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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진권EngineKwon Jan 02. 2022

발등에 불 떨어졌다

차이나는 삶-출국 준비


'입국 예정일이 당겨졌네'

'12월 9일 예정'

'일정이 급해졌어'


                                                                       ’What?'




갑자기 정해진 출국 일정.

한 달 하고 보름 남았다.



 초등영어교육 사업 

 


이러려고 그동안 열심히 살았나?

결혼 전 성인 전문 영어강사로 커리어를 쌓아 온 나는 잘하지 못하는 살림을 하고 육아만 하는 삶이 답답했다.  


두 아이가 하나 둘  손을 덜 타기 시작하면서 주부 대상 영어수업을 시작했고,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녀 영어교육으로 관심이 전환되어 가던 중 2020년 프랜차이즈 초등 영어교육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듬해 한국에 상륙하면서 '코로나 시대'의 서막과 함께 영어도서관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인터넷에 기사를 내고, 주변 아파트 단지에 광고를 하고 블로그도 운영하며 드디어 주부 타이틀을 벗어나 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며 결의에 차 있었다. 조용했던 도서관에 꾸준히 문의가 들어오고 마감반이 생기고 신뢰하고 믿어주시는 학부모님이 늘면서 더 큰 꿈을 키워가고 있었기에 남편의 해외 부임 소식에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해외생활을 하는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저울질하지 않고 그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지막 수업 흔적들



그렇게 2020년과 2021년이 우리 부부에게는 인생의 변환기였는지 뜻하지 않았던 변화들이 있었다.


남편의 주재원 부임 최종 결정과 동시에 1년간 운영했던 영어도서관 폐업을 알리며 한 달의 유예기간을 두고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출국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일찍 정리한 감이 있었지만 '떠날 선생님'으로 -너무 거창했나 싶지만- 아이들의 교육과 삶에 미칠 영향에 무거운 마음이 들어 내린 결정이었다. 그 와중에 출국 일정이 확실해질 때까지 아이들을 맡아주길 부탁하신 부모님이 계셔 소규모의 수업이 이어지게 되었다.




잃어버린 시간들


 연초부터 출국을 염두에 두고 교육 사업을 폐업했는데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맞았는데도 출국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그 외에도 미루고 보류하는 일들이 하나둘씩 쌓여 가면서 대상 없이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9월의 어느 날 동네 친구와 새로 오픈한 조선 팰리스 호텔 밤나들이를 갔다. 24층에 위치한 라운지에서 내려다본 시내의 야경은 반짝반짝 아름다웠다.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한 불빛을 내려다보며 친구와 대화를 하다 보니 ‘아쉬움과 미련이란 감정 대신 반짝이는 별을 마음속에 품고 싶다’란 바람이 생겼다. 상황에 좌지우지되고 핑계대기 보단 '내 마음을 지키겠다' 생각했다.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현재에 집중하여 주어진 일, 또 하고픈 일들을 미루지 않겠다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No more
잃어버린 시간!

출국은 기정사실이지만 수업교재를 열심히 만들고 영어교육 상표 등록을 했고 사업자 등록을 했다. 10,11월 연말이 다가오는데도 한국에 남아있는 사정을 듣고 수업을 의뢰하시는 학부모님이 하나 둘 생기고 떠나보냈던 학생마저 돌아오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새로운 달 수업도 한창이었는데  ‘일. 정. 이. 급. 해. 졌. 다'는 그의 말은 급 제동이었다. 우왕좌왕하며 널뛰는 마음을 이내 다잡고 수업부터 잘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렇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보름이란 시간을 수업 정리에 집중했다.





동분서주

출국일까지 한 달 남았다지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3주로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수업 정리와 동시에 미뤄뒀던 출국 준비가 시작되면서 동분서주했다. 중국 체류에 중요한 건강검진 결과와 관련 서류 준비가 완료되었다 생각했는데 출국일이 늦춰지면서 유효기간 만료로 다시 해야 했고, 틈틈이 부동산에 집도 보여줘야 하고 비자 신청, 아이들 학교 준비 등으로 신경은 곤두서 있었다.



