가하여 점점 더 큰 원자핵이 생성되었고, 네 번째 문턱에서는 별의 궤도를 도는 행성들이 생겨났다. 다섯 번째 문턱에서는 지구에  번식할 수 있는 세포 안에 물리적, 화학적으로 모여 있는 복잡한 분자들이 나타났고, 여섯 번째 문턱에서는 사람의 DNA가 통제하는 고도의 생물학적 구조가 발달되었다. 일곱 번째 문턱에서는 농경사회가 이루어졌고, 드디어 여덟 번째 문턱에 이르러 현대 세계가 출현하였다. 복잡한 듯 보이지만 8개의 단순한 과정으로 압축된 우주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각 수강생들이 왜 이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는지를 포함해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살펴보니 평균나이가 65세 이상은 될 듯한, 나를 포함해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에 남자 두 분은 은퇴를 한 후 부산시의 시립도서관들을 순회하면서 강의를 듣고 공부하며 책을 읽는데 취미를 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우주와 인간의 빅 히스토리라는 테마는 처음이라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기대를 나타내었다. 이렇게 새로운 공부를 하고 새로운 지식을 쌓으며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강의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어떤 나이 많은 노인 수강생은 이런 수업 방식이 요즘 학생들 수업 방식이냐고 물으며 신기해했다. 자신은 늘 강사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수업만 받아 보아서 이런 수업은 낯설고 따라 하기 힘들다며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미있어하는 듯하였다. 나도 처음엔 잘 적응이 안 되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고 질문에 참여하고 싶은 의욕도 생겨 자칫 나 자신이 경망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강사의 성향은 겸손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재미없고 답답한 질문에도 성의 있게 답변을 해 나갔다. 강의가 톡톡 튀지 않는 것도 어쩌면 그런 강사의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심 때문은 아닐까 생각되었다. 결코 잘난 척하지 않는 신중한 모습을 지켜보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른스러울 만큼 신중한 지, 나는 충분히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만큼 성숙되었는지.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내가 이 수업에서 배워야 할 것은 수업내용은 물론이고 강사의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일 것이다. 늙어가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너무 늦은 후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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