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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Jul 28. 2022

그것이 해준씨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박찬욱, <헤어질 결심>(2022)

*이 글에는 <헤어질 결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장해준(박해일 役)은 훌륭한 형사다. 구소산에서 발견된 기도수(유승목 役)의 사인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지만, 구태여 날이 밝자마자 줄을 타고 기름봉의 암벽을 올라가고 송서래(탕웨이 役)의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에 남은 138층 계단 오르기 기록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그녀의 이동 경로를 직접 따라가 본다. 졸음운전을 할 만큼 잠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잠복하며 용의자를 관찰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도 않는다. 그 과정이 아무리 험난해도 그는 말을 전달받기보다 직접 행동하여 눈으로 보아야만 믿는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동료인 오수완(고경표 役)도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냐?’고 불평할 만큼 그는 ‘눈’의 힘을 믿는다. 중요한 순간마다 그가 안약을 넣는 이유도 사물을 제대로 보기 위해다.


헤드라이트 하나가 취조실을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바꾼다.


취조실에서 대면한 서래가 ‘말씀’ 대신 ‘사진’으로 기도수의 사인을 확인하고 싶다고 말할 때 해준은 서래가 자신과 같은 종족임을 확신했다. 그녀도 자기처럼, 아무리 끔찍한 현실이어도 직접 눈으로 봐야만 의구심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확신에 보답하듯, 짧은 순간 건물 밖을 스치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취조실을 빛으로 가득 채운다. 시야를 가릴 만큼 강하고 비현실적인 광량은 형사와 피의자의 관계를 호기심 가득한 남녀의 관계로 뒤바꾼다. 사랑의 감정에 눈이 멀면, 자부심 넘치는 형사로서 해준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짧은 빛이 훌륭한 형사의 말로(末路)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2

해준은 자신이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계속해서 안약을 넣으며 세계를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의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서래가 이포에서 입은 드레스의 색을 일관되게 녹색이라 말하는 것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해준이 아내 정안(이정현 役)과 함께 나선 시장에서 서래와 그녀의 두 번째 남편 임호신(박용우 役)을 만났을 때,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색을 두고 정안은 파란색, 해준은 녹색이라 말한다. 아침에 해변에서 산책하던 서래를 목격한 시민들이 서래의 드레스 색을 파란색이라 말할 때에도 해준은 다시금 ‘녹색이 아니고요?’라 반문한다. 사진을 본 여연수(김신영 役)는 단박에 파란색이라 말하지만, 그 말에 해준은 대꾸하지 않는다.


감독은 일부러 헛갈리게끔 여러가지 색의 드레스를 준비해서 촬영했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드레스의 색이 달리보이는 게 아니라 해준에게 유독 '녹색'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가 서래의 드레스를 ‘녹색’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예전에 서래가 그 색을 ‘녹색’이라고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드레스를 녹색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해준이 직접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달했듯 서래도 직접적이진 않지만 해준의 눈을 멀게 한 적이 있다. 불면의 밤에 나눈 대화를 떠올려 보자. 옷에 밴 담배 냄새를 아내에게 들킨 후 잠들지 못하던 그날 밤, 해준은 세차 도구들을 들고 밖으로 나와 서래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녀는 화요일에 간병해야 할 할머니가 위독해져서 병원에 왔고, 월요일에 간병할 할머니를 돌볼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 답한다. 해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대신 가겠다 대답하는데 서래는 기뻐하며 이렇게 답한다. 집에서 ‘녹색 공책’을 가져다 할머니에게 읽어 달라고.


산해경과 필사한 공책을 '녹색'이라고 해야 할까, '파란색'이라고 해야 할까. 벽지를 빼다 박은 공책은 벽지처럼 모호하다.


해준은 그녀의 집으로 향해 한 권의 공책을 집어든다. 『산해경』이 필사되어 있는 이 공책의 표지는 서래가 이포에서 입고 있는 드레스 그리고 서래의 방 벽에 발라진 벽지와 같은 색이다. 산인지 바다인지 모호한 경계에 있는 벽지처럼, 공책 표지 역시 녹색과 파란색 그 어딘가에 있다. 예전에 기도수 앞으로 온 빨간색 편지들을 서래가 보여줄 때, 그 편지 밑에 깔려 있던 『산해경』과 이 공책을 분명 봤음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서래의 ‘녹색 공책’과 이 공책을 연결 짓는다. 서래의 말은 이미 해준의 눈을 지배하고 있다. 해준과 서래를 같은 종족으로 묶어주던 말씀과 사진 사이의 구분선이 해체되는 순간이다.


그는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똑바로 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진실이라기보다 욕망이다. 그는 끝내 말에 휘둘린다. 그는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단지 자신이 눈멀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진실을 마주하는 데 계속 실패할 뿐이다. 부산에서는 서래를 용의선상에서 제외시켜 수사를 망치고, 이포에서는 서래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헛되게 노력하다 서래를 영원히 미결 사건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넣은 안약이 넘쳐흘러 만들어 낸 눈물자국은 해준의 최종적인 실패다.     