코로나 세상의 도립 때문일까? 아니면 장기 체류를 목적으로 해서일까? 아니면 둘 다? 중국 관광을 여러 차례 했는데 이 전과는 다르게 이번 입국을 위해서 가족과 나의 신상, 신원에 대해 증명해야 할 서류가 참 많다.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서류들을 챙기다 보니 괜스레 마음이 작아지기도 한다.



지난 6월 남편 따라 얀센 백신을 접종을 맞았다. 출국을 목전에 둔 해외 출국자들에게 단 1회 접종은 큰 메리트였지만 예방 효과는 화이자 모더나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원성을 듣고 있어 모더나 부스터 샷을 맞게 되었다. 백신 접종 한번 해봤다고 가볍게 여기다 몸살이 나서 고생했다. 백신 부작용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의 출국 준비로 몸살이 날만도 하겠지. 그 덕에 맘에 부담을 내려놓고 주말에는 잠도 실컷 잤다.



급하게 준비하며 시간에 쫓기다 보니 비자 신청은 제쳐두고라도 부동산에 집도 조금 일찍 내놓았으면 좋았을 것 같고, 아이들 학교도 미리 점찍어 두었던 곳이 있었던 만큼 입학 수속을 미리 해놨으면 좋았겠다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 마음먹은 바가 있었듯이 현상황에 충실하자며 그렇게 안 했었겠지…! 결국 닥치면 해결되고 빈집으로 두고 가면 누군가는 들어온다.  


그냥 마음 편하게 먹자!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바쁘다며 사라지는 엄마 때문인지 옆 블록에 위치한 조부모님 댁이 자기 집인 양 들락거린다. 조부모님 댁을 거점으로 하교, 하원을 하고 심지어 온라인 수업이 있는 날에는 아침식사 후 샤워까지 마치고 귀가해 수업에 참여한다. 근간에는 헤어짐을 준비하고 아쉬워하시는 조부모님의 사랑이 있고 아이들 역시 그 사랑을 느끼고 누리고 있다 생각한다.



10회 이상 남아있는 헬스 PT와 골프 레슨권을 두고 고민하다가 이 기회에 열심히 운동해보자며 주 3회 PT와 골프 레슨을 받으며 일주일에 6일을 운동하는 체육인의 삶을 살았다. ‘싼 게 비지떡이고 비싼 값한다'더니 레슨비 아까워 스케줄 끼워 넣으며 하루를 계획적으로 산 덕에 시간의 효율성은 커졌다. 체력은 부쩍 좋아졌고 골프 역시 시간 여유가 많았던 지난 다섯 달보다 최근 깨우친 점이 더 많지 않나 싶다.



우리 가족은 중국 연태로 이주한다





산동성, 산동반도에 위치한 연태는 서울과 위도가 같다. 연태와 인천은 서해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고 비행기로 1시간 거리이다. 중국 하면 흔히 떠올리는 베이징 상하이는 1급 도시이고 연태는 지방 3급 도시에 해당한다. 남편은 연태가 지방 3급 도시지만 한국에서 생각하는 지방 도시의 규모와는 다르고 기대치에 비해 생활 수준이 높다며 지레 위로의 말을 덧붙였다. 중국 14억 인구 vs 한국의 5천만 인구. 부자 비율을 대입해보면 중국의 부자 인구가 한국 전체 인구를 훨씬 뛰어넘고도 남는데 그 ‘기대보다 높은 생활 수준’이 현실에서 어떻게 체감될지 모르겠다.  


한국을 잠시 비우려니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누려오고 누릴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용역과 재화'에 대한 신뢰 및 욕망에 미련이 남는다. 한국을 떠나면 이곳에서 당연히 누려 온 이 모든 것들이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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