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서영 Mar 26. 2024

어린시절의 테마

< 나의 아빠, 나의 엄마 >

나는 무척 가난하게 살았으면서도 자존심은 고고하였는데

그것은 다 어렸을 적 아빠와 엄마 덕분이다


아빠는 그 당시 법대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신문사에서 근무했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동업으로 사업을 일으켰다가 쫄닥 망한 분이시다

그리고 고시공부를 시작하려 하셨으나 엄마가 아파서 말리는 바람에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늘 아쉬어 하신 분이셨다

그 후론  아무 일도 되는 일이 없어 혼자 동분서주 하셨지만

가족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셔서 집에 쌀 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아빠는 언제나 내가 고시공부만 했으면 판사가 되어서 

너희를 호강시켜 주었을 거라고 큰소리를 치시곤 하셨다.

아빠의 그런 허세는 어린 나에게 '아빠는 판사가 될 분이었는데 운이 없었구나'라는 

불쌍한 마음과 함께 나의 아빠는 대단한 분이라는 착각을 하게 하였다 


엄마는 상당한 미인이셨는데 성함 자체가 '이공주'였다

실제로 엄마는 어린시절을 대가집 양반댁 규수님으로 살으셨다고 한다

커다란 기와집에 거느리는 하인들이 많았고 이름처럼 공주님 대접을 받으며 살으셨단다

'공주'라는 이름은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이름 그대로 외삼촌은 '성주'로 

성의 주인이라는 뜻이고 엄마는 그 성의 '공주'라고 지으신 거라고 했다.


우리집은 가난했지만 동네에서 착하고 기품있는 엘리트 집안으로 

아이들이 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일례로 교회(그당시 충현교회)에서 어린이 성경암송대회를 하면 2등이 서럽다는 집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란 나는 우리집이 언제나 자랑스러웠고

마음 속에 지워지지도 않고 꺼지지도 않는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슴에 새기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가난하고 초라하면서도 그런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해 

살아오면서 오히려 힘들고 괴로울 때가 많았다

현실과 괴리된 그 엘리트 의식은 평생을 두고 나를 내 속에 가두어 두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었고 채찍이었다 

그리고 그 감옥은 험한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 이기도 했고

촛불처럼 흐르는 나의 눈물이기도 했다


작가의 이전글 한의원의 단골손님이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