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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서영 Mar 26. 2024

가을 하늘의 붉은 저녁 노을

< 엄마의 소천 >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봉천동 산꼭대기의 천막집에서 살았다

그 천막에는 가정이 거처하였는데 가운데를 가로막아

다른 한쪽에는 아빠의 친구 가족이 살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아픈 사람이 되어

살도 마르고 잘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심장병이라고 했다

밤에도 자리에 눕지를 못하고 기대어서 숨을 헐떡거렸다


그 동네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그 우물물로 밥을 하고 씻기도 하였다

물론 밥을 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


동네의 뒷산에는 산에서부터 힘차게 내려오는 계곡물이 있었는데

그 계곡물에서 빨래를 하고 그 주변의 커다란 바위에 빨래를 널어 말렸다

빨래가 마르는 동안 동네 아이들과 메뚜기를 잡기도 하고

풀숲을 다니며 풀을 뜯어 조리를 만들며 놀기도 했다.

바위 위를 건너 다니며 술래잡기도 하며 놀았다


가을이 되었다.

학교에 갈 때 나는 늘 뒷산을 넘어서 다녔는데

가을이 되니 산에 들국화가 가득 피어났다

나는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들국화를 꺾으려 하였는데

들국화가 고집센 내모습 처럼 질겨서 꺾어지지를 않았다

다음날부터 학교 갈 때 가위를 가지고 다니면서 

내 마음같은 들국화의 고집을 싹둑 싹둑 잘라

집으로 가지고 와서 엄마에게 드렸다

엄마가 희미하게 행복한 웃음을 웃었다


그날도 나는 빨래를 하기 위해 뒷산을 넘어 개울가에 갔다

빨래를 하는데 물이 참 맑고 깨끗해서 좋았다

해가 기울어 저녁이 되면서 하늘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노을 진 개울가의 붉은 풍경을 보면서 빨래를 헹구었다


해가 저물어서야 빨래를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다른 때 같으면 내가 돌아오는 기척에 엄마가 반겨주셨을 텐데

그날은 조용해서 천막을 들치고 들어가니

엄마가 누워계셨다


엄마! 나 왔어! 하고 말해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엄마가 장난치려는 줄 알고

방에 들어가서 엄마를 흔드는데

한 천막에 같이 살던 집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오빠가

어눌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희 엄..마...돌..아 가..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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