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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Jun 18. 2023

국제도서전에서 만난 책들

23.06.18. 서울국제도서전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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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 읽은지 오래되어서 책 냄새라도 맡아보려 서울국제도서전 마지막 날 코엑스에 아내와 함께 갔다. 현업에 있는 아내 덕에 몇몇 분들께 인사도 드릴 수 있었다. (오오 빠와 언리미티드 빠와) 책 한동안 많이 못 산 것을 알고 있는지 빈 백팩을 메고 오늘은 네놈의 포터가 되어주겠노라며 호기롭게 나서는 모습에 웃음이 많이 났다. "감당하실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말은 안했지만 네놈이 나를 아낀다면 감당할 만큼만 사겠지, 라는 눈빛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마지막 날인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기사에 따르면 관람객이 작년보다 30%정도 늘어난 13만명 정도(연합뉴스)라고 하던데, 진짜로 몇몇 부스는 폐장때까지 들어가 볼 엄두도 못 냈다. 대원은 오로지 슬램덩크 하나만 가지고 와서 부스를 꾸렸는데, 그 한 종류의 책만 가지고도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이래서 잭팟 하나만 터지면 된다는 것인가... 전통의 강호 민음사, 문학동네 같은 곳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사인을 받기 위해 줄서는 것조차 끔찍히 싫어하는 나와 아내는 깔끔하게 단념하고 다른 부스들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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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들이 몇 권 있어서 집어왔다.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베난단티>가 교유당에서 새롭게 번역되어 나왔길래 집어들었다. 원래 길 출판사에서 2004년에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책이다. 이번에 몇몇 오류를 바로잡고 출간 50주년 기념판 원고를 추가 번역해서 넣었다고 하는데, 대학교 다닐 때엔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을 이번이라고 읽을까 싶지만 그래도 사 놓으면 언젠가 읽는다는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심지어 아직 인터넷 서점에 이미지도 없다...)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도 문학과지성사에서 복간해서 내놓았는데, 이번엔 도저히 못 읽을 것 같아서 다음으로 미뤘다. 대신 알렉세이 유르착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 소비에트의 마지막 세대>를 구매했는데, 모든 것이 영원할 것 같지만 붕괴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고, 붕괴가 이루어지고 나면 당연히 그랬어야 했을 거라고 받아들여지는 '붕괴기'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는 지금 이 세계도 영원할 것 같지만, 붕괴가 시작되면 당연히 그랬어야 한다고들 말할 것이다. 그 '전조' 또는 균열을 소비에트의 몰락에서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동아시아 부스에서는 <화교가 없는 나라>를 집어들었다. 거의 반자동적으로 중국에 관련된 모든 글이나 내용에 달라붙는 혐오반응이 점차 강해지고, 고착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해란 사실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이들에 대한 이해를 필사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생각하면서, 나조차 모르는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 집어들었다. 편집자의 정성어린 소개도 한 몫 했다. 에디토리얼 부스에서는 <과학기술의 일상사>를 집어들었다. 과학기술 자체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시민들에게 이해시키고 시민들이 그것을 이해해야 하는가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과학 기술의 발전과 퇴보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시민과학의 발달이 없다면, 과학기술은 그 시민사회에 제대로 발을 디디지 못할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시민 사이의 다리를 놓아보려는 시도라는 생각에 집어들었다. 


청미출판사 부스에서 나는 에바 일루즈, 에드가르 카바나스의 <해피크라시>와 스벤 슈틸리히의 <존재의 박물관>을, 아내는 볼프강 프로징거의 <은퇴>를 골랐다. 출판사 직원분의 영업이 훌륭하기도 하였으나, 둘 다 노화와 떠나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비교적 손쉽게 지갑을 열었다. <해피크라시>는 에바 일루즈의 <감정 자본주의>를 좋게 읽었던 터라 큰 고민 없이 집어들었고, 무조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인 이상, 어떻게 최후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렇게 남은 것들을 통해 다시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최후의 박물관>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아내와 <더 파더>를 보고난 후 아내는 영화가 "무섭다"고 했는데, 머지 않은 날에 우리가 경험해야 할 현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리요시 사와코의 <황홀한 사람>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결국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놓고 왔는데, 언젠가 결국 서재로 들어올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롤러코스터 출판사에서는 <노동자 없는 노동>을 집어들었다. 얼마 전에 샀던 <AI 지도책>과 함께 읽어볼 생각이다.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것 같은 AI도 그 밑바닥에는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분절된 마이크로 노동이 있음을 지적하는 바는 두 책 다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디지털 테일러주의'라는 말은 꽤 적절해 보인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상황을 쉽게 뒤집을만한 가능성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인데, 더군다나 주류 매체에서는 AI의 힘과 가능성에 대한 찬사나 공포만을 언급할 뿐 그 기저에 있는 인간의 노동에 대해선 무감하다. 난국을 타개할 방법이 사실 잘 보이지 않긴 하다...


폐점 직전 민음사에서 벼르던 신간을 샀다. 폴린 그로장의 <가부장 자본주의>다. 배세진 선생이 번역한 신간이라 사실 큰 고민 없이 샀다. 일단 읽어보고 생각하기로. 그리고 전시관 한쪽 구석에 늘어선 부스 가운데 아모레퍼시픽이 있어서 궁금해서 갔다가 <유행화장>을 건졌다. 크라우드 펀딩을 했던 책인데, 보통 이런 책은 펀딩이 끝나면 잘 구하기 어렵다. 운이 좋게도 구할 수 있었다. 업무에 활용할 내용들이 많아서 낑낑대며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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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고 싶었던 책들도 많았지만 대부분 내려놓고 왔다. 돈도 돈이고 공간도 공간이라. 창비나 문동에서는 끝내 뭔가 집어들지 못했다. 갈수록 독립출판물들에 손을 못 대고 있는데 많이 아쉽긴 하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여전히 많이 참가하지 않는 것도, 이해를 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이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싶으면서도, 전문적으로 한 분야를 파는 출판사들을 더 많이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니까...


산 책들 가운데 과연 살아남을 책이 몇 권일까, 산 책들 가운데 읽힐 책은 과연 몇 권일까. 아마 작년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던 것 같고, 나는 몇 권이 살아남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내년에도 나는 비슷한 고민을 작년에 했었던 것 같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살 것 같다. 삶이 허락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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