3

해준이 의식적으로 제시한 사진과 말씀 사이의 위계에 대한 공통 감각은 진실이 아니다. 그는 이미 말에 휘둘려 색을 보지 못한다. 서래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해준은 말이 사진에 앞선다. 그렇다고 해준이 서래와 같은 종족이라고 느끼는 그 감각이 거짓은 아니라면, 우리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또 다른 공통의 토대를 찾아야 한다. “나는... 깨끗해요.”라는 해준의 말은 힌트가 될 수 있다.


저 방석은 결국 해준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다. 마치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마르틴 베크 시리즈처럼.


해준은 자신의 말마따나 깨끗한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청결하게 주변을 정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다. 그의 책상 위에는 마르틴 베크 형사 시리즈가 가지런히 쌓여 있는데, 독서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애독자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다. 서래와의 첫 데이트에서도 사찰에 쌓인 방석을 슬쩍 다듬어 맞추는 장면은 그의 성격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는 어긋난 것들을 참을 수 없다.


그런 그가 서래와 합을 맞추어 취조실의 책상을 정리하는 장면은 자연스럽다 못해 경쾌함이 느껴질 정도다. 해준이 자연스럽게 물티슈로 책상을 닦자, 서래는 나머지 물건을 정리한다. 서래가 해준에게 물티슈를 건네받아 나머지 부분을 닦자, 해준은 서래가 물티슈를 버리기 쉽도록 쇼핑백을 들어준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이 장면에서 진행 속도를 늦춘다. 여기가 해준이 서래를 같은 종족이라 직감하는 순간이지 않은가?


어떤 형사가 식사 후에 이를 닦을까? 그것도 아주 가지런히 정리된 서랍에서 직접 치약까지 꺼내주면서.


물티슈, 민트 캔디, 때수건을 가지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자신과 주변을 청소하는 해준의 주머니를 자연스럽게 서래는 헤집는다. 자신의 강박을 상징하는 사물들을 이상하게 여기기보다, 당연하듯 입 냄새를 제거하는 캔디를 입에 물고 립밤을 공유하는 서래를, 해준이 달리 볼 방법은 별로 없다. 그녀도 자신처럼 ‘깨끗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착각임을 깨달으려면 제대로 봐야 할 테지만, 그는 사건을 볼 때와 달리 서래를 볼 때 안약을 넣지 않는다.     


4

서래가 해준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서래는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운다. 해준의 망원경 앞에서도, 해준의 부엌 안에서도, 임호신과 함께 사는 집의 침대 위에서도 거리낌이 없다. 그녀의 공간에 진하게 밴 담배 냄새를 관객은 몰라도 해준은 안다. 아내인 정안이 냄새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면, 오랜 시간 금연해 온 자신이 모를 리는 없다. 하지만 해준은 그저 아내에게 거짓말로 대답하고, 서래의 타들어가는 담배 밑에 재떨이를 가져다 대는 상상을 할 뿐이다.


냉장고에 넣지도 않아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장면은 서래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녀가 그리 정돈된 상태가 아님을 암시하기도 한다. 해준이 사랑하는 서래의 ‘꼿꼿함’은 어디에 있을까?

해준은 정말로 서래를 '꼿꼿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해준은 쌓아둔 책의 각도마저 칼같이 맞추는 사람이지만, 서래의 책인 『산해경』은 그런 정돈과 거리가 멀다. 별다른 기승전결의 구조가 없이, 이곳에서 얼마만큼 더 가면 어떤 산과 동물이 나오더라, 하는 기행문의 구조인 『산해경』은 구조 자체로 흐물거리는 데다, 서래가 필사한 공책에는 글씨들이 산맥의 흐름에 따라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래는 해준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서래가 해준의 집에서 마르틴 베크의 소설책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녀는 단박에 알았을 것이다. 해준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서래는 해준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해준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것이 이 영화 전체에 걸쳐 있는 불균형이자 영화를 파국으로 끌고 가는 힘이다.     


5

해준이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유는, 그가 언제나 무엇인가를 통해서만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물들을 더 잘 보기 위해 쓰이는 도구라고 하더라도 눈을 가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잠복할 때 쓰는 망원경, 주머니에 있는 선글라스, 그리고 안약마저도 눈앞에 한 꺼풀의 막을 만드는 공통점이 있다.


