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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Aug 14. 2021

도서 수집가의 자질

데이빗 휴 존스, <채링크로스 84번지>(1987)

* 이 글은 <채링크로스 84번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Pro captu lectoris Habent sua fata libelli

독자의 능력에 따라, 책들은 저마다의 운명을 가진다

- 테렌티아누스 마우루스


당신도 보았듯이, 도서 수집가에게 있어서 모든 책의 진정한 자유는 당신의 서가 어딘가에 있다.

- 발터 벤야민


도서 수집가의 독특한 감각


책을 '수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 말에 대답하기 위해 발터 벤야민의 에세이 <나의 서재를 열며:도서 수집에 관한 대화>(1931)을 거들떠본다. 그는 아나톨 프랑스의 대화를 인용한다. "선생님, 이 모든 책을 다 읽으셨습니까?" 그의 서재의 규모에 놀라고 존경을 표하던 속물스런 사람이 묻자, 아나톨 프랑스는 대답한다. "10분의 1도 안 됩니다. 당신도 매일 세브르Sèvres* 도자기에 식사할 거라곤 생각지 않는데요?" 이 대화는 두 가지를 말해준다. 책 읽기와 책 모으기는 필연적인 관계가 아니며, 책 모으기는 도자기 수집과 같이 독특한 안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벤야민은 도서 수집가가 서재를 꾸리는 데 있어 책의 내용이나 재력 이외의 고유한 기준이 하나 더 있음을 지적했다. 그것은 "날씨, 장소명, 형식, 이전 소유자, 장정"과 같은 세부사항들이 빚어내는 조화의 질과 강도다. 수집가들은 책의 물리적 속성이나 책을 처음 마주할 때의 감각, 구매 장소와 시간에 대한 기억을 한데 모아 책의 소유 여부를 결정한다. 냄새, 종이결, 도시와 같은 기억과 감각이 뒤섞이는 물리적 단자(monad)로서의 책들 가운데 내 것을 예민하게 골라내는 감각(flair)이 바로 벤야민이 말하는 도서 수집가의 자질이다.


영화 <채링크로스 84번지>의 두 주인공 헬레인 한프(앤 뱅크로프트)와 프랭크 도엘(앤소니 홉킨스)은 도서 수집가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뉴욕에 사는 무명 작가 한프와 런던에 있는 마크스 상회 서점의 관리인 도엘의 20년간의 우정을 다룬 이 영화는 한 통의 편지에서 시작한다. 희귀 고서적을 모으는 취미가 있던 한프는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 [토요 문학 평론지]에 실린 마크스 상회의 광고를 보고 편지를 띄운다. 원하는 도서 목록을 보낼테니, 싼 중고책이 있다면 보내달라는 내용으로.

오래된 영화는 모든 것에 있어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심지어 겪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까지도.

도박성 짙은 편지를 보낸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한프는 한 통의 편지와 두 권의 책을 전달받는다. 포장된 책 위에는 프랭크 도엘이 쓴 정중한 답장이 얹혀져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까탈스러운 한프의 요청을 완수하기 위한 도엘의 여정을 그리는 한 편, 자신의 요청에 최선을 다해 답하는 도엘과 그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한프의 다정한 선물들을 훑는다. 사이사이 원작 소설의 문장들로는 아쉬웠던 당대의 풍경과 사람들이 영화라는 감각적 재료를 얻고 관객 앞에 등장하는데, 그 덕에 우리는 끝내 한 번도 이어질 수 없었던 대화를 맞이하는 경사를 누리기도 한다.


영화는 한프와 도엘의 수집가적 측면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미팅에 지각해 뛰쳐 나가다, 문 앞에 놓인 책 소포를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방으로 되돌아가 포장을 풀고 환하게 미소짓는 한프의 표정이라든지, 그녀가 요청한 책을 찾고자 서점들을 헤집다가 마침내 괜찮은 책을 발견하곤 은은하게 웃음짓는 도엘의 모습이 그 사례다. 제목과 내용이 대충 같다고 만족하고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바로 그 책이 아니면 안되는 사람이 목표로 하던 책을 수집하며 보여주는 환희, 탄성, 표정, 몸짓은 문장만으론 다 표현할 수 없다.

정재영의 택배짤보다 더 진정한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먼 곳에서 마주한 책이 바로 그 책임을 알게 되었을 때 짓는 표정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직설적이고 감상적인 한프와, 예의를 중시하고 매사 정중하려 하는 도엘은 상극이지만 책에 대한 열정으로 묶여 있다. "이 부드러운 고급 피지와 뽀얀 상앗빛 책장은 함부로 만지지도 못하겠고요. 미국 책들의 창백한 백지와 딱딱한 마분지 표지만 보아온 저로서는 책을 만지는 일이 이런 즐거움도 줄 수 있다는 것은 미처 몰랐습니다."라는 한프와 존 헨리 뉴먼의 <대학의 이상> 초판을 구했다며 "더블린의 천주교도를 대상으로 행한 대학 교육의 본질과 전망에 관한 강연. 초판, 더블린, 전8권, 송아지 가죽 장정. 몇몇 쪽에 약간 빛 바랜 얼룩이 있으나 제본에 상한 곳이 없는 상태 양호한 중고서."라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 도엘 모두 세부 사항들에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도엘은 벤야민이 이야기한 '전략적 본능'이 더 두드러진다. 한프가 요청한(그리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욕망이기도 한) 책을 찾기 위해 서점들을 헤집고 다니는 도엘의 동선은 "그들의 경험은 그들이 낯선 도시를 점령할 때, 가장 작은 고서점이 성채가 될 수 있고, 가장 멀리 떨어진 문구점이 핵심적인 위치가 될 것임을 알려준다"는 벤야민의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한프는 끊임없이 책의 물리적 속성들에 대해 반응한다. "책장 전체가 금테두리로 된 책은 가져보지 못했어요."나 "금박찍기 가죽 장정에 금테 두른 책 마구리"와 같은 반응들은 항상 편지의 첫 머리를 장식한다. '세부사항들이 빚어내는 조화의 질과 강도'에 예민한 사람이 쓸법한 문장들이 여기에 있다.


