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삶-격리 중
중국 산동성 연태에 도착해 섬에 위치한 호텔에서 격리를 한 지 1주일이 되었다.
섬에서 격리를 하니 '유배지에 보내진 건가'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진시황제가 말을 기르던 곳이란 ‘양마도’는 유명한 휴양지/ 관광지이다. 이곳은 산동성의 섬에 위치한 만큼 멋진 바다 전경이 펼쳐져 있다.
창문을 내다보면 서울에서 익숙하게 봐온 모습과는 다른 건축물과 창문 앞에 울창한 소나무가 드리워져 있고, 안개가 끼면 구름에 가려지지만 구름이 개인 날은 광활한 바다와 저 멀리 산등성이도 보인다.
한국에서 12월 31일이 되면 해돋이 보러 향하는 정동진 부럽지 않을 만큼 매일 해가 뜨는 것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어느 날은 찬란하게 눈부신 황금빛 태양이었다가 어느 날은 방송 종료를 알리는 티브이에서 애국가와 함께 봄 직한 붉은 태양이다. 이런 광경을 흔하게 누리고 있는 현실에 감사한 마음도 든다.
며칠은 수평선 너머로 해가 뜨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했는데 일주일째 보니 이 풍경도 익숙해져 감흥이 크진 않지만 아이들과 함께 호텔방에서 지내는 동안 탁 트인 전망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경을 감상하느라 답답하지 않다. 화창한 날은 사공이 배를 저어 가는 모습도 볼 수 있고 같은 동북아권으로 비슷한 자연경관이지만 그만의 이국적인 자태를 뽐낸다.
산 넘어 산
이 격리 호텔에 도착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었다. 출국 전날 무슨 정신이었는지 여권 챙겨놓은 가방을 집안에 잘 두고도 가방 찾으러 바깥으로 뛰어다니며 전화를 해대는 해프닝도 있었고, 하루를 쪼개 촘촘히 출국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중요한 출국 심사 준비가 완료되지 않아 출국 여부는 불확실한 상태로 공항을 향하며 극도로 긴장되어 있기도 했다.
문화와 언어만 다르지 다 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점에서 외국 생활이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 홀로 이동했던 어학연수 유학 그리고 국내 이사와는 다른 코로나 시대 해외이주로 세심하고 꼼꼼한 남편 없이 한국에서의 삶을 잘 정리해 타국으로 이주하는 과정에 두려움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나라 간의 출입이 쉽지 않은 만큼 몸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했고, 중국 정부에서 요구하는 검사에 적격함을 증명하고 증빙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은 긴장되었다. 중국은 비교적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단 것을 남편 통해 알고 있었는데 그만큼 외국인의 입국 절차는 촘촘했고 철저했다.
공항에서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좌석을 배정받으며 입국 수속을 하게 되었을 때 이 모든 것이 다 끝났단 안도감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때마침 남편으로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그의 목소리 역시 안도감에 화색이 돌았다. 준비하는 동안 불안감과 중압감을 호소할 때마다 차근차근해나가면 아무 문제없다고 위로해 주던 그였는데
그동안 걱정 많이 했구나
그리고 이날을 많이 기다렸구나
5시간 걸친 입국절차
연태 공항의 공기는 한국보다 차가웠다.
'비행기까지 태워줬으니 입국은 보장된 거겠지!’ 내심 안도했는데 입국심사 절차는 또 왜 이리 긴지...
인천발 연태행 비행기는 일주일에 한 대 운항된다. 비행시간은 1시간이지만 철저한 입국 심사로 공항을 벗어나기까지는 총 5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 가족은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탑승하였던 만큼 마지막으로 입국 수속을 마쳤고 공항 관계자들의 업무를 종료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한국에서 준비 기간 내내 긴장을 해서 그랬지 현지에 도착해서 느낀 중국인들은 친절했다. ‘맞아! 중국 친구들 친절했는데 괜한 걱정 했구나. '
중국 생활 시작
그간의 긴장으로 공항에서 지정 격리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투통은 심하고 속은 울렁울렁 구토할 거 같다.
오전 8시부터 콜밴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고 저녁 6시가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아침식사를 조금밖에 하지 않았는데 긴장이 풀리니 너무 배가 고팠다.
중국 생활은 이곳에서부터 시작인 거지!
간단히 짐을 풀고 아이들과 한국에서 싸온 과자 봉지를 뜯어 시장기를 달래며 저녁을 기다리니 마음이 놓였다.
여느 때와는 다른 출국 과정으로 준비 기간 동안 평소에는 써보지도 않던 '토 나올 거 같아'라는 표현이 어떤 것인지 체감하고, 중압감에 '죽을 거 같아'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렇게라도 오니 좋니?’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응' 이란 대답이 나온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호텔 생활을 하게 된 아이들 역시 배는 고프지만 좋다고 한다.
‘너희들은 그럴 줄 알았어!’
금지되었던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
한 달의 격리 기간 동안 아이들을 걱정했던 것은 기우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호텔 안에서 지내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함께 입국한 다른 집 아이들도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란 말을 한다고 할 만큼 격리 호텔에서는 그동안 금지되었던 아이들의 소망이 이루어진다.
그 배후에는 집집마다 필수 아이템으로 챙겨 온 ‘닌텐도’와 ‘아이패드’가 있다. 그들의 시장 지배력이 감탄스럽다.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잊지 못할 즐거운 시간과 공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침묵의 복도
방문의 선을 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이곳의 복도는 '침묵의 복도'이다. 복도에 들어서면 호텔에 아무도 묵고 있지 않다란 생각이 든다. 함께 이동한 주재원 가족들이 방을 찾는 소란에 문틈으로 복도 상황을 확인하는 누군가를 목격하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방 밖을 나갈 이유가 없으니 옷을 갖춰 입을 이유도, 화장을 할 이유도, 자주 씻을 이유도 없다. 음식이 입에 잘 맞지는 않지만 삼시 세끼가 제공되니 제한된 공간에 소비되는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크지 않다.
그새 2주년이 되는 ‘코로나 시대'동안 자체 격리 생활에 익숙해선지 아니면 사전에 격리 기간이 뇌에 각인되어 몸과 맘이 준비되어 그런지 '한 달의 격리 시간' 참 길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1주일밖에’가 아닌 ‘벌써 1주일이’ 란 말이 나온다. 이상하리만치 지루하거나 싫지 않은 시간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 달간 휴식이 주어졌단 맘으로 중간중간 격리 호텔 이동이 있으니 그때 잠시 바깥 분위기도 살피고 기분 전환도 하며 한 달 동안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볼 생각이다. (그렇게 맘을 먹지 않음 안될 거 같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