서래의 방을 관찰하는 그는 서래가 담배를 손가락에 끼우고 잠드는 듯하자 ‘우는구나, 마침내’라 탄식하지만, 정작 카메라가 비추는 서래의 입가에는 묘한 웃음기가 감돈다.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마음은 한없이 서래의 곁으로 가지만, 정작 제대로 표정을 읽지 못한다. 잘 보기 위해 사용하는 망원경이지만, 정작 망원경을 통해 보는 것은 자기의 확장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잠들어 있는 동안은 관찰할 수 없다. 관찰당할 뿐이다. 이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서래는 반대로 해준을 맨눈으로 바라본다. 이지구를 체포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자신의 집 앞에 잠들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에도 그렇다. 서래는 해준을 바라볼 때 자신이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 적이 없다. 그를 바라보기 위해 그저 그의 앞으로 갈 뿐이다. 잠들어 있는 해준을 발견한 후에도 그는 구태여 사진을 찍어 잠을 깨우고 인사를 건넨다. 그녀는 관음하지 않는다.


해준은 자신이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못한다. ‘심장’과 ‘마음’의 번역을 두고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가 종결되는 과정은 그 의혹을 뒷받침한다. 해준은 서래에게 아무런 맥락 없이 ‘내 심장이 그렇게 가지고 싶었느냐’고 묻는다. 서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심장이 아니라 마음’이라 답하며 웃고 해준은 우스꽝스러운 긴 탄식을 내뱉고 대화를 마무리한다.


서래는 해준이 어디서나 자기를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해준이 자신의 혼잣말의 의미를 물을 때 당황하지 않는다. 이미 그의 시선을 전제하고 던진 말이다. 연기라면 연기인 셈이다. 그런데 해준은 서래가 왜 당황하지 않는지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 해준은 서래의 말을 직접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는다. 마치 망원경 너머로 보이는 서래를 ‘우는’ 사람으로 철석같이 믿는 것처럼. 그런데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의심하지 않는 형사의 말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6

그가 쓰는 단어는 종종 반문에 직면한다. ‘우리’라는 단어가 그렇다. 해준은 이 단어를 영화 내에서 두 번 쓰는데, 그 때마다 상대방은 그 단어의 경계에 대해 되묻는다. 명확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것은 그의 말에 관객이 신뢰를 보내기 어려운 이유가 된다.


해준은 서래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기도수의 유품들을 전달한다. 서래는 해준에게 묻는다. ‘기쁜가요?’ ‘제가 왜요?’ ‘...’ ‘맞아요, 기뻐요.’ ‘왜요?’ ‘네? 그야 뭐 이제, 더 이상 우리가...’ 서래는 반문한다. ‘우리요?’ 해준은 이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배가 고프지 않냐 묻는다. 서래는 ‘우리’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는 어느 곳에서도 ‘우리’의 경계 안에 묶이기 어려웠다. 남편은 커튼을 쳤고, 국가는 선산의 소유권을 뺏었다. 그만큼 경계(境界)에 경계(警戒)할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부지불식간에 자기와 해준을 한데 묶는 이 단어는 달콤하지만 그만큼 무서운 단어다.


‘우리’는 욕실에서 정안과 대화를 나누며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이포에서 서래의 존재를 알게 된 정안은 해준에게 질투어린 말을 건넨다. 그 여자 이쁘던데. 이전에 말했던 질곡동 사건이 서래와 관련된 것은 아닌지 캐묻다 정안은 말한다. ‘괜한 사람들 의심 자주 하고 다니네, 당신?’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싫어하잖아.’ 정안은 반문한다. ‘우리?’ 정안 역시 우리의 경계를 명확하게 밝히길 요구한다. 해준은 절반의 진실이 담긴 말로 대답한다. ‘경찰.’ 그 말은 거짓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진실도 아니다. 그 순간 화면은 정안을 가리고 있다. 해준은 정직하지 않다.      


7

해준은 스스로에게도 부정직하기 실패한다. 기도수를 죽인 범인이 서래가 아니라 믿었기에 붕괴되고, 임호신을 죽인 사람이 서래라 믿었기에 헤맨다. 서래는 해준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았기에 결말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지만, 해준은 자신이 무엇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지도 몰랐기에 파도에 휩쓸린다.


서래가 해안가에서 자신이 마지막으로 버려질 곳을 선택하고 그곳에 깊은 구덩이를 파는 동안 먼 하늘에 비행기가 한 대 지나간다. 그리고 그녀를 찾아 사자바위 해변에 도착한 해준의 머리 위에도 비행기가 지나간다. 그 순간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살아 있는 상태로 함께 있었다. 해준이 서래의 핸드폰에서 음성 녹음 파일을 듣고 이것이 사랑의 대화임을 조금이라도 빨리 깨달았다면, 서래는 살았을까?


해준은 언제나 뒤늦게 움직인다. 제대로 보지도, 제때에 깨닫지도 못한다. 그것이 눈먼 해준의 한계다. 우리도 어쩌면 해준과 함께 헤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준의 말을 믿은 죄로, 거대한 착각을 하고 영화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자는 우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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