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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Apr 26. 2023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에 대한 (1)

23.04.26.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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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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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일하면서 가장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뭐냐고 하면, 이제 없다고 한다. 시청률 낮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느낌표>의 <책을 읽읍시다>를 보며 자라온 사람으로서, 방송으로 책을 다루는 일을 정말로 하고 싶었지만 이젠 방송으로든 뭐로든 책을 접하는 사람의 수는 멸종위기종 만큼 줄어든 것 같다. (그만큼 치열하지 않아서라고 하면, 그것도 맞다)


책을 직접 쓰는 게 아니라 책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과 책에 대한 책을 쓰려는 욕망 사이에는 얼마나 거리가 있을까? 난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책에 대한 책들, 뭐 그러니까 책의 물성에 대한 것이든 아니면 책을 읽은 이야기를 다룬 책이든, 아니면 책을 다루는 서점을 다룬 것이든 하여간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뭔가를 써서 모아두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이것이 책이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여하간 책의 제목이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책을 쓰고, 다듬는 사람들이 모여서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결과물이라니. 이 정도면 휘지 않은 바늘에도 입을 꿸 물고기 수준이다. 서점에 깔릴 때까지 매일 서점 홈페이지를 새로고침했다. 서점 입구의 엘리베이터만 몇 번을 탔다. 유난스럽진 않고, 사실 매번 치르는 의식 같은 것이다. 여하간에 그래서 집어 들었고, 아직 펼쳐보지 못했다. 이틀이 넘도록.


펼쳐보면 끝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펼쳤고, 지금은 새벽 3시다. 그러므로 망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왕 읽기 시작한 거 메모는 몇 자 해두고 자자는 생각으로 (잘 수 있다면) 글자를 하나씩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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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운동하기, 트위터 줄이기, 에고 서칭 금지 등과 함께 함부로 책 사지 않기, 한 권 살 때마다 한 권(해마다 늘어나서 올해는 한 권 살 때마다 다섯 권) 버리기, 책으로부터 도망치기 같은 계획을 세워 보지만 늘 작심삼일이다. 책들은 야금야금 늘어나고, 연말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사방을 둘러싼 책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금정연


이런 문장들을 옮겨 적으면서 나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입으로 내뱉어도 큰 이상이 없는 말들이다. 아내가 집에 처음 놀러왔을 때 보였던 반응을 기억한다. 아내는 책 더미에 내가 깔려 살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그 책이 갈 때마다 늘었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고 큰 맘 먹고 내게, 책이 좀 징글징글하니까 치우자고 했다. 나는 책 등을 자를까? 라고 물었고,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아내는 기겁을 했다. (다행히 책은 어디론가로 봉인되었다) 대부분의 책을 다 해치우고, 이제 좀 사람사는 집처럼 되었는데, 가계부는 안쓰고 책계부는 쓰고 있는데, 책계부에 저번달부터 슬슬 다시 책이 쌓이는 게 보인다. 아내도 곧 알아챌 것이다.


"당장 읽지 않을 책을 사는 이유는 언젠가 그것을 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책을 사는 이유는 그것을 읽기를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미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그리고 그것은 지금이다." 금정연


다섯 권을 사서 한 권 정도를 읽고 나면, 다시 다섯 권의 읽고 싶은 신간이 나온다. 그렇기에 언제나 나의 구매 대비 독서율은 20%를 밑돈다. 특히 두꺼운 책일수록 독서율은 나락이다. 이상한 고집인데, 어지간히 쓰레기가 아니라면 펼친 책은 끝까지 보고 싶어하고, 반대로 그래서 끝까지 보기 어려워 보이면 잘 펼치지 않는다. 그럼 왜 두꺼운 책을 사나? 안 펴볼 것을.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책은 나중에 언젠가 보고 싶을 때 절대 볼 수 없다. 절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서계에 영원히 옳은 문장이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머지않아 절판되리라." 나는 경험으로 증거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책들 가운데 한 권 정도 읽는다. 그럼 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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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체력이 좋지 않다는 것이 이토록 좋을 때가 있다. 피곤해졌고, 금정연의 글 넘어서 뭔가를 읽고 싶지 않아졌다. 마침 소피 루이스의 <가족을 폐지하라>를 가지고 우여곡절 끝에 처음부터 끝 문장까지 완성했다. 아마 아침이 되면 분명 부끄러워질 것이지만,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놓아줘야 할 것은 놓아주고, 나는 또 새로이 부끄러울 글을 쓰겠다고 밍기적대고 있을 것 같다. 평가는 잔혹하겠지만... 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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