시차 있는 대화


한프가 면밀히 따지는 세부사항 가운데에는 독특한 요소가 하나 있다. 흔적이 남은 중고책을 찾는다는 것이다. "저는 전 주인이 즐겨 읽던 대목이 이렇게 저절로 펼쳐지는 중고책이 참 좋아요. 해즐릿이 도착한 날 '나는 새 책 읽는 것이 싫다'는 구절이 펼쳐졌고, 저는 그 책을 소유했던 이름 모를 그이를 향해 '동지!'하고 외쳤답니다."와 같은 문장이나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와 같은 문장은 요새의 중고서점에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평가 기준일 것이다.

진정한 고고학은 침대에서 시작된다. <패터슨>이 그러하듯이.

어떤 이에겐 그저 낙서겠지만, 한프에게 책에 남은 모든 흔적은 고고학적 탐사의 대상이다. 모든 중고책이 수신자를 잃어버려야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니, 중고책의 흔적은 모두 수신자를 잃은 메시지인 셈이다. 커뮤니케이션의 한 축이 사라져버린 반 쪽짜리 대화는 상상의 원천이 된다.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든,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메모든, 스스로의 다짐이든 이 책이 누군가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음을 알려주는 표식이 있어야 그녀는 기꺼이 그 책을 서재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서가 어딘가에 놓인 자유의 조건이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일종의 시차를 가지고 있다. 편지를 주고받기 위해서는 몇 주의 시간이, 중고 서적에 남겨진 메모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길 게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고 견뎌야 서로 맞닿았다는 기쁨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오늘날, 견뎌야 얻는 기쁨의 시간이 주는 감흥은 오히려 자리를 잃었다. 우연한 계기가 20년의 인연을 만드는 데 경탄하는 동시에 간절함을 잃어버린듯한 시대의 무미건조함을 견뎌내야 한다. 헌책방에서 오래된 책을 재탄생시키는 수집가의 자세가 살아있는 영화 속의 두 인물이 별다른 사건들이 없음에도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자체가 거대한 헌 책인 셈이다. 시간의 더께를 뒤집어쓰고 새롭게 발견하길 기다리는 반쪽짜리 커뮤니케이션으로서.

서점에 찾아온 한 여자를 한프로 착각했던 도엘은, 자신의 착각을 깨닫곤 책으로 돌아온다. 예이츠의 시집으로. 
<하늘의 융단>이 펼쳐져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기다려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다.

5달러 이하의 중고책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자세하게 원하는 책을 설명하는 한프나, 그 책을 정확하게 찾아 바다 건너로 보내는 도엘에게 바다와 시차는 큰 장벽이 아니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 둘이 도서 수집가의 자질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면 이 소설과 영화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만큼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물리적 공간의 이격과 시간차는 꽤나 큰 장애다. 영화는 두 사람의 시차 있는 대화를 촬영 기법을 통해 은폐한다. 가령 편지에서 편지로 이어지는 점프 컷은 배달 기간을 지우고 대화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한 데 있을 수 없는 대화가 마치 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감독은 제4의 벽을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 둘 사이의 시차를 한 번 더 지운다. 영화 속에서 한프와 도엘은 종종 카메라를 보며 대화를 건넨다. 실제로는 발화와 응답 사이에 짧게는 몇 주 이상 걸렸을 대화가, 종이와 종이로 마주했을 문장이 얼굴에서 얼굴로, 즉시 이어지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심지어 영화 중후반부엔 두 사람의 커트는 마치 다큐멘터리 인터뷰가 이어지는 듯이 달라붙어 있다. 그 순간 편지 속 문장을 반복하는 기계에서 해방되어 두 사람은 깊이를 가진다. 문장 너머의 인물과 사건이라는 깊이를 갖추려고 했던 감독의 의도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시차를 지우는 대화 연출을 통해 가능해진다.

그 전까진 시선이 관객을 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서로를 향하는 것임을 안다.

우리는 상상한다. 두 사람이 서로 직접 만나 대화했다면 역할을 맡은 배우들처럼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지. 실제로 한프는 도엘이 사망하기 전까지 런던에 가지 못했다. 영화의 첫 장면, 들뜬 얼굴로 팬암기를 타고 런던으로 향하는 한프가 끝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우리는 이미 안다. 팬암이 사라졌듯, 마크스 상회도 도엘의 모습도 그곳에 없다. 그럼에도 '가상'의 대화를 지나, 영화의 끝에서 한프는 말한다. "프랭크, 제가 해냈어요." 이것은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리라. 우리는 시차가 있는 대화에 끝내 성공했어요. 그렇다면 25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이 영화를 다시 보는 우리들이 해야 하는 말도 무엇인지 비교적 명확할 것이다.


*1756년 프랑스의 마담 드 퐁파르드가 왕실 도자기 제작을 목적으로 파리 남서쪽 세브르에 설립한 국립 공방에서 제작한 도자기. 화려한 장